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먹으면 늘어지게 쉴 수 있다"

중국여성과 한국여성의 명절나기는 너무 달랐다

등록 2001.10.02 04:41수정 2001.10.0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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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꿰이지에' 에 걸린 홍등의 행렬. 국경절 연휴가 시작되면서 중국은 본격적인 '휴일경제'특수를 맞고 있다.
ⓒ 박현숙

며칠전, 가을비가 한바탕 요란하게 내린 뒤 기온이 금세 '뚝'하고 떨어졌다. 베이징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온 것이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체감온도로 미뤄보아 올 가을도 '번개불에 콩구워 먹은 듯' 그렇게 황망하게 갈 것만 같다. 조만간 추석이 지나면 분명 초겨울로 변해있을 게 틀림없다.

베이징에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또 기나긴 국경절 연휴(10월1일 신중국 건립일)가 시작되는 분위기로 거리가 조금씩 들떠가고 있다. 10월1일부터 시작되는 이번 국경절 연휴는 마침 추석과 겹쳐서인지 어느 해보다도 더 많은 귀향인파가 기차역으로 몰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국에서는 설날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명절로 바로 이 국경절 연휴와 5월1일 노동절 휴가를 꼽는다.


몇 년 전부터 중국정부는 도무지 '돈'쓰기를 싫어하는 구두쇠 중국인민들로 하여금 억지로라도 그네들의 '쌈짓돈'을 풀게 할 요량으로 2-3일에 불과했던 국경절과 노동절 휴가를 기본 5-7일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휴가'로 선포해 버렸다.

그 뒤로 중국에서는 '휴일경제'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즉 이 기간 동안 중국인민들이 쓰는 돈이 평소의 몇 배를 넘고 더불어 요식업이나 상점, 여행업 등이 최고 황금기를 맞는 시기여서 이 기간을 '휴일경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기간은 중국의 청춘남녀들이 가장 결혼을 많이 하는 '황금의 결혼시즌'이기도 해서 거리 곳곳에서 심심찮게 신혼부부들의 결혼차량들을 볼 수 있다. 땅덩어리가 넓어서인지 한번 결혼을 하려면 이런 긴 연휴기간을 잡아야만 각지의 친척, 친구들을 불러모을수 있고 넉넉한 신혼여행도 할 수 있어서 대부분 특별한 '길일'들을 택하지 않는 한 이런 명절 연휴를 잡아 결혼식을 치르는 것이다.

올 국경절은 마침 10월1일이 월요일인지라 3일 전인 금요일부터 중국 전역은 사실상의 휴일에 들어갔다. 우리나라에서는 설날과 추석을 일년 중 가장 중요한 명절로 치는데 반해, 중국에서는 '중추지에'라고 불리는 추석을 그다지 큰 명절로 쇠지는 않는다. 이날은 우리나라처럼 공식적인 휴일도 아니어서 그저 가족끼리 이웃끼리 위에삥(月餠)을 나눠먹고 저녁때 오붓한 식사나 한끼 하면서 만월인 달을 향해 소원이나 비는 게 고작이다. 그나마 올 추석은 국경절과 겹쳐서 어느 해보다도 조금 더 '대접'받는 명절이 되고 있다.

중국며느리, 한국며느리들의 명절나기


얼마전, 인터넷을 통해 '조선며느리들의 비애'라는 시아닌 시를 읽었다. 자주 들리는 동호회 게시판에 누군가 '퍼서' 올린 글이었다. 그 글의 내용들이 구구절절 어찌나 사실적이고 가슴에 와닿던지 그 작자의 '예리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읽으면서야 혼자 킥킥대며 '이거 정말 기가막힌 글이다'라며 즐거워(?)했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조선며느리들의 비애'가 남의 일 같이 여겨지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 중에서도 맨 마지막 구절의 "....명절되면 죽고싶네 일주일만 죽고싶네. 십년동안 이짓했네 사십년은 더남았네"라는 구절은 우리네 어머니, 며느리들의 슬픈 악순환의 역사를 읊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안쓰러워졌다.


그러고보니, 한국에 있는 우리 엄마도 작년초에 첫 며느리를 보았으니 지금쯤 그 며느리가 혹시나 '죽어나고' 있지나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 우리 엄마는 며느리 보기 전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니 할머니한테 어찌나 호되게 시집살이를 당해서 그런지 난 며느리 얻으면 절대 시집살이 같은 건 시킬 생각도 없고 같이 살 생각도 없다. 아무리 좋은 시어머니라도 시어머닌 시어머니지..."

우리 엄마가 언제까지 이런 '신세대 시어머니 공약'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믿고 싶다. 세대가 바뀌어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겠거니 하는 사실을.

한국의 보편적인 며느리들이 명절날마다 이런 '비가'를 읊조리며 '부엌데기'가 돼 가는 동안 중국의 며느리들은 어떤 명절을 보내고 있을까.

혹시나 유교의 발상지가 중국이라고 해서, 중국의 며느리들도 이런 명절날마다 부엌에서 죽어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 큰 오산이다. 중국의 며느리들에게 명절은 모처럼 많이 쉴 수 있는, 말 그대로 휴일이자 오랜만에 가족 친지들을 만나 즐거운 식사를 하면서 수다를 떨거나 쉬엄쉬엄 마작, 카드놀이 등을 즐기는 진짜로 한가한 휴일이다.

그저께, 올해로 결혼 4년차인 중국여성과 수다를 떨 기회가 있었다. 올해 28살이고 성이 창(常)인 그녀는 고향이 내이멍구인 몽고족 여인이다. 그녀는 대학시절 같은 학교의 학생회장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4년 전에 결혼을 하고 지금은 둘다 베이징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주부이다.

▲ 중국에서 명절연휴는 청춘남녀들의 '결혼황금기'이기도 하다.
ⓒ 박현숙

그녀가 남편과 가까워지게 된 계기를 들어보니, 재미있게도 명절날 고향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였다고 한다. 당시 학생회 측에서 좌석표를 구하지 못해 그녀는 입석표를 배당받게 되었는데 기차 안에서 문득 혹시나 학생회장 자신은 좌석표를 구하지나 않았을까하는 의심이 들어 그에게 기차표를 보여달라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당분간은 둘다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쌓고 직장생활에만 전념하고 싶어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는 그녀에게 이번 국경절 연휴기간에 뭘 할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집에서 푸욱 쉬겠다'는 대답이다. 그녀의 대답이 너무나 간단하고 자연스러워서 "시댁에 안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올 국경절엔 계획이 없고 내년 설이나 한번 갈 생각인데 설에는 아무래도 돈이 배로 들기 때문에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안 갈 생각'이란다.

물론 중국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한번 귀향을 하려면 가는 데만 족히 하루이틀은 잡아야 하기 때문에 매번 명절 때마다 집에 내려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나의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집에서 푸욱 쉬겠다'는 말이나 '설에는 돈이 많이 들어 부담스럽다'는 그녀의 말이 좀처럼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정말 '간 큰 며느리'라는 소리를 골백번도 더 들었을 법한 말을 이 젋은 중국며느리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와 그녀는 내친 김에 두시간 여를 신나게 '중국며느리와 한국며느리들의 삶'에 대해 수다를 떨게 되었다.

"맘만 먹으면 늘어지게 쉴 수도 있지..."

그녀는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의 대기업 주재원 부인들 몇 명과도 교분이 있어서인지 한국 여성들의 결혼생활이나 명절날 분위기들을 비교적 많이 이해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녀가 가장 이해못하는 한국며느리들의 생활중의 하나는 이른바 고부관계라는 것과 명절날이나 무슨 제사 때 왜 여자들만 그렇게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중국에도 물론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갈등이 있긴 하지만 한국부인네들 얘길 들어보면 자기들은 행복한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결혼 후 대부분의 부부들은 시부모와 같이 사는 법이 없고, 또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부딪힐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의 여성들이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되거나 남자들보다 사회생활이 위축되는 데 반해, 중국에서는 부부가 둘다 맞벌이를 하고 있고 여성들의 직장관념 및 경제적인 자립심이 강하기 때문에 그녀들은 정년퇴직까지 남자들과 동일하게 직장생활을 해나간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러한 중국여성들의 평생 동안의 경제적인 활동이 결혼 이후 시댁이나 친정과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게 해주고, 뿐만 아니라 가사노동 측면에서 부부의 '평등함'을 유지시켜주는 비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 국경절 황금연휴의 첫날, 베이징 톈안먼 광장으로 달맞이 하러 나온 시민들.
ⓒ 박현숙

다시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자. 부모들이 나이가 들어 기력이 없어졌을 때야 비로소 '모시고 사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고, 요즘은 경제적인 여건이 되면 시설좋은 양로원에 부모들을 맡기는 것도 차츰 새로운 추세가 돼가고 있다고 한다.

중국사회도 점차 노령화 현상이 심각해지면서 노인복지 문제나 양로원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전에는 불효의 상징처럼 여기던 양로원에 대한 인식이 최근 들어서는 이렇게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명절날 중국여자들은 정말로 아무 일도 안하고 '늘어지게 쉴 수 있느냐'는 다소 바보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되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이 아주 걸작이다. "맘만 먹으면 늘어지게 쉴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맘을 먹길래 그렇게 편한 팔자가 될 수 있을까.

일례로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 얘기를 들려준다. 매년 설날 때 그녀 어머니는 좀처럼 부엌에 들어가는 법이 없다고 한다. 가족들이 다 함께 하는 대청소를 제외하고 고기를 다듬고 요리를 하는 등의 번잡스러운 일들은 오빠와 아버지가 도맡아 한다는 것이다. 설 전날부터 정월 초 오일까지는 고기류 등을 먹지 않아야 복을 받는다고 믿는 미신 때문에 그녀 어머니가 그 기간 부엌출입을 삼가는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의 다른 가정에서도 명절날 남자들이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하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라고 한다.

게다가 요즘은 경제적인 수준들이 예전보다 높아지다 보니 도시의 일반 가정에서는 명절날 집에서 번거롭게 음식을 만들기보다는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게 더 흔한 일이 돼버렸단다. 그녀 부부도 시댁이나 친정집에 안내려가고 둘이서 명절을 보내야 할 때는 대부분 외식을 하는 편이라고 했다. 간혹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해야 할 때도 상점에서 미리 사둔 반가공식품을 그때그때마다 꺼내 쉽게 조리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음식 만드는 것처럼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는 부가설명도 해준다.

그럼 "당신들은 제사나 차례도 안지내냐"고 마지막 '카드'를 내밀어 봤다. 우리 '조선며느리들의 비애'를 더 깊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제사인지라 그네들의 제사풍속이 자못 궁금해진다. 물론 중국에 온 이후 우리처럼 제사지내는 가정을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이 역시 우리네 며느리들이 들으면 부러워할 일이라는 것을 얼추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녀 말을 들으니 과연 중국며느리들은 '복받은 이들'(?)임에 틀림없었다.

중국에도 제사를 지내긴 하지만, 청명절이나 설날을 전후해서 조상들의 묘소를 참배하는 정도로 끝내고 준비하는 음식이래야 과일 몇 개와 말린고기 등이 고작이라고 한다. 그저 형식적인 예만 갖추는 셈이다. 게다가 우리 제사는 몇 대가 다 모여서 한바탕 요란한 의식을 치르는 데 반해, 중국에서는 함께 모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친형제끼리라도 각자 시간 날 때 따로따로 묘소를 참배한다고 하니 우리네 한국며느리들이 겪는 제사공포 따위는 근본적으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 같다.

얘기가 이 정도까지 흐르자 나와 함께 옆에서 그녀 얘기를 듣고 있던 후배의 눈빛이 다소 침통해진다. 빨리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며보고 싶다는 이 어린 후배는 그녀의 얘기를 다 듣고는 농담으로 "내일부터는 북경대나 청화대로 가서 어디 참한 중국남자나 헌팅해 보자"고 꼬시는 것이다.

덩달아 그녀도 자기 남편 친구 중에 아직 결혼을 못한 다소 성격이 괴팍하긴 하지만 머리가 아주 좋은 남자가 있다며, 아무렴 한국남자들 보다는 나을 거라며 나한테 시간있음 자리 한번 만들어 보자고 한술 더 뜨고 있다. 푸하하... 그녀의 농담같은 제안이 조금 솔깃했다고 하면, 이 무슨 '노처녀의 비애'일까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중국여성들의 '시집살이'가 부러운 것만은 사실이다.

달 밝은 추석날 저녁. 밥하기가 귀찮아서 하루종일 라면 한 개로 버티고 있다가 드디어 허기를 참지 못하고 근처 중국식당에 도시락을 사러 나갔다. 이미 저녁 8시 가까이 되어 평소같으면 거의 손님이 없을 시각인데도 '휴일경제'인지라 식당마다 발디딜 틈 없이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대부분 가족 손님들이다.

음식을 주문하고 포장되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식당 문 밖에서 하늘을 보니 둥근달이 하늘 높이 휘영청 걸려 있다.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까.

에라 모르겠다. "올 가을에는 중국남자든 한국남자든 어디 쓸만한 사람하나 만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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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 거주하며 중국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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