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일방적 보도에 의해 졸지에 '언론개혁 홍위병'이 된 월간 말지 정지환 기자입니다. 이 논란과 관련하여 몇 마디 드리고자 글을 올립니다.
우선 '조·중·동' 세 신문사가 보도한 내용 중에는 사실과 다른 것이 있습니다.
(1)언론개혁 워크숍에 제가 '초청'됐다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언론문제를 담당하고 있던 저는 그날 오전에 월간 말지 8월호 기획회의를 마치고 다른 취재 관계로 프레스센터에 갔다가 천안에서 1박2일로 워크숍이 있다는 말을 듣고 즉석에서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취재 계획에 없던 행사였지만, 앞으로 전개될 언론개혁운동의 흐름을 파악하려면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세 신문사의 기자들이 국감자료를 봤다면, 이 행사가 '언론 관련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연수를 겸해서 열린 행사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런 행사의 성격을 뻔히 알고도 '언론사 기자'가 '초청'됐다고 보도한 것은 부실한 취재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거나, 아니면 어떤 의도가 개입된 것이 아닌지 의심치 않을 수 없습니다.
(2)저의 발언 중에서 "민주당의 386 국회의원이 한겨레신문 살리기 운동을 했다"는 내용도 사실과 다릅니다.
제가 했던 정확한 발언은 "민주당의 한 386 정치인이 한겨레신문 보기운동을 전개했다"입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국회의원'이 아니라 '원외 지구당 위원장'이 객관적 사실입니다. 당시 이 사례를 소개한 이유는, 토론회 과정에서 조선일보 등 특정신문을 반대하는 '네거티브 운동'도 필요하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포지티브 운동'도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어, 제가 패널로 참석했던 어느 세미나에서 역시 패널로 참석한 386 정치인 당사자에게 직접 들었던 내용을 소개한 것입니다.
이는 세 신문사 기자들이 취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당사자 확인'(크로스 체킹) 절차만 거쳤다면 정확하게 보도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기자들은 이러한 취재의 기초를 무시한 '부실보도'에 대해 적절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임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9월 26일자 1면에서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의 입을 빌려 "언론재단이 '조·중·동'을 깨기 위한 전투요원을 양성하기 위한 훈련원 역할을 한 것이 드러났다"고 충격적인(?) 보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근거라는 것을 보니, (1)언론재단이 정부 산하기관이라는 점 (2)워크숍에 7백만원을 지원했다는 점이 전부더군요.
그래서 오늘 제가 확인을 해봤습니다.
우선 언론재단이 올해에 지금까지 실시한 연수사업은 총 38건이라고 하더군요. 이 중에서 언론관련 시민단체에 대한 연수는 이 워크숍 한 건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연수사업의 혜택은 대부분 '조·중·동' 기자들이 받았더군요.
이번엔 예산액을 따져봤습니다. 언론재단의 1년 전체 예산은 약 395억원, 연수사업 예산은 4억4천만원이라고 하더군요.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건수로 보면 38분의 1, 액수로 보면 전체 예산의 4000분의 1, 연수사업 중 40분의 1에 불과한 행사를 가지고(그리고 나머지 예산의 혜택은 자신들이 다 누려놓고) 이런 보도를 하다니!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언론재단이 '정부 산하기관'이라는 점을 은근히 강조했습니다만, 제가 확인해 보니 '정부 산하기관'인 언론재단의 예산을 왕창 가져다가 쓴 것은 정작 조선일보이더군요.
흥미로운 것은 조선일보사 사원들의 컴퓨터 교육까지 언론재단의 예산으로 시켰군요. 이 사업에는 무려 1899만원의 예산이 투입됐습니다. 더욱이 이 교육에는 사장에서 수습사원까지 참여했습니다.
다음은 조선일보사 측에서 99년도 이 사업을 담당한 이준호 기자(사장실 근무)가 언론재단에 보낸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저희 (연수자) 명단을 보내드립니다. 생각보다 조금 많아졌습니다. 사원들이 아주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조선일보 직원들에게 보낸 글입니다.
"지원자가 넘쳐 점심반을 개설했습니다. …언론재단 연수부에서는 이것이 무료인 만큼 수강생들이 무단결석하지 말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잦은 결석으로 조선일보 사원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언론재단 연수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결석하면 수준이 낮아진다고 협박(?)까지 하면서 출석을 독려했던 조선일보가 정작 가난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약간의 예산을 지원받아 워크숍을 했다고 이렇게 생난리를 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일간지 기자들은 '정부 산하기관'인 언론재단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해외연수도 다녀오고, 대학원에도 다니고, 책도 쓸 수 있습니다. 특히 장기해외연수의 경우에는 1년에 5천만원이라는 엄청난 액수까지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액수는 웬만한 시민단체의 1년 예산과 맞먹는 것입니다. 더욱이 일간지 기자들은 언론재단을 통해 주택자금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들의 봉급이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제가 알아본 바로는, 10년차를 기준으로 하면, 적게는 6천만원 많게는 8천만원이라고 합니다. 이 액수는 프로야구선수 평균 연봉 4천만원보다도 많은 액수입니다.
이런 분들이 월급 50∼80만원 받고 사회개혁을 위해 열심히 뛰는 언론단체 활동가들이 7백만원 받아서 워크숍 한 번 했다고 이렇게 흥분해서 공격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물론 그들은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날 나온 발언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언론재단의 연수 원칙은 주최측에 모든 것을 맡기는 '맞춤연수'입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해 연수를 신청한 모든 단체들이 언론재단의 간섭 없이 강사도 선정하고 프로그램도 알아서 진행해 왔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이, 참석자들의 수많은 발언 중에서도 유독 입맛에 맞는 부분만 침소봉대해서 보도하는 것은 분명 문제였습니다. 그들의 그런 태도에 대해 저는 '깡패식 침소봉대 보도'라고 명명하고자 합니다.
'조·중·동'은 저를 포함해 그날 워크숍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또 다시 '홍위병'으로 매도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언론권력의 주구'냐고 저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고백을 하고자 합니다.
"한일합방은 한국의 행복을 위해 체결한 조약" "데라우찌 총독은 한국의 대근원 기초한 위대한 창업공신" "7대에 걸친 조선 총독의 30년 통치로 문화한국 건설 가능" 등등의 천인공노할 매국적 보도를 하고도 민족 앞에 단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도리어 '민족지'라고 큰 소리치는 사이비 언론사와 싸우는 것이 언론개혁이라면, 저는 흔쾌히 그 홍위병이 될 것입니다.
국민들로부터 대통령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 체육관에서 종신 대통령을 뽑기 위한 유신헌법을 밀어붙이기 위해 실시한, 국회해산·대학휴교·언론사전검열 등의 조치를 담은 불법적 비상계엄령 쿠데타 조치를 '구국의 영단'이라고 보도한 그 입으로 지금 언론자유를 외치는 사이비 언론사와 싸우는 것이 언론개혁이라면, 저는 당장 그 홍위병이 될 것입니다.
노태우 정부의 보건사회부가 92년 5월 25일 공식적으로 발표한 불법적 호화분묘 조성 특권층 91명의 명단에 자사의 족벌사주가 들어있자 아예 무시해 버리고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으며, 89년 6월 8일 서울시가 발표한 땅부자 명단에 자사 사주의 14살짜리 손자가 6등으로 오르자 5등까지만 명단을 밝힘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보다 족벌사주의 체면을 우선시했던 사이비 언론사와 싸우는 것이 언론개혁이라면, 저는 정녕 그 홍위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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