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전화 한 통화가 그립다

따뜻한 추석인사는 내가 먼저 나서야 한다

등록 2001.10.01 00:30수정 2001.11.0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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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회사에 근무할 때 황 부장은 세상일을 넓게 보며 사람들에게 관대하였다. 공무부장으로 있던 그의 자리는 내가 맡은 개발사업부와는 사람 얼굴이 가물한 거리에 있으면서도 전화 통화를 하는 중간에 터지는 그의 명랑하고 기운찬 웃음소리에 듣는 사람들도 신바람이 났었다.

나는 웃을 일이 없는 재개발. 재건축 담당 부장이었다. 그는 황 부장이고 나도 황 부장으로 같은 항렬로 내가 생일이 조금 빠른 형뻘로 그는 회사 고참이었고 그는 나와 함께 있을 때 형 대접을 하여주었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나도 그만 두었다.


그가 하는 일을 내게 권했고 나도 뒤따라 함께 했다. 그 일이 ISO 심사원이었다. 99년도에는 신바람이 났다고 했다. 늦게 시작했으니 나는 신바람 뒤에 뒷바람만 맞았으나, 심사원이 되는 과정에서 그가 돌보아준 따뜻한 정은 고마웠다.

내가 투자를 한 사업이 있었고, 나는 황 부장을 그 사업을 소개를 했다. 세상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고 그 사업으로 끌탕을 하며 나는 그 일에 황 부장을 끌어들인 일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판단해서 한 것이니 황형은 걱정 말고 자신의 건강만 걱정해요" 하는 황 부장은 간에 종양이 있어 벌써 3년째 투병중이다. 중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올 봄에는 폐까지 전이 되었다고 했다.

회사에서 껄껄 화려한 웃음을 웃던 황 부장의 웃음은 어디 갔는가. 같은 사업에 투자를 함께 해서 갈은 고민으로 서로 전화는 자주 한다. 나는 가슴에 기침을 끼고 살아서 수시로 입원을 하는 황 부장에게 문병을 못갔다.

추석이 끼고 있으니 내 마음이 편치를 못했다. 황 부장 집으로 갔다.
어쩌랴. 그는 항암 치료의 후유증으로 머리에 머리털 하나 없이 빠져있다. 가벼운 안부 인사와 그의 이야기도 들어 있는 내 책과 귤 한 상자를 그의 부인에게 건넸다. 그와 헤어져 나가니 그는 모자를 쓰고 따라 나왔다.

농협에 가서 그는 배 한 상자를 사서 내게 건넸다. 나는 그 배 한 상자를 기꺼이 받았다. 아니다 그만 두라 하면 그에게 상처를 주느니 나는 그의 마음을 함께 받는다. 병원에서 치료를 못하겠다고 손을 들고 이제는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하여야겠다는 그가 내게 권하는 배를 나는 표정 만은 밝으나 절망의 기분이었다.


함께 근무하던 김 부장은 오지랍 넓어서 회사 직원들이 궂은 일에는 제 일 보다 더 나서서 돌보아 주었다. 아래 직원들에게 술 잘 사고 일 잘 시키는 그에게는 그의 장점이 있었다. 차장 시절 바로 위 상급자인 내게 까탈을 부리고, 건방지기까지 했던 자세는 그의 장점으로 덮어지곤 했다.

그는 나보다 앞서 회사를 그만 두었다. 안주 없이 양주 한 병을 냉수 마시듯 하니 그의 주량을 이길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쓰러졌고 벌써 2년째가 된다. 죽는다 산다 하는 숨가쁜 시간이 흐르다가 그는 일어섰다. 어쩌다 그의 집에 가면 그는 응접세트에 꼼짝없이 앉아서 그의 부인이 그의 용변을 처리하여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가 전화를 내게 걸었다.
"부장님, 오세요. 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저녁을 먹기로 했어요"
하는 전화를 나는 참으로 미안한 마음으로 받았다. 술 한 모금 조차 버거운 건강이 된 나는 밤을 피해 낮에 그를 찾아갔다.

반가워라.
그는 삼발이 지팡이와 다리 보조기를 하고 제 힘으로 몇 발자국 걸으며 화장실까지 간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고, 예뻐라. 아주 좋아졌네" 하며 나이 50이 넘은 그에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황 부장에게서 받은 배 한 상자와 책 한권을 주었다. 그 책에는 김 부장과 같이 어려운 세월을 겪은 아내의 이야기에 김 부장이 동병상린 하기를 바랬다.

이제 술 한 모금 담배 한 대 필 수 없는 건강이 되고 만 김 부장.
천하가 내 것인 양했던 한 때의 기개가 이제 다 무슨 소용인가. 김 부장은 그를 떠나는 내게 그가 다른 이에게 받았다며 배 몇 개를 싸주었다. 나는 고맙게 받는다. 그 배는 몇 개의 배일 뿐 아니라 그의 마음이다. 어찌 그 마음을 뿌리치겠는가.

함께 있던 한 부서의 직원에게 전화를 걸고 이웃 부서의 부서장이었던 이들에게 내가 전화를 걸었다. 모시고 있던 사장께도 전화를 드렸다. 사과 한 상자 사들고 갈 여력이 없어도 전화 한 통화를 걸 마음은 정성이 필요하다.

내게 걸려오는 전화는 없다. 나의 덕이 부족해서이고, 그들이 너무 바쁘거나 나는 이미 잊혀진 이름인지도 모른다.

밤이다. 전화 한 통화가 왔다. 네티즌의 한 사람인 김장혁이라는 젊은이이다. 자리 잡힌 직장을 그만두고 수익모델이 있는 컴퓨터 벤처를 하는 그를 안지도 5년이 되었다. 추석을 잘 보내시라는 그의 말에 나는 과일 몇 상자로 느끼지 못할 기쁨을 느낀다.

직장에서 춘풍추우 세월을 보내고도 제 나름 사정으로 침묵을 지키는 부하 직원들이 있는데, 네티즌의 인연을 귀하게 여겨 이렇게 전화 한 통화를 걸어주니 세상은 생각 만큼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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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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