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이 책 한 권이 되어 나왔습니다

'어머니 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 제목을 달고

등록 2001.09.29 23:09수정 2001.09.3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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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삶이 시들해졌다. 어머니 돌아가신 뒤 잔병이 깊어지더니 그것이 긴 병이 되어 매일 병원 출입을 했다. 그래도 아직 병의 끝은 기침으로 남고 목을 갑갑하게 한다. 쉬지 않고 주절대던 글이 침묵하고 사고는 얼어붙었다. 그 참에 내게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글을 쓰지 않는다고 궁금해 하지 않는 세상의 침묵이 서럽지는 않았다. 내가 문필가로 일세를 풍미하는 작가는 아니기에, 독자들이 내 글을 읽고 망각에 빠져도 그것은 나의 무능이지 독자의 탓은 아니었다.


나와 내 주변을 따뜻하게 바라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내 기쁨이지, 독자들의 관심이 나 아닌 다른 그 어느 곳에 있건 굳이 내가 관심을 둘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의 무관심이 더러는 쓸쓸했고 외로웠다. 그러니 그 이메일이 내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글을 잊고 지낸 지 한 달여 만에 내게 다가온 다정한 글 몇 줄은 보약 한 재보다 더 값진 것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이제나 저제나하며 둘러보지만 안보이네요.
이 와중에 안보인다고 제가 투정부리는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밖을 보니 다들 부산한데 저만 한가한 것같아서 쓴웃음이 나옵니다.
이제 힘을 내시지요.
여러 분들이 선생님의 글을 기대한다면 조금은 위로가 될까요?

최명희 작가는 단 한 사람이라도 했는데...
92년에 보았다가 최근에 다시 4권까지 읽었습니다.
황선생님이 그리 집착하는 느낌이 살아납니다.
아꼈다가 다시 5권부터 읽을 생각입니다.

어머님이 안계신 명절이 얼마나 허전한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이라 더욱 허망하시겠지만 어떡하겠습니까?
식구들 위로하시려면 먼저 힘을 내야 하니...
한가위 잘보내시구 10월쯤에는 글을 읽구 제가 위로받았으면 합니다."


누구 한 사람 지켜보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살 만하다. 나는 그 동안 침묵만으로 산 것은 아니었다.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이 창간 준비호에서 지금까지 300회를 넘었고, 조회수가 11만회가 넘었다.


나는 내 글을 모아서 내 손으로 직접 책 한 권을 꾸미려고 했다. 글을 갈무리해서 모으니 천여쪽이 되었고, 그것을 복사와 제본을 같이 하는 곳에 맡겨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두려고 했다. 내 글과 함께 하는 댓글도 복사를 했다. 삶의 자취는 내 글에 있었고 독자의 숨결은 댓글에 있었다. 내게 칭찬은 하는 글도 있었고, 내게 상처를 주는 글도 있었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진짜 책 한 권을 만들게 되었다. 어느날 내 친구의 사무실에 문득 들른 출판사 사장이 친구 컴퓨터에 떠 있던 내 글을 우연히 보았다. 그러더니 내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글로 책 한 권을 만들지요."

말이 나오자 바로 시작을 했다. 내 글의 모난 부분을 다듬고, 주제를 정하여 목록을 만들고 반복되는 이야기를 걸러 책 한 권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과 장인 장모님과 친구와 이웃들의 이야기가 책 속에 모이게 되었다. 나는 작가 최명희의 이야기를 함께 넣으려고 했으나 출판사 사장은 이번에는 내 이야기로만 꾸미자고 했다.

책이 나온 후에 나는 교보문고에 가 보았다. 내 청춘의 꿈과 장년의 회한을 메워주던 곳은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였다. 그 곳의 문구점에서 나는 내 능력으론 가져볼 수 없는 고가의 만년필과 만나기도 하고, 시스템 수첩의 간지를 사기도 하고, 3m의 양면 테이프를 사기도 했다.

바닥에 앉아 책을 펼쳐놓고,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책장을 펼치면 거기에서 풍겨나오는 종이와 잉크 냄새가 유년의 내게 안겨주던 어머니의 잔등 냄새처럼 친밀했다.

그 교보문고에 가면 도서 검색 컴퓨터가 놓여 있다. 나는 '어머니'하고 키보드를 때렸다. 어머니에 대한 책제목이 줄줄이 흘러내린다. 어머니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책 중간에 내 이름이 뜬다.

'어머니, 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

사실 그 제목을 책제목으로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아내를 주제로 '가시는 없어지고 향기만 남은 아내'라는 제목을 달고 싶었다. 어머니 생각을 이제 접어두고 싶었다. 내 마음과는 달리 출판사 '흥부네 박'의 사장은 사람 눈에 띄는 강렬한 제목으로 독자를 생각할 틈 없이 책에 끌리게 하고 싶어했다.

비소설 18번 신간 코너에 내 책이 놓였다. 책을 사기만 했던 곳에 내 책이 놓인 기분은 낯설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수많은 책 속에 다소 표지가 단순해 보이는 내 책에 얼마나 독자의 관심이 갈까. 나는 농담삼아서 흥부네 박 사장에게, "대박이 터져야 할 텐데요"하고 걱정을 했다. 나는 책 한 권을 얻었으니 큰 만족이다. 하지만, 상대방에게도 나만큼의 기쁨이 있어야 할 터인데, 그것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제 추석이 바로 앞에 왔다. 얼결에 어머니를 떠나보낸 자식은 이 책 한 권을 들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갈 참이다.

"어머니, 가슴에 묻고 갈 이야기가 책이 되었습니다. 이제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나날은 병과 동무하던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남이 쓴 글처럼 내 책을 보면 어머니의 간병에 자식노릇을 제대로 했는가 새삼 부끄럽습니다. 어머니, 이제 저는 사모곡도 제대로 들을 수 없고, 그 노래를 목이 메어 부를 수도 없습니다. 어머니, 이 책은 어머니의 이야기이며 어머니의 분신인 저의 이야기이며 부르지 못한 사모곡입니다."

덧붙이는 글 | 세상 사람들은 자기만의 한 권의 책을 가지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기도 하건만 나는 살아서 내 책을 갖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세상 사람들은 자기만의 한 권의 책을 가지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기도 하건만 나는 살아서 내 책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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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톡톡 6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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