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1.10.03 00:51수정 2001.10.03 01:55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추억을 떠올리며 사는 것이 사치라고 느껴본 일이 가끔은 있다. 시시한 광고 카피 문구처럼 커피 한 잔과 따뜻한 햇살, 일렁거리는 바람 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학생이거나 청년이었던 시절. 꿈도 많았고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고민들로 술잔을 채웠던 그 때, 그 시절의 사람들.
이상하게도 나는 명절이 되면 그런 얼굴들이 생각난다. 현실에서 명절에 만나는 혈육으로 뭉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외로움을 느끼기 때문인지, 그 악다구니 같은 현실을 피하고 싶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이번 추석 즈음에는 군대도 마치지 못하고 이민을 갔던 선배를 만났다. 메일과 쪽지 두어개를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실제 만난 듯이 느껴지고 살붙이만큼 반가웠다.
그 선배와는 오랜 시간을 같이 한 것은 아니다. 내가 입학했을 때 그는 군인이었고, 그가 이민을 가기 위해 조기 제대를 하고 학교에 잠시 들러 서류 정리를 할 때 두어 달 가깝게 지낸 것이 다다.
그 선배는 노래를 잘 불렀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집에 들러 싹싹한 인사를 하며 그 아이와 어울려 노래를 불렀던 기억과 집까지 걸어가면서 떠오르지 않는 주제로 얘기를 나누었던 것이 특별한 기억에 속하는 정도이니, 나는 실상은 그 선배를 잘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이 먼저 떠나버려 거처도 마땅한 곳이 없던 그 선배가 신문 배달하는 사람들이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공간에 두 달 정도를 묵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의 성실함과 소탈함에 감명도 받았던 것 같다. 폼에 죽고 폼으로 사는 남편과는 너무도 선명한 대조를 이루던 모습이었다. 물론 나는 두고두고 그 얘기로 때로는 남편의 약도 올려보고 때로는 그와 연애를 했어야 했던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자조하는 목소리도 냈었다.
사실은 남편의 동기이자 친구였지만 나와 그가 더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뚝뚝한 성격의 남편보다는 속내를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었으니 내가 더 편한 상대였는지도 모르지만.
선배는 우리가 결혼하고 신혼 살림을 차린 그 즈음에 결혼 소식을 알리는 그림 엽서를 보내왔었다. 신랑 신부가 찍은 웨딩 사진을 엽서로 제작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런 선배의 자상하고 세심한 배려에 또 한 번 감사함과 부러움을 느꼈었다.
그러나 답장을 쓸 틈도 없이 사는 일에 치이고 깨지면서 연락이 끊어졌다. 미국 생활이란 것이 그다지 만만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가끔 생각이 났지만 연락을 해 봐야겠다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주소도 전화번호도 바뀌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거의 5년이 다 되어 가는 이 때 그 선배가 먼저 우리를 찾아낸 것이다. 동창을 찾아준다는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자신의 허락도 없이 결혼했느냐는 농담으로 시작한 선배의 메일에는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있었다. 아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 무슨 뜻이 있는 이름인지 설명하는 글에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배어있었고, LA에서 살다가 어떻게 뉴욕에 정착했는지 설명하는 글에서는 고단함과 힘든 삶의 여정이 보였다.
사실은 성공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친구를 찾거나 추억을 더듬는 일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언젠가 올지도 모를 영광의 그 날을 위해 열심히 살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이번 테러 사건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고 겪으며,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아니 이렇게 죽는 거구나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쌍둥이 빌딩과 15분 떨어진 거리에서 그는 그렇게 성공이라는 거품보다는 모자라고 비루한 현실이지만 나누고 보듬어 줄 수 있는 고국의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 그리운 얼굴에 나도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헛살지는 않았구나 덩달아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민을 가고 십 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루에 다섯시간 이상을 자본 일이 거의 없고 여러 번의 좌절을 겪으며 고단하게 살았다는 내용에 내 땅에서 내 나라 말을 쓰며 편하게만 살아온 것이 미안하고 그 힘든 길에 동무가 되지 못했음을 깊이 반성했다.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그 기억을 꺼내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고 나는 얼마나 그들에게 소홀했었던가. 추억이라는 것이 광고에나 등장하는 시시하기도 하고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함부로 속단해 버리기도 하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일을 부끄러워하기도 했었다.
과거에 얽매여 지난날의 영광이나 그 때의 금송아지를 후회로 되돌아보는 일이 아니라면, 그런 날들을 떠올려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더구나 그런 추억으로의 여행이 삶에 지친 우리 마음에 위로와 격려가 된다면, 그런 여행은 값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재산이 아닐까.
머나먼 이국 땅에서 메일 한 통을 보고 온갖 감정의 기복을 타고 있을 그 선배에게 청량한 음료수 같은 위로와 격려가 되고 싶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