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여대, 파행적 교수채용공고 물의

교수협 "박 이사장의 퇴임준비작업... 원천무효"

등록 2001.08.17 19:01수정 2001.10.2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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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김미선
'서양화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 사람 중에 외국에서 다년간 활동 중인 사람은 우리 대학 서양화 전공교수로 와주십시오.'
'우리 대학은 교양학부에 약간명의 교수를 초빙하고자 합니다. 초빙분야는 따로 없습니다."


교육부가 덕성여대 등 10개 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감사결과가 사학비리에 대한 강력한 제재조치 없이 단순 현황나열에만 그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가운데 덕성여대가 교육부 감사 결과발표 직전에 발표한 '교수초빙공고'가 절차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져 문제가 되고 있다.

또, 공고내용에 있어서도 교수초빙 대상에 대해 포괄적 조건을 내거는 타대학들의 일반적인 예와 달리 세부적인 조건까지 명시해두고 있어 "학교측이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공고를 냈다"는 지적이다. 이번 공고에는 올해초 재임용에서 부당하게 탈락한 교수들의 학과도 초빙대상에 올라 "학교측이 재임용탈락을 기정사실화 하려 하고 있다"는 비판도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교수초빙 공고 한 달 전 이뤄진 심사기준안 개악"

덕성여대가 '교수초빙공고'를 중앙일간지에 게재한 것은 지난 8월2일. 덕성여대는 조선일보 등에 2001년도 2학기, 2002년도 1학기 등 2개 학기에 7명 이상의 교수를 초빙한다는 공고를 게재했다.

이 공고는 전공교수가 턱없이 부족한 이 학교에서 교수-학생들로부터 '대환영'을 받을 일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학교측이 교수충원 절차를 규정한 '교수초빙세부심사기준'을 전격 개정했음은 물론, 그나마 개정된 심사기준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측은 공고 한 달 전인 7월3일 '교수초빙 세부심사기준'을 개정, 학과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토록 했던 민주적인 조항들을 삭제하고 학교측의 개입권한을 대폭 늘렸다.

당초 덕성여대가 갖고 있던 '교수초빙 세부심사 기준'은 지난 97년 교육부의 "박원국 이사장의 96년 교수채용에 문제가 있다"는 감사결과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1차면접 및 연구실적 심사 및 2차 면접대상자 선발- 학과심사위원회(위원장 학과장)
△2차 면접 및 시강대상자 선정-교원인사위원회(직선제로 선출된 교수)
△시강 및 임용결정 - 교원인사위원회가 시강평가, 총장은 3배수의 임용후보자를 성적순으로 제청하고 이사장은 이중에서 선발 등 '학과와 인사위원회에 5:5의 권한을 주는' 민주적 절차가 강조된 기준안이었다.

반면, 학교측이 7월 3일 기습적으로 개정한 '교수초빙 세부심사 기준'은 보직교수들에게 서류심사 권한을 부여, 부적격자를 사전에 탈락시킬 수 있도록 규정했다. 특히 이 보직교수 직책에는 교무처장, 처·실장 외에 '교무부처장'까지 명시해 놓고 있다. 타대학들이 일반적으로 보직교수들에게 심사서류 검토권한을 준 사례가 없는 데 반해 덕성여대는 보직교수들에게 타전공 분야에 대한 심사권한까지 준 것이다.

개정된 '교수초빙세부 심사기준'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전공심사 및 면접심사 권한'이다. 개정안은 학과별 전공심사에 3인 내외의 외부전문가를 추가 위촉할 수 있도록 해 '덕성여대 교수 채용'이 타대학 교수 또는 외부인에 의해 결정될 수 있게 만들었다. 또 면접심사에도 학과교수들 외에 처실장 등 보직교수들을 심사위원으로 포함시켰다. 결국 개정안은 서류심사부터 시강까지 보직교수들의 참여를 가능케 해 보직교수들을 통한 학교측의 개입창구를 열어놨다.

그렇다면 덕성여대는 '개정안'에는 충실했을까.

덕성여대는 8월2일자로 공고하면서 8월14일까지로 접수기간을 설정했다. 이는 '임용예정일 3개월 전까지 일간신문에 게재해야 한다' '30일 이상 공고해야 한다'는 기본조항조차 지키지 못한 것이다. 또 인문과학대학의 미술사 전공과 예술대학의 서양화 전공의 경우 해당학과 교수의 의견수렴조차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내정자가 있을 것, 공고는 형식일 뿐"

일간지 공고내용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이어진다.

덕성여대는 공고내용에서 서양화과의 경우 '이론과 실기 겸비·해외에서 활동한 자'라고 명시, 교수들로부터 특정인을 내정해두고 형식적으로 공고를 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양화과의 한 교수는 "이론, 실기, 해외활동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국내에 단 몇 명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미선
또, 덕성여대는 공고에서 '신규교원은 3년에 한해 1년 단위로 계약임용'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실내디자인 전공은 1년'이라고 예외조항을 명시해 교수들로부터 "내정자가 있는 게 아니라면 채용도 안된 교수에게 학교측이 예외조항을 뒀을 리 없다"는 반발을 사고 있다. 실제 교수들 사이에서는 "00과에는 아무개가 온다더라"는 소문이 퍼져 있는 상태다.

'초빙분야' 없이 '약간명'을 모집하겠다고 공고된 교양학부의 경우도 "납득하지 못할 일"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덕성여대 교수협의회(회장 신상전)에 따르면, 덕성여대는 지난 7월24일 교양학부 교수 9명을 일방적으로 학과에 배치, 학과교수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교협측은 "이들은 당초 교양학부 소속으로 임용된 교수들이므로 해당학과의 동의, 교무위원회의와 인사위원회의 심의, 총장의 제청, 재단이사회의 의결 등 과정을 거쳐 처리하는 것이 상식임에도 박원국 이사장이 인사절차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일부 학과의 경우 기존교수들의 전공과 일치하기 때문에 새로 학과에 배치된 교수들이 가르칠 강좌가 없어 새로 배치된 교수들이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 강좌를 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협에 따르면 이들 교양학부에서 새로 배치된 교수들은 "당초 3년 기한으로 채용된 27명의 '모교출신교수 연수과정자' 출신 교수중 일부"로 알려졌으며, 이들은 지난 2000년 6월24일, 2001년 2월26일 두 차례 걸쳐 학교측에 의해 일괄승진된 교수들이다. 교협은 이와 관련 "1학기 학내사태 기간 중 박원국 이사장에게 충성하고 학생탄압에 앞장선 교수들에 대한 보상이라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덕성여대 "정책상 필요했다"

교수초빙에 대한 교수들의 문제제기에 덕성여대는 14일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총장은 전공학과의 요청이 없더라도 장단기 교원수급계획에 대한 정책상 필요한 분야에 대해 교원을 초빙할 수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학교측은 "교수초빙에 관한 장단기 수급계획과 교수초빙 세부심사 기준에 따라 지난 5월 중 각 학과로 전임교원 충원요청계획서를 제출할 것 요구했으나 학과에서는 교수충원 요청계획을 신청하지 않아 학교당국의 정책적인 판단에 의하여 교수충원을 시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교양분야에 특정분야를 제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교양과정 전분야에 걸쳐 유능한 교수를 널리 초빙하고자 한것"이라며 "실내디자인 전공분야는 전임교원 한 분이 갑자가 휴직하게 돼 2학기 초빙을 서두르지 않을 경우 평가에 어려움이 있어 부득이 초빙일정 단축했다"고 밝혔다.

교협 "교육부의 물타기 감사가 덕대비리 부추긴다"

그러나 덕성여대 학내구성원들은 교수채용공고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덕성여대 교수협의회는 지난 8일 "전공교수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 대학이 교수초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번 교수초빙공고는 '교수초빙 세부심사기준'에 위배되는 불법이므로 원천무효"라며 "학교당국이 교수초빙을 강행할 경우, 교육부, 청와대, 국회, 감사원, 검찰 등 관계기관을 통해 '교수초빙 무효화' '책임자 처벌' 운동을 벌어나갈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내놓았다.

교수협의회는 특히 오는 10월25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박원국 이사장이 퇴임전 자신의 세력을 심어놓기 위한 의도가 짙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협은 이의 증거로 "2002학년도 1학기 교수초빙 접수기간을 2001년 9월11일로 급하게 못박을 필요가 없는데도 박이사장은 자신의 퇴임전 구미에 맞는 교수들을 채용하고자 일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교협은 "학교측이 교수채용을 서두르는 이유는 신임교수를 초빙함으로서 재임용탈락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것"이라며 "서양화과에서 교수충원 요청이 있지도 않았는데 2001년 1학기에 재임용에서 탈락된 서양화과 양만기 교수의 후임충원을 불법적으로 강행하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협소속 교수들의 문제제기는 17일 발표된 교육부 감사결과에 대한 비난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는 17일 덕성여대 학내분규에 대한 감사결과로 "박원국 이사장 복귀후 교수재임용 제외 등으로 학내분규가 재연되었고...(박원국 이사장은) 대학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사장으로서 그 직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박원국 이사장을 엄중 경고하고 학내분규 해소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시행토록 조치했다"는 미미한 감사결과만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 교협 소속의 한상권 교수는 "교육부가 '교수임용비리'와 관련된 감사를 진행하는 중에도 학교측이 이처럼 불법적인 교수채용공고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교육부의 감사가 형식적으로 흘렀기 때문"이라며 "교육부의 이번 감사결과는 물타기 감사, 면피용 결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오영희 교수도 "박원국 이사장의 독단적 학교운영에 대한 지적은 10년이 넘게 이어져 왔을 뿐더러 교육부에서조차 97년도에 감사를 통해 해임시켰던 '재범'인데 어떻게 이런 미미한 결과만 내놓을 수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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