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좀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것

등록 2001.10.02 18:44수정 2001.10.03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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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얼마간의 가슴 설레임 또는 기쁨으로 맞이하는 추석날 새벽, 우리 집엔 때아닌 난리가 한바탕 벌어졌습니다. 네살 된 딸아이가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울고 불고 난리를 치더니, 급기야는 먹은 것들을 온통 토해내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엔 앞서 걸린 감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라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머리가 아프다고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며 토하기를 거듭하는 것을 보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아내가 아이를 들쳐안고 황급히 한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얼마후 아내가 흐느끼는 음성으로 전화를 해왔습니다. 응급실 의사의 권유에 따라 뇌수막염 검사를 한 뒤 딸아이가 마취 상태에서 눈을 뜬 채 신음을 하며 너무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혹시라도 뭐가 잘못된건 아닐까 싶어 덜컥 겁이 나기도 하고, 어린 것이 얼마나 아프면 저럴까 싶어 엄마된 마음에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던 모양입니다.

아내의 전화를 받은 나는 한 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내를 혼자 놔두어선 안되겠단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렇게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보니 아내는 그때까지도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있더군요.

내가 도착함에 따라 다소 안심이 된 아내가 마음을 추스려 그간의 경과를 얘기해 준 바에 따르면 뇌수막염일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검사를 허락했는데, 보호자는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좀 떨어진 곳에 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 딸아이는 옆 병상에서 곁눈질로 지켜보던 다른 환자의 보호자가 보다 못해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꽤나 고통스런 꼴을 당한 모양이었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에 곤히 잠들어 있는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링거가 꽂혀있지 않은 다른 한 손을 꼭 잡은 채 꼬박 밤을 새우며 부디 딸아이가 뇌수막염이 아니기만을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뒤 나온 검사결과는 천만다행하게도 딸아이가 뇌수막염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하는 심정으로 딸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밤새 잠을 제대로 못잔 우리 가족 모두가 한꺼번에 골아 떨어지고 말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습니다. 잠을 자고 일어난 뒤부터 딸아이가 검사를 위해 주사바늘을 들이댔던 등허리 쪽의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처음엔 멀쩡하던 살에 주사기를 들이댄 탓에 그런가 보다 하고는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는데, 처가집에 인사차 다니러 갔다온 이날 하루 내내 딸아이는 시름시름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한편 시시때때로 울며 불며 아픔을 호소하였습니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결과 ‘간혹 뇌척수액 검사를 한 뒤 일시적으로 아기가 걷지 못하는 것을 보고 검사를 기피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 수일 후면 정상으로 돌아오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이 있길래, 일시적인 현상이려니 하고는 이날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딸아이의 고통스러워 하고 무기력해 하는 모습은 나아지지도, 나아지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슬슬 뭔가 잘못된 것이나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 아내와 나는 진료를 받았던 병원에 문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뇌수막염 검사를 하고 나면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면서, 어린이용 진통제를 사다 먹이고 파스를 붙여주거나 따뜻하게 찜질을 해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더군요.

연휴인 까닭에 동네에는 문 연 약국이 없어 전화번호부를 뒤져 이곳저곳을 수소문한 끝에 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약을 사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온 어린이용 진통제를 먹이고 따뜻하게 찜질을 해주고 다시 파스를 붙이고 나니,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는 기운을 차리고 헤헤거리며 뛰어놀더군요.

이를 보며 반가운 마음 한량 없었지만, 한편으론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처방만으로 멀쩡해질 수 있는 아이가 지난 이틀동안 그렇게 힘들어 해야 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아내는 공연한 검사를 해서 아이를 그 모양으로 만들어놨다고 검사 자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뇌수막염 검사는 일단 불가피했다 할 지라도, 뇌수막염 검사후 아이가 잘 걷지 못한다던가 심하게 아파하는 증상이 있을 경우 어떻게 하라는 얘기 한 마디 정도만 해줬어도 아이나 어른 모두 이틀씩이나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을 그 말 한 마디를 아껴 어린 것은 몸 고생, 어른들은 심한 마음 고생을 하도록 만든 사람들이 원망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 병원이라는 곳엘 가보면 종종 느끼게 되는 사실이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말을 적게 하는 것이 미덕인 양 환자나 가족을 상대할 때면 극도로 말을 아끼는 병원 관계자들의 태도에 고개를 내두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병원 관계자들이 앞으로는 제발 병에 대한 무지로 인해 불안해하고 고통받는 환자나 그 가족들의 마음과 고통을 배려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국내 환경 속에서 ‘인술’씩이나를 바라지는 않지만, 우리 가족이 겪은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병원 관계자들이 지금처럼 너무 말을 아낄 것이 아니라, 조금만 더 세심하게 신경을 써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필요한 말 몇 마디 정도만 더 해준다면 많은 환자들의 아픔과 그 가족들의 마음의 고통을 크게 덜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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