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어머니 산소를 찾아보려고 수십 년만에 왔는데 바람 때문에 배가 뜨지 않는다고 해서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릅니다."
46년만에 고향을 찾아온 김길자(64·부산거주) 씨는 이틀 동안 여객선 터미널 부근 여관에서 머물어야 했다.
김 씨는 고향 화태도(여수시 남면)를 눈앞에 두고도 발이 묶이자 친정 어머니를 영영 못 찾고 돌아가는 것 아닌가 싶은 조바심이 높은 파도보다 더 거세게 일었다.
추석을 앞둔 지난 달 28일 6시를 기해 남해서부 앞 바다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데 이어 30일 남해 전 해상에 폭풍주의보가 확대돼 내려졌다. 거기다 세찬 가을비까지 동반하면서 1만8000여명(여수해양경찰 추산)의 섬 고향 귀성객의 발이 묶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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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 귀성객들로 가득한 혼잡한 선착장. ⓒ 조호진 |
올 추석뿐 아니라 지난 추석 이태 동안 폭풍주의보에 발이 묶였던 섬 귀성객들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서울, 부산 등지에서 먼길을 달려온 이들은 "올해는 설마..."하고 여객선 터미널을 찾았지만 또 다시 배가 묶인 사실을 확인하고 무거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여수 친척집과 여관에서 신세지며 일기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운 섬 귀성객들은 추석(1일) 오후에나 주의보가 해제된다는 소식에 빠듯한 성묘와 귀경 걱정이 몸을 무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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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 귀성객을 실은 남면 연도 행 '엔젤'호가 여수항을 떠나고 있다. ⓒ 조호진 |
다행히 추석(1일) 오전부터 바람이 걷히면서 사흘간 묶였던 거문도 첫 배가 9시에, 남면 연도 첫 배가 오전 10시30분에 출항하면서 그나마 섬 귀성객들의 애타는 심정을 달래주었다.
첫 배를 놓쳤다는 문귀화(42·여수시 신월동) 씨는 여객선 터미널에 모인 친지, 형제들과 함께 사선(私船) 편을 알아보기 위해 분주했다. 선편(船便)을 알아보던 문 씨가족 일행은 고향 개도(여수시 화정면)와 가까운 여수 돌산에서 사선을 타고 고향을 찾기로 했다.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발을 돌려야 하는 심정을 섬이 고향인 사람이 아니면 어찌 알겠습니까? 물론 위험하기는 하지만 폭풍이 애진간만 하면 사선을 타고서라도 기어코 고향을 찾아갑니다."
여수해양경찰 관계자도 문 씨의 말처럼 명절에 기상특보(폭풍주의보)가 내려지면 수송대책에 어려움이 뒤따른다고 말한다. 사선(私船) 운항은 불법이지만 고향을 찾으려는 섬 귀성객의 간절한 발을 일일이 묶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지난해 추석에도 2000여명이 사선을 이용한 것으로 내다봤다.
여수해양경찰은 올해 여수-거문도 항로 등 11개 항로 13척의 여객선이 336회(증회 60회 포함) 운항해 1만8000여명의 섬 귀성객을 실어 나르는 특별수송대책을 세웠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는 폭풍주의보로 인해 일부 귀성객이 고향을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렸을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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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산면 초도 향우회가 여수에 마련한 '삼산면 공동묘지' ⓒ 조호진 |
조상과 부모를 찾기 위한 섬사람들의 귀성 애환이 뱃길따라 좌우되면서 일부 섬 향우회는 여수 인근지역의 산을 공동으로 매입해 공동묘지로 삼았다.
여수 삼산면 초도 향우회는 여수시 화양면 나진 부근 산을 매입해 공동묘지로 만들었다. 이런 까닭에 아버지 묘는 섬에 어머니 묘는 육지에 모시는 경우도 흔해 또 다른 이산(離散) 성묘의 아픔이 빚어지기도 한다.
김웅(49·여수시 선원동) 씨는 "부모를 찾아 뵙는 것이 자식의 도리인 것은 알지만 부모의 묘가 육지와 섬으로 나뉘어져 따로 찾아 뵙기가 힘들 때가 많습니다. 더구나 자식들이 모두 고향을 떠난 경우에는 섬에 묻힌 부모님을 자주 찾지 못하는 불효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대중가요 가사처럼 추석을 맞은 섬과 선착장에는 섬사람들의 귀성 애환이 높은 파도로 일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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