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기의 물결이 미국땅을 온통 뒤덮고 있다. 테러참사 이후 애국주의가 뜨겁게 대두한 덕분이다. 거리마다, 상점마다 성조기가 나부끼고, 운동장에도 어김 없이 성조기가 흩날린다. 미국민들의 애국심은 부시 미 대통령이 무기한 보복전쟁을 천명하면서 더욱 가열되다. 성조기가 복수심을 자극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미국의 기업들은 이런 특수를 놓칠새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광고를 잇따라 게재하고 있다. 성조기를 소재로 한 의류들이 쏟아지고, 심지어 맥주회사 광고간판도 성조기 그림으로 대체됐다. 미국에 성조기를 수출해 온 중국의 봉제 공장들이 때아닌 특수를 맞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뉴스도 들린다.
조금 있으면 세계는 다시 전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무한정의'(Infinite Justice)에서 '항구적인 자유'(Enduring Freedom)로 옷을 바꿔입은 미국의 초강력 화력 앞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까. 잿더미 밑에 파묻혀 어미를 잃고 울부짖을 아프간 어린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미국의 '항구적인 자유'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할까. 아니 이해할 수 있을까.
애국심의 광기에 사로잡혀 미쳐 돌아가는 세계를 보면서 나는 여기 한 편의 시를 소개한다.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로 유명한 권정생 님이 쓴 시다. 이름하여 "애국자가 없는 세상." 잠시 가슴으로 읽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지구라는 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친 짓들에 대해 사색해 보자.
애국자가 없는 세상 / 권정생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대포도 안 만들테고
탱크도 안 만들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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