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애국자가 없어진다면?

등록 2001.09.26 14:35수정 2001.09.26 15:08
0
원고료로 응원
성조기의 물결이 미국땅을 온통 뒤덮고 있다. 테러참사 이후 애국주의가 뜨겁게 대두한 덕분이다. 거리마다, 상점마다 성조기가 나부끼고, 운동장에도 어김 없이 성조기가 흩날린다. 미국민들의 애국심은 부시 미 대통령이 무기한 보복전쟁을 천명하면서 더욱 가열되다. 성조기가 복수심을 자극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미국의 기업들은 이런 특수를 놓칠새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광고를 잇따라 게재하고 있다. 성조기를 소재로 한 의류들이 쏟아지고, 심지어 맥주회사 광고간판도 성조기 그림으로 대체됐다. 미국에 성조기를 수출해 온 중국의 봉제 공장들이 때아닌 특수를 맞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뉴스도 들린다.

조금 있으면 세계는 다시 전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무한정의'(Infinite Justice)에서 '항구적인 자유'(Enduring Freedom)로 옷을 바꿔입은 미국의 초강력 화력 앞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까. 잿더미 밑에 파묻혀 어미를 잃고 울부짖을 아프간 어린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미국의 '항구적인 자유'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할까. 아니 이해할 수 있을까.

애국심의 광기에 사로잡혀 미쳐 돌아가는 세계를 보면서 나는 여기 한 편의 시를 소개한다.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로 유명한 권정생 님이 쓴 시다. 이름하여 "애국자가 없는 세상." 잠시 가슴으로 읽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지구라는 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친 짓들에 대해 사색해 보자.

애국자가 없는 세상 / 권정생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대포도 안 만들테고
탱크도 안 만들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중3 아들 통장에 매일 찍히는 여자 이름, 그 의심의 결과 중3 아들 통장에 매일 찍히는 여자 이름, 그 의심의 결과
  2. 2 '로비자금'으로 전락한 13조 원...농협의 해묵은 악습에 충격 '로비자금'으로 전락한 13조 원...농협의 해묵은 악습에 충격
  3. 3 윤석열 마크맨의 소감 "인수위 해단식 때 그 냄새, 90%는 맞았지만..." 윤석열 마크맨의 소감 "인수위 해단식 때 그 냄새, 90%는 맞았지만..."
  4. 4 식당 하는 내가 '흑백요리사2'에서 계속 돌려본 장면 식당 하는 내가 '흑백요리사2'에서 계속 돌려본 장면
  5. 5 [광주·전남 통합] 김영록16.9%, 민형배 15.8%, 강기정 9.1%, 신정훈 8.3% [광주·전남 통합] 김영록16.9%, 민형배 15.8%, 강기정 9.1%, 신정훈 8.3%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