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을 위해 쉽게 쓴 우리 과학의 역사
전상운 교수는 그 동안 한국과학기술사의 대중적 보급을 위해 많은 책을 썼는데 이 책은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전상운 교수는 지금까지 많은 과학사 책을 써냈다. 지난 66년에는 <한국과학기술사>를 쓰기도 했는데 이 책은 영어와 일본어로도 번역되어 우리의 과학기술을 외국에 소개하는 몫도 톡톡히 했다.
책은 하늘의 과학, 흙과 불의 과학, 땅의 과학, 한국의 인쇄기술 등으로 구성된다. 내용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과학사를 시대적으로 다루지 않고 분야별로 다루고 있다. 즉 천문학, 지리학, 청동기 기술, 철기 기술, 인쇄술 등 대표적인 기술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내용을 보기 전에 우선 예쁜 컬러사진이 눈에 뜨인다. 책이 크기도 크고 무게도 꽤 나가 매우 어려운 내용이 들었나 보다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좋은 사진들을 많이 담고 있다. 물론 이 컬러사진들이 책의 가치를 높여준다. 사진들은 이해를 위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아는 과학의 성과물들이 대부분 직접 보지 못한 것들이기 때문에 사진은 많은 도움이 된다 하겠다.
우리 과학을 스스로 폄하하지 마라
우리는 대부분 측우기가 실제로 어떻게 강우량을 측정했고, 물시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알지 못한다. 그에 대해 궁금한 분들이라면 이 책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이 책을 읽다보면 '이토록 우리의 과학기술에 대해 몰랐던가'하는 반성이 든다. 그리고 우리의 과학과 기술을 중국의 아류쯤으로 생각하면서 스스로 폄하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이는 물론 일제의 식민지 사관을 우리가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한국과학사의 흥미로운 여러 주제들을 만나게 된다. 익히 알고 있는 신라의 첨성대가 실제로 관측을 위해 만든 것인지 제례를 위해 만든 것인지 기존에 행해진 토론을 종합하여 보여주는 내용도 여러 가지를 고민하게 하고,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유리 그릇의 모양이 이란과 페르시아 지역에서 수입된 것과는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우리가 오리엔트의 유리를 수입만 한 것이 아니라 유리를 스스로 생산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며 흥미를 끌고 있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청동기·철기 기술을 지녔다는 가설을 제시하여 흥미를 끌기도 한다. 이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들어 보자.
"한국의 청동기 기술이 중국의 그것과는 다른 계통이라는 필자의 가설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정설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을지 결말이 날 것이다. 유의해야 할 점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중국의 청동기 분석은 수 백 개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것은 이제 겨우 50여 개의 자료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의 고대기술이 언제나 중국의 기술에 의해서 성립되었다는 생각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일본학자들의 오랜 정설과 최근에는 중국학자들까지도 고대중국기술 우월의 고정관념을 앞세워 모든 문제를 해석하려는 현실에 머무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친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도 학문적인 객관성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것이다." (p184)
"현재는 회령, 무산 두 유적의 철기가 중국 철기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고 생각되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 그밖에 다른 유적에서도 한국의 철 기술이 중국의 철기기술에서 비롯되었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또한 고도로 발달된 청동기 기술에서 철 기술로 발전하는 과정은 다른 지역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p192)
"아무튼 그 시기에 거푸집으로 무쇠제품을 부어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민족은 지구상에 몇 되지 않았다. 더욱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이나 시베리아의 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독특한 형식의 무쇠도끼 제품을 같은 규격의 돌거푸집을 사용, 대량으로 만들어낸 사실은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 (p194)
이쯤 되면 저자가 과도한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의 철기 문화가 후대에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은 과소평가할 수 없지만, 처음부터 우리의 철기 문화가 중국의 철기 문화와 연결되는 것으로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한국과학사인가 한국과학기술사인가
이 책은 어려운 학술용어를 쉬운 말로 바꿔 쓰려는 노력을 많이 했음을 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책들은 한자가 많이 들어가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는 약간의 한자만을 괄호 처리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런 점은 저자와 출판사가 많은 이들이 읽게끔 노력했음을 알 수 있는 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우선 한국과학의 역사를 두루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먼저 생물, 의학부분이 빠져 있음을 지적할 수 있겠다. 또한 서양과학이 조선시대 후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다루지 않고 있다. 서양과학을 어떻게 수용했고 그것을 어떻게 주체적으로 발전시켰는지는 다루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우리의 과학을 어떻게 계승시켜 발전시킬 것인지 실마리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실제로 "과학사"라기 보다는 "과학기술사"에 가깝다. 저자와 출판사에서도 알고 있을 텐데 왜 이 책을 과학기술사라고 하지 않고 굳이 과학사라고 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은이가 40년 넘게 한국과학사만을 생각하면서 연구했던 것을 쌓은 성과이며 불모의 분야에 이룬 업적은 감히 폄하할 수는 없다. 또한 일반인들이 한국과학의 역사에 친근하게 접할 수 있게 배려했다는 점은 높이 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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