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1.10.03 18:14수정 2001.10.05 09:15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 가을 소풍 장소가 롯데월드로 결정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더니 대부분 좋아하는 표정입니다. 학생들이 하도 많아서 요즈음은 소풍 장소 정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반끼리 모여서 재미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선생님들은 선생님들끼리 시간을 보내다가 끝나는 시간에 집합하여 인원 점검을 하고 마치는 것이 안타깝지만 대부분의 실정입니다.
소풍 때만 되면 생각나는 제자와 그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이제 29세가 되었을 여학생 주혜선입니다. 11년 전에 내가 담임을 맡았는데 체격이 크고 무척 활동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운동도 잘하고 학급 임원은 아니지만 반 아이들이 많이 따르는 모범 학생이었습니다.
그 해에 6월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어서 두 차례에 걸쳐 나눠 내기로 되어 있었는데, 반에서 김용순이가 사정이 있어서 못 간다고 내게 와서 말했습니다. 나는 알았다고 하면서 위에다가 한 명이 가지 못한다고 보고했습니다. 교사가 된 지 이년 째의 일입니다. 그러고 난 뒤 나는 용순이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나의 할 일은 모두 다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날인가 종례가 끝나고 교무실에 내려가서 잠시 잔무를 보고 있는데 혜선이가 내게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면서 교실로 올라가셨으면 좋겠다고 공손하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너무 궁금하여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위층에 있는 우리 반 교실로 올라갔습니다.
혜선이와 나는 빈 교실에 서로 마주보고 앉았습니다. 혜선이는 머뭇머뭇하더니 간신히 말을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께 반 아이 가운데 용순이가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무척 슬퍼하면서 어떻게 같이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말하면서 담임 선생님은 뭐라고 하느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담임 선생님은 아무런 말씀도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놀라시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고등학교 때의 수학여행은 영원히 추억에 남는 것이니 가야 하는 거라고 하면서, 어머니가 수학여행비의 반을 낼 테니 담임 선생님께 가서 말씀 드려 선생님도 일부 내고, 아이들도 다같이 조금씩 내면 갈 수 있는 게 아니냐고 꼭 이야기하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그 순간에 난 몸이 굳어졌습니다. 입이 막혀버렸습니다. 도저히 앞에 마주보고 앉아 있는 혜선이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혜선이 어머니는 조그만 식당을 하고 있고, 아버지는 다리 속에 쇠가 박혀있는데도 수술비가 하도 많이 들어서 아예 포기하고 고통을 참으며 생활하고 있는 분입니다. 간신히 생계를 꾸려나가는 집입니다. 그 어머니가 그렇게 딸에게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나는 우리 반에서 한 명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다는 것만 보고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50명이 넘는 학생들인데 단 한 명 못 가는 것은 큰 일이 아니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용순이를 불러서 자세하게 사정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았습니다.
반 아이 한 명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데, 정작 담임 선생님인 나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여겼고, 혜선이의 어머니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로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살림임에도 불구하고 여행비의 반을 내놓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 자리에 더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뭔가가 머리를 세차게 내리쳤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담임 선생님의 할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혜선이에게 잘 알았다고 말하면서 돌려보냈습니다. 교무실로 다시 내려오면서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요,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머리는 엄청난 충격에 제대로 들 수가 없었고 몹시 어지러웠습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용순이를 따로 불러서 사정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여행비 반이라도 낼 생각을 하고 아이들에게 알려서 같이 도와주는 방안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말하지 않으려는 용순이와 어렵게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슬픈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얼마 전에 입원하여 병원에 계시기 때문에 부모님께 수학여행 가니 돈을 달라는 말이 입에서 도저히 떨어지지 않아 지금까지 숨겨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픔이 있는 용순이를 나는 처음부터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용순이 어머니는 울면서 딸을 많이 야단쳤다고 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버지가 입원했어도 딸 아이 수학여행 보내지 않겠느냐고, 왜 숨기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딸을 꾸짖으며 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용순이 어머니는 바로 수학여행비를 딸을 통해 보내왔습니다.
나는 다시 보고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 수학여행을 간다고 기쁘게 보고했습니다. 혜선이가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의 어머니의 관심과 정성이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반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의 그 차가운 무관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혜선이 어머니는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11년 전의 그 일이 생각납니다. 모든 일을 사무적으로만 끝내려고 했던 나에게 혜선이와 그의 어머니는 교육자의 참다운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많은 아이들 가운데 특히 어렵고 힘든 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인내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살아나가는 삶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라는 것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혜선이와 혜선이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이제는 사랑을 갖고 아이들 잘 이끌고 있다고 말해야 할 텐데 아직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큰 소리로 말할 수 있습니다.
"혜선이 어머님! 저 이제는 아이들 빼놓고 수학여행 가지는 않아요. 어머님 덕분에 꼭 다 데리고 가요."
덧붙이는 글 | 나에게 참 교사의 길을 가르쳐 주신 혜선이의 어머니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어머니의 뜻을 마음 속에 잘 간직하여 좋은 선생님이 되도록 꾸준히 노력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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