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1.10.03 21:58수정 2001.10.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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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아니니까 차남과 결혼하면 무거운 짐은 벗겠지!"
19년 전, 혼수 준비를 하던 언니의 푸념 섞인 넋두리를 나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6남매의 맏며느리로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사는 언니는 맏며느리의 역할이 무척 힘에 부쳤나 보다. 물론 어느 부모가 장남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도록 하겠냐마는 그 당시 우리들 세대의 사고 방식은 좀 그랬다.
나는 6남매 중 차남인 남편을 만났다. 분가하여 따로 살 집도 마련되었으니 '시집살이는 하지 않겠지'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환상도 잠시, 아들 다섯인 시댁은 모두가 객지에서 살다보니 시댁 근처에 살고 있는 나는 항상 시댁 어른들의 손과 발이 되어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힘겨운 일은 제사 때나 명절 때였다.
다시 말해 제사 때나 명절 때가 되면 시댁과 제일 가깝게 산다는 이유로 며칠 전부터 시댁에 가서 시장을 보는가 하면, 김치를 담고 일이 끝날 때까지 뒷치닥거리를 해야만 했다. 결혼 전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상황이 달랐다.
더욱 힘든 것은 명절날이 되면 시부모님께서는 장남 며느리가 버젓이 있는데도 집안일이나 부엌일을 유달리 나에게만 맡기셨다. 물론 집안 일을 상의하는 일부터 명절음식을 싸주는 일까지 모두 내 손을 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잘못된 내 사고 방식 때문이었을까?
그렇지만 멀리 타지에서 사는 며느리들은 여러 가지 구실을 내세워 제사 당일 날이나 아니면 명절날 전날 비행기로 와서 얼굴이나 내밀고 명절이 지나면 훌쩍 가버리게 된다. 나는 그 때마다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장남 며느리도 아닌데..."라며 속으론 울분을 터트리기까지 했던 게 사실이다.
"언제면 시댁의 뒷치닥거리에서 벗어나게 될까?" 사실 나도 다른 며느리들처럼 다 차려놓은 밥상에서 밥이나 먹고 가는 그런 며느리가 되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타지에서 사는 며느리들은 명절날이 되면 그 전날 아침에야 선물꾸러미나 들고 나타나 부엌살림이 낯설다는 이유를 들어 명절을 지내기가 바쁘게 떠나 버리게 된다. 그러면 그 뒤에 남는 뒷일은 모두 집에 남은 사람들의 몫.
제기를 닦아 서랍장 넣은 일이며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는 일. 그리고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시댁 살림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유와 가장 흉허물이 없다는 이유로 시댁 일에 시달려야 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명절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스트레스가 쌓였고, 흔히 말하는 명절증후군 같은 것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 맘 속엔 선물보따리를 들고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귀성모습과 그리고 같은 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얼굴만 내보이고 돌아가는 동서들이 밉기까지 했다.
그런데 올해 추석은 나에게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가 찾아왔다. 지난해 시부모님들께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큰댁인 서울에서 명절을 지내게 된 것이다. 난 며칠 전부터 그 동안 겪었던 내 고생의 대가를 환불받기 위한 피해의식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연휴도 많은데 남들처럼 여행을 가볼까? 아님 친정에 가서 명절을 보내고 올까?" 그 동안 명절증후군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반란이 마음 속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내가 생각했던 그런 근사한 자유를 감히 누리지를 못했다. 여느 때 같으면 명절날 며칠 전부터 시장을 봤지만 북적대는 시장 풍경을 보며 내 마음 한구석엔 왠지 시원함보다는 "한번도 큰 일을 해 본적이 없는 형님이 시장은 잘 보고 있는지. 김치는 담았는지" 등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아파트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고소한 기름냄새는 나를 더욱 안절부절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나도 이번 추석엔 딸애가 고3이라는 이유를 들어 남편만 큰댁에 보내게 되었으니 말이다. 남편을 공항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은 나에게 그 동안 명절증후군에서 벗어난 홀가분함보다는 걱정과 외로움 같은 것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잠시 신호대기를 하고 있을 때 빌딩 숲에 걸쳐 있는 둥그런 달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캄캄한 아파트 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시끌벅쩍하던 시댁식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으며, 부엌을 바라보니 명절날 가족들과 조상에게 드릴 음식을 차리느라 분주했던 찌들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도서관에서 늦게 오겠다던 딸애가 초인종을 울렸다.
"얘! 너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어. 더 공부하고 오지!"라고 묻는 질문에 올해 고3인 딸애는 "울 엄마가 외로울까 봐서요! 엄마! 그 동안 명절 때마다 부엌에서 뼈빠지게 일만 하다가 편안하게 쉬는 기분은 어때요?"라며 되묻는 것이었다.
"글쎄! 엄만 그래도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가족들을 위해 고생했던 때가 더 행복한 것 같구나! "
딸애도 내 맘을 알았는지 "엄마! 우리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서 달구경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오랫만에 보는 한가위 보름달이 참으로 낯설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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