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누나 훔쳐보던 우물 사라지고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던 고향 우물가의 추억

등록 2001.10.05 22:00수정 2001.10.08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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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연휴 마지막날인 10월 3일에 고향을 찾았습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고향의 정경을 머리 속에 담아오기 위하여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였습니다. 강변역에서 고향인 경기도 광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오른쪽 창가에 앉아 갔습니다.

광주에 도착하여 예전에 살던 곳에 가보니 다른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고, 다섯 집이 공동으로 사용했던 우물은 사라지고 네모반듯하게 콘크리트로 변해 있었습니다. 아마도 큰 건물을 지을 모양인 것 같았습니다.


우물이 사라졌습니다. 여러 식구의 생명수 역할을 아무 말 없이 묵묵하게 해준 고향의 우물이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중했던 것중의 하나가 또 사라진 것입니다. 사라져간 우물터에 서니 수많은 고향 사람들의 얼굴과 옛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우리들은 우물가에서 많이 놀았습니다. 어느 여름날 다섯 살 위인 큰 고모에게 내가 물 빨리 푸기 시합을 하자고 말했습니다. 고모는 웃으면서 그러자고 하며 큰 두레박을 잡았고, 나에게는 작은 두레박을 주었습니다. 분수에 맞게 그냥 하면 좋으련만 사내아이라고 고집을 부려 기어이 큰 두레박을 내가 잡고 하게 되었습니다.

시합이 시작되자 나는 온힘을 다해 무거운 큰 두레박을 낑낑대며 끌어올렸습니다. 얼마쯤 올라왔을까, 기어코 일이 벌어졌습니다. 머리를 우물 속에 쳐넣고 물을 긷던 나는 우물 속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동네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난 우물 속에서 울면서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으로 위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천만다행인 것이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물이 어린 나의 목 부분까지만 찬 것입니다. 물이 깊어서 키를 넘겼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동네 어른들과 아이들이 우물 속을 내려다보는 가운데 자전거 고치는 일을 하는 원배 아버지가 비상용으로 준비한 큰 두레박 두 개를 우물 속으로 내려주었습니다. 두레박 안에다가 두 발을 넣은 뒤 줄을 양쪽으로 꽉 쥐라고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난 울음을 그치고 물을 여러 차례 먹으면서 발을 하나씩 두레박에 넣은 뒤 줄을 힘주어 쥐었습니다. 다음에 원배 아버지와 한 아저씨가 조심조심히 두레박을 끌어올려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늦가을 추수가 다 끝났을 무렵, 원배 형과 집 뒤에 있는 밭 한 가운데에 쌓아둔 볏가리에 가서 놀았습니다. 장난꾸러기인지라 성냥을 가지고 짚단 밑부분에다 돌로 조그맣게 쌓아놓고 짚을 몇 개 뭉쳐놓고 불을 붙인 뒤에 멀리 떨어져서 불을 끄는 놀이를 하였습니다. 내가 한 번 하고, 원배 형이 한 번 하고.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돌이 빗나가고 불길이 짚가리에 옮겨 붙어서 불이 났습니다. 또 한 번 동네가 야단났습니다.

짚단은 활활 타오르고 동네 사람들은 모두 양동이, 그릇, 주전자 등을 들고 나와서 우물로 뛰었습니다. 나와 원배 형은 발만 동동 구를 뿐 어쩔 줄 모르고 그냥 두려운 마음으로 그 광경을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우물터에 동네 사람들이 한꺼번에 가장 많이 모인 적이 그때인 것 같습니다. 나르고 또 나르고, 나르고 또 나르고 했지만 몇 어른들의 노력으로 얼마 안 되는 짚단만을 건졌을 뿐 그 어마어마한 볏가리는 모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날 밤에 할아버지한테 피가 나도록(?)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은 것은 물론이지요.


15살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입니다. 방학이 되어 고향에 와서 지내고 있는데 우물 뒷집에 사는 친구의 먼 친척뻘 되는 누나가 동생 집에 와서 방학을 며칠 간 보내게 되었습니다. 두 살 위니까 17살이네요. 누나를 두세 번 정도 보았는데 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난 누나를 본 다음부터 상사병에 걸렸습니다. 연상의 여인을 짝사랑한 것이지요. 물론 누나도 그 우물물을 길어갔습니다.

여름이기 때문에 우물은 동네 사람들에게 좋은 목욕 장소가 되곤 했습니다. 어둠을 이용하여 주로 여자들이 우물터에서 몸을 씻고 들어가곤 했습니다. 어머니도 가끔 솜틀 일을 밤늦게 끝내고 내게 등에 물을 끼얹어달라고 하여 몇 번 그렇게 했습니다. 나도 어머니가 시원한 우물물로 등에 물을 끼얹어 주었지요.

누나를 마음 속에 그리워하면서부터 난 밤에 전등 줄을 방에서 마루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리고 상을 준비하여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척 했습니다. 우리 집 마루에서부터 우물까지는 50여 미터 거리이고, 우물가에서 조그만 고개를 돌리면 우리 집 마루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 좋아서 밤참을 준비하곤 했습니다. 밤이 이슥하도록 물소리가 여러 번 들렸습니다. 물을 길어 양동이에 담는 소리, 바가지로 몸에 물을 조심스레 끼얹는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그 누나도 저기서 몸을 씻겠지. 어떤 모습일까? 물을 길으면서 내가 마루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내 생각을 하겠지'라고 혼자 짝사랑 특유의 자유로운 상상을 수없이 했습니다. 누나에 대한 불붙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은 밤새 새까맣게 타버렸습니다. 그 누나가 돌아갈 때까지 난 사춘기의 열병을 우물과 함께 심하게 앓았습니다.

이제 고향의 우물은 없어졌습니다. 콘크리트 밑에 파묻혀 버려 흔적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두레박줄을 잡고 승천의 꿈을 꾸게 해준 원배 아버지도 몇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함께 우물물을 사용했던 다섯 집 가운데 한 집만이 고향을 지키고 있고 모두 다 떠났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아무런 불평 없이 그저 모든 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베풀기만 했던 고향의 우물을, 그 아름다운 우물의 너그러움을 잊지 말고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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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톡톡 6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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