인도의 살인적인 더위에 비누조차 녹아 내리고…
인도의 여름은 '더워 죽는다'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5월 중순, 더위를 뚫고 인도 고유의 명상법을 체험하기 위해 명상센터가 있는 '보드가야'를 찾았지만 그 곳 역시 무더운 5월은 쉬는 달...
이열치열의 심정으로 같은 코스의 명상센터가 있는 '다람살라'로 향했다. 보드가야에서 델리를 거쳐 다람살라로 가는 길은 더위와의 싸움 그 자체였다. 배낭안에 있던 비누가 녹아 흐르고, 사진을 저장해둔 디스켓이 망가지고, 머리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 더위 속에서 아무런 불평없이 기차를 타고 가는 인도인들이 성자로 보일 정도였다.
죽음(?) 일보 직전에 도착한 다람살라는 화창한 봄날씨! 게다가 산 위엔 아직도 눈이 쌓여 있어 보기만 해도 더위를 잊게해 주는 곳이었다. 그러나 다람살라 명상센터는 수없이 많은 대기자가 있어 순서를 기다리기엔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한 상황, 결국 명상은 포기하고 풍경좋은 산책길을 오르내리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티벳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는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것은 60년대 이후 달라이라마를 중심으로 모여든 티벳인들과 현지인도인, 이들보다 많아 보이는 외국여행자들이 만들어내는 국적 모를 분위기였다. 또 여기에 티벳인과 결혼해 정착한 외국인, 티벳불교에 심취돼 머리를 깍고 중이된 외국인들까지 합쳐져 마치 세계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듯한 인상을 풍겼다.
처음에 난 이 낯설고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에 취해 감상적인 낭만에 빠져 지냈다. 그러나 일주일 즈음 지나며, 다람살라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거대한 화약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도주민들의 입장에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땅에서 터를 일구어 살아가는 것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고, 남의 땅에 살며 박대를 받는 티벳인들 입장에선 인도인들이 마냥 고마운 것만은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도인들과 티벳인들의 충돌이 언제든지 가능하고 그 충돌은 전쟁을 방불케하는 대격돌이란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의 평화는 서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노력에서 나온 지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티벳인들의 삶 또한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다가가서 볼 때는 큰 차이가 났다.
게스트하우스나 식당을 운영하는 그들의 일상은 다른 인도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조국을 떠나 살아가는 티벳인들의 삶은 무척 고단한 것이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동안에도 사선을 뚫고 국경을 넘어 온 이들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고, 식당마다 비치되어 있는 그들의 소식지엔 티벳에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실상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곳에서 십여년간 살아온 외국인의 말을 들어보니 고단한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조국땅 티벳에서 박해를 못이겨 망명한 사람들과 달리, 다람살라에서 태어난 젊은 티벳인들이 겪는 정신적 방황은 매우 큰 것이었다. 그들이 자라면서 보는 것은 자유롭게 여행하는 외국인들. 그런 그들이 조국땅의 모습도 보지 못한 채 떠도는 망명자의 신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방황과 고민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알아갈 때 즈음 만나게 된 티벳 청년 '락바'는 티벳 젊은이들의 고단한 삶을 잘 대변해 주었다.
올해 서른 세살의 락바는 다질링에서 태어나 6살 때 부모를 여의고 혼자서 다람살라로 온 친구이다. 다람살라에서 고아로 지내던 그에게 어느 날 한 영국인이 찾아와 그를 양자로 입양하고, 집을 지어 함께 살게 되었다.
그와 함께 살며 락바는 잠시나마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영국인은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 다람살라에서 생을 마감하기 위해 온 사람. 결국 락바는 얼마 후 또 혼자가 되었다.
그 때부터 락바는 요리를 배우기 시작해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실력을 인정받아 꽤 유명한 호텔 요리사로 일하며 안정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 무렵 그는 한 영국여성과 사랑을 하게 돼 그녀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가 부모에게 결혼 허락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나 락바는 그녀와 결혼하지 못하고 혼자서 다람살라로 돌아와야 했다. 마지막 순간 그녀의 마음이 변해 결혼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상처를 겪고 다람살라로 돌아온 락바는 오히려 자신의 생활에 더 적응하지 못한 채 떠돌고 있었다. 그는 더이상 요리사로 일하지 않았고, 특별한 직업없이 몇 해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락바의 말에 따르면 티벳 젊은이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어진단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 이, 어떻게 하면 외국인들을 상대로 돈을 많이 벌까 궁리하는 이, 자신처럼 별다른 희망없이 떠도는 이....
길거리 짜이집에서 락바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지나가는 티벳 젊은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자주색 승복을 입고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 이, 열심히 짜이를 만들어 파는 이, 선글라스를 끼고 외국산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이 등 다양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상시엔 그저 다람살라의 일상이라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을 풍경이었지만 왠지 그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들 모두 한 번씩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아주 깊게 하며 방황하는 시기를 거쳤거나, 앞으로 거쳐야 하는 이들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처음엔 무척이나 낭만적인 풍경으로 다가온 다람살라, 그러나 왠지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생각에 여행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곳이기도 했다. 예정보다 일찍 다람살라를 떠나는 날 아침, 버스정류장에서 난 티벳인들의 시위대열과 마주쳤다. '2008 중국 올림픽 반대'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그들에게 주위의 여행자들은 모두 힘찬 박수를 보냈다. 우리들이 보낸 박수가 그들에게 작은 힘이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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