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향집 일손을 거듭니다

어머니 밭에 며느리 옥수수가 심어진 이유

등록 2001.09.29 12:22수정 2001.09.2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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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은 아마도 마냥 즐겁기만 했던 추석과 설이 부담스러운 하나의 짐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의 추석과 설은 별다른 이벤트가 없는 시골아이들에겐 명절 그 본연의 의미대로 그야말로 참 즐겁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종갓집이라 손님도 많고 먹거리도 풍부한 편이어서 저는 더욱 더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뭐, 약간 귀찮은 일도 있긴 있었습니다. 추석 때마다 뒷동산에 올라가 송편을 삶을 때 사용하는 솔잎을 한 아름 따와야 하는 것이 제 임무였는데, 그 정도 수고야 다른 즐거움에 비하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것이었죠. 한마디로 마냥 즐거운 추석과 명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명절이 마냥 즐겁고 신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졸업이 다가온 해는 '넌 장손이니까 제대로 빨리 취직을 해야 한다'라는 친척어른들의 걱정스런 격려와 다짐으로 '즐거운 추석'은 서서히 막을 내린 거죠.

사실 명절이 다가오면 어머니의 한숨소리로 대충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명절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은 명절은 완전히 '짐'으로 정착해버렸습니다. 아마도 더욱 고생스러운 것은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와 종갓집의 하나뿐인 며느리인 제 아내겠지요.

그렇습니다. 이젠 더 이상 명절은 내 마음을 부풀게 하는 날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이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변치 않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추석이 다가오는 때에 들판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그 추석 나절의 저녁들판 풍경은 굉장히 아름답고 풍요롭게 느껴지죠.

'아름답다거나 풍요롭다.' 사전적 의미가 아닌 체감적 의미(?)를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아했습니다. 감나무밭 옆에 있는 산 아래 논두렁에 앉아 넉넉한 계단처럼 이어진 누렇게 익은 논들을 바라보노라면 눈앞엔 잠자리떼가 날고 있고 저 멀리엔 저녁노을이 발갛게 익어가는 그 풍경. 그 풍경을 전 일년 내내 추억하며 삽니다.


그런데 요 며칠 전엔 가을들녘을 감상할 틈도 없었죠.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일꾼 하나를 만난 어머니는 제게 들로 나가 감나무에 약을 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요즘은 일손이 없는 터라, 일 년에 한 번도 제대로 약을 치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때라도 제가 일꾼역을 톡톡히 해야 하는 것이지요. 등에 농약통을 지면 등에 땀이 두루룩 흘러내립니다.

그렇게 몇 통을 간신히 살포하고 나서 밭두렁에 걸터앉아 수십 년 동안 봐오던 그 논과 밭들을 바라봅니다. 늘 그 밭에 심어져 있는 콩,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오랫동안 맨 윗밭에 심은 고구마... 항상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그 여러 필지의 밭에 생긴 작은 변화를 발견하고 새삼 신기해합니다. 그것은 S자 형으로 꼬부라진 긴 콩밭 밭두렁 밑에, 암탉을 따라 소풍가는 병아리처럼 앙증맞게 서 있는 옥수수들입니다. 아마도 그 자리에 옥수수가 심어진 것은 제가 태어난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 옥수수가 처음으로 심어진 이유는 이렇습니다. 제 아내는 난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서리가 옆집 옥수수였다고 말할 정도로 옥수수를 좋아합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아셨는지 어머니께서 옥수수를 좋아하는 며느리를 위해 그 자리에 옥수수를 심은 것이죠.

사실 작년에 어머니가 옥수수를 심어놓은 것을 보고 올해는 제가 심으려고 했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어머니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던 것입니다. 올해 여름 내내 저희 부부는 그 옥수수를 맛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시장에서 산 것처럼 크지도, 탐스럽게 생기지도 않고 군데군데 벌레가 먹고 크기도 자그마하지만 어머니가 그 옥수수를 바리바리 챙겨줄 때마다 그 정성이 참 고마웠었죠.

추석이 다 된 지금 그 옥수수는 이젠 초라하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그 옥수수를 위해 한 일이라곤 고추농약을 칠 때 농약을 살포시 뿌려주거나 거름을 한 움큼 준 것밖에 없습니다.

명절이 다른 것은 다 빠져도, 며느리 옥수수처럼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살포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추석 들녘을 감상하는 것 외에 그 며느리 옥수수도 좀 뽑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내년엔 좀더 크고 맛있는 옥수수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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