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서 횡재를 하셨습니다

등록 2001.10.04 11:00수정 2001.10.0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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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어머니는 참 돈복이 없으신 분입니다.

어머니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시집와 홀시아버지와 아귀같은 3형제를 키우느라 평생 자신의 치장과 호사는 담을 쌓고 살아오신 데다가, 3형제 중 두 형제를 이미 결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둘 다 샐러리맨들이어서 여전히 자식들 대학 보내서 직장 보내고 장가보낸 게 유일한 재산인 분입니다.


게다가 우리 어머니는 신기하게도 60이 넘으실 때까지 길거리에서 단돈 500원을 주워 보신 적이 없답니다. 저는 신용카드 복권으로 5만원 당첨된 적도 있고 길거리에서 3만원까지 주워본 적도 있습니다.

당신 평생에 자식복은 있을지언정 돈복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신 어머니에게 이번 추석은 제법 기억에 남을 추석이 되셨습니다.

우연히 상품권 10만원권을 거저 주우셨기 때문입니다(어머니는 아직도 당신이 거저 주우신 줄 모릅니다). 왜냐하면 길거리에서 주우신 게 아니고, 둘째 며느리의 배달착오로 작은 횡재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명절이 되면 어머니에겐 10-20만원 정도의 용돈을 드리고 처가집에는 그 정도 금액의 상품권을 선물해왔습니다. 본가에는 내가 직접 전해드렸고 처가집에는 아내가 인사를 하는 것이 우리 부부의 몇년째 관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엔 본가에 몇 가지 일로 돈이 많이 필요하신 것 같아 추석 일주일 전에 미리들러 예전보다 조금 더 많은 '인사'를 드린 후 마음 편하게 바쁜 추석밑 인사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거래를 하는 기업들이 서울에도 있고 대구에도 있다보니 새벽녁에 잠자는 아내를 보고 바로 서울로 올라오는 경우가 있어 이번 추석 며칠전에도 처가집에 전해드릴 상품권은 주방 식탁에 아내가 볼 수 있는 곳에 올려두고 서울로 출발한 후 그날 저녁 어머니는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추석밑에 밑반찬을 얻으러 본가에 가게 된 아내는 며칠 전에 본가를 남편이 다녀간 줄도 모르고 식탁에 놓여 있던 상품권을 아무 생각없이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린 것입니다. 서울에 도착해 지하철로 이동중에 집사람의 확인전화가 왔었는데 소음이 많은 지하철 안이라 건성으로 대답해 버리는 바람에 아내가 배달착오를 일으킨 것입니다.


추석제사를 지낸 후 처가집에 인사차 들를 무렵에야 배달사고를 알게된 나는 고민과 고민(?) 끝에 잘못배달된 상품권을 어머니에게 돌려받기를 포기하였습니다.

돌려받자는 아내의 집요한 종용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석에는 둘째가 웬일로 평소보다 많은 현금에 상품권까지 선물을 다할까 하고 즐거워하셨을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니 차마 배달사고였다는 전화를 드릴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처가집에 드릴 상품권은 결국은 추가로 구매를 해서 전해드렸고 나는 당초 예산을 초과하는 지출이 발생했습니다만 평생을 거리에서 500원도 주워본 적이 없다는 소박한 어머니의 푸념이 이제는 풀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짓게 됩니다.

우리 어머니는 드디어 60이 넘으셔서 10만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횡재를 하신 것입니다.

벌써 서늘한 바람이 부는 계절입니다. 한해가 다르게 약해지시는 어머니를 옆에서 지켜보며 앞으로도 더 많은 횡재하실 수 있게 늘 건강하시길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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