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찾는 젊은 연인들

<우중산책>희망의 근거를 찾아서(전라북도편)

등록 2001.09.29 19:19수정 2001.09.29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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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피어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덕진공원과 전북대 구내와 공설운동장 주변을 차례로 밤새 배회하고 있습니다. 공원에서 슬슬 걸어나와 전북대 구내를 별볼일도 없는 걸음으로 돌다가 공설운동장 주변으로 갔다가 다시 공원으로 찾아들어가는 그야말로 백수건달의 발걸음소리가 유랑인 자신의 귀에까지 또렷하게 들려오는 밤입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자동차들의 소음이 멀리로 아슴하게 잦아갈수록 풀벌레 소리가 또렷해지면서 어둠을 찾는 연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군요.


보입니다. 보고 싶어서 보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보입니다. 인적이 뜸해진 탓으로 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로등과 나무들의 그림자를 마치 흔들어서 깨우듯이 끊임없이 부시럭거리는 연인들의 발걸음소리가 귀에 들리기에 앞서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주 친근하게 서로의 손을 꼭 잡거나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탓으로 어색해서 약간의 사이를 두고 어둠을 찾아 남몰래 은밀하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재빨리 사라지고는 합니다.

서로가 상대의 몸에서 틈을 발견하고 거기에 자신의 촉수를 깊숙이 박아넣은 것처럼 착 달라붙어 있는 커플이 있는가 하면 서로의 몸에 익숙하지 않은 탓으로 한 걸음쯤 사이를 둔 커플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가 되었건 그들은 마치 훈련이 잘 된 의장대의 병사들처럼 움직임의 폭이 동일하고 그 행동은 부드럽기가 한이 없습니다.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고, 상대를 앞지르지도 않고 뒤처지지도 않습니다. 서로의 존재와 그 존재의 <정당한> 욕망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요.

때문에 그들은 어둠 속에서도 더 어두운 요지를 발견하면 지체없이 그곳을 아지트로 결정하고 별도의 합의절차도 없이 그냥 스며들어갑니다. 오래 전에 이미 그렇게 하기로 약속이나 되어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더러는 일껀 찾아낸 그 은밀한 장소로부터 쫓겨 나오기도 하지요. 바닷가의 작은 게들이 갑작스런 위험을 느끼고 너무 급하게 집을 찾아 들어갔다가 남의 집을 침범한 탓으로 이내 쫓겨 나오듯이 연인들도 가끔은 그렇게 쫓겨 나오기도 합니다.

바닷가의 작은 게들 가운데는 원래의 주인을 몰아내고 침입자가 주인으로 들어앉게 되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는 얘기를 유랑인은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짓궂은 상상이겠지만, 그것을 상기하며 지켜보았지만 아직 연인들에게서 그런 징후는 발견되지 않고 있군요.


그들은 본디 아무런 미련도 회한도 없다는 듯이 이내 돌아서서 다른 은밀한 곳을 찾아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어떤 견해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쫓겨난, 아니 스스로 물러나온 그들은 곧 자기들만의 거처를 찾아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랑에 빠진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영민한 후각과 낙관적인 미래관을 갖고 있는 까닭으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곳은 곧잘 찾아내게 되어 있으니까요.

유랑인이 지금 약간 흥분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가봅니다. 유랑인은 지금 여기에서 하나의 희망을 봅니다. 희망을 얘기해도 괜찮겠다는 예감을 받습니다. 어둠을 찾아 어둠 속을 방황하는 연인들의 조심스런 발자국 소리가 유랑인에게 그런 강한 예감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연인들이란 단어에는 무엇이 내포되어 있는가요. 그것은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이지요. 그것은 인색하리만치 폐쇄되고 닫혀 있습니다. 둘이서 무엇인가 열심히 일을 벌이고 있다가도 어디서 누가 오는 기척이 들리면 즉시 중단하고 우리 아무 것도 안 했어, 하고 시치미를 떼거나 도둑질하다 발각된 것마냥 어쩔 줄을 몰라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밥을 먹다가 누가 온다 해서 멈추거나 당황해하지는 않지요. 그러나 연인들의 사랑의 행위는 마치 그들의 내부에 자동제어장치라도 있는 듯이 즉각적으로 중단되어 버립니다. 이것은 무슨 현상인 것일까요. 그들이 너무나 인색해서? 사랑에 빠지면 저도 모르게 인색해져서 혹시나 그것을 빼앗길새라 타인을 경계하게 되는 것일까요.

확실히 그런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둠을 찾는 연인들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타인에 대해 닫혀 있고 인색해져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의 행위를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분배할 의사가 조금도 없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들의 사랑의 행위는 그들의 최고 최대의 재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의 행위를 두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고,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으며, 그 소유권을 자칫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인식까지도 막연하게는 갖고 있는 것이지요.

이때의 소유란 물론 서로가 서로에게 집착한다거나 감시하는 식의 소유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집착이나 감시는 분명 사랑에 뿌리를 둔 소유는 아니지요. 그것은 예금통장이나 냉장고 속의 쇠고기처럼 언제든지 소모될 수 있는 그야말로 소유를 위한 소유일 뿐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소유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유는 이미 못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러한 소유는 뿌리가 없는 탓으로 외부의 어떤 요인에 의해 언제든지 훼손되거나 붕괴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가, 혹은 그녀가 죽었을 때 내 마음이 무너지는 것, 뿌리가 있는 소유란 그런 것이겠지요. 때문에 그것은 타인에게 양도할 수도 없고 분배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숨어야 하고, 숨어야만 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러한 사랑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강한 연인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희망을 얘기해도 괜찮다고 봐야겠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진실로 소유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아직 사랑 이상으로 모두가 동의하는 깊이 있는 답을 접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인류의 역사가 대단히 깊은 것 같지만, 스스로 깊다고 말들은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아직 진실로 재산다운 재산이 무엇인가조차 제대로는 파악하고 있지를 못하잖습니까. 기껏 안다고 떠들어대는 것이 땅이다 아파트다, 권력이다 명예다, 아니다 주식이다 황금이다 뭐 이런 너무나도 진부해서 껄렁한 흰소리들뿐이지 않습니까. 그것마저도 다른 한편에서는 절대적인 재산이 못 된다고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고 말입니다.

땅이라든가 아파트라든가 황금이라든가, 주식이라든가 최신형 자동차 같은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일시적인 충만감을 주기는 하지요. 그 대신 <그들>은 우리에게서 반드시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강제로 마치 빼앗아가듯이 접수해 갑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미처 알지도 못했던 무엇인가를, 무엇인지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대단히 소중한 것인 것만은 분명한 그 무엇인가를 <그들>은 우리에게서 부(富)와 명예의 조건으로 압류해 가는 겁니다. <그들>이 그렇게 우리에게 부를 주고 무엇인가를 압류해간 그 자리에 남는 것이 바로 공허, 우리가 흔히 허무감이라고도 말하는 그것이지요.

공허. 다른 것은 별로 몰라도, 우리는 그것만은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공허감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대개 사랑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알만한 것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사랑보다는 최신형 자동차를, 아파트를, 황금이나 혹은 권력 따위를 소유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가치를 부여하고자 안간힘을 다합니다.

도대체 이것은 또 무슨 조화인 것일까요. 사랑이 없다고, 인생에서 가장 요긴한 사랑 그것이 없다고, 그래서 가져야 한다고, 시급하게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은 늘 그렇게 하면서도 행동이 받쳐주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데올로기라고 봐야겠지요. 인간이 인간에게 심어놓은 각종 이데올로기 가운데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우리는 지금 내부에서부터 조종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성장 이데올로기. 더 크게, 더 높이,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에이즈보다도, 에볼라 바이러스보다도 훨씬 강력한 이 성장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우리의 영혼은 파괴당하고 잠식당하고, 사랑이 들어설 자리마저 점령을 당해버린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희망을 얘기할 때 젊음을 항상 빼놓지 않고 거론하는 이유도 결국은 그것이 아니던가요. 아직은 바이러스에 덜 감염된, 이데올로기에 덜 노출된 파릇파릇한 풀잎 같은 영혼이야말로 그 어떤 이론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희망의 소굴이요 근거지라는 점에 대해 우리는 이미 합의를 봐놓고 있지 않은가요.

가끔은 악랄한 파시즘의 공격을 받고 무너지기도 하지만, 젊은 영혼의 저 안쪽에 희망의 씨앗이 있다는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요. 적어도 그들이 사랑의 열망을 안고 있고, 그 열망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를 알고 있는 한에서는 그렇다고 여겨집니다.

만약에 그들이 기성인처럼 자기통제력을 상실했거나 혹은 포기한 채로 휘청거린다면, 사랑의 씨앗을 끄집어내기 위해 어둠 속에서도 더 깊은 어둠을 찾아 헤매는 열정에 몰입하기보다는 도처에서 유혹하는 러브호텔의 침대에 그냥 무릎이나 꿇어버린다면 우리가 굳이 희망이다 뭐다 구차하게 호들갑을 떨 이유는 사실 없는 것이겠지요.

섹스는 은밀한 것도 아니고, 부끄러워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라는 사상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요즈음 이러한 단상은 어쩌면 지나치게 편협하고 덜떨어진 단견이라고 비판을 받을지도 모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유랑인은 그 반대편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시각을 철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혹 한심한 녀석이라고 나를 향해 침을 뱉는다 해도 말입니다.

마음만 돌려먹으면 언제라도 기어 들어갈 수 있는 러브호텔이 저기에 저렇게도 요란한 불빛을 깜박거리며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라도 벌거벗은 몸뚱이를 고깃덩어리처럼 던져놓고 씩씩거릴 수 있는 침대가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처럼 널려 있는데, 그런데도 굳이 그것을 외면하고 모기들이 웅웅거리는 수풀 속으로 사라져 가는 저 연인들의 둥그런 그림자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또 어디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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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톡톡 6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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