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섬진강을 찾아

산과 강과 들이 행복하게 어우러진 섬진강 살뿌리

등록 2001.10.06 20:57수정 2001.10.0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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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논과 밭과 함께/가난하게 삽니다.(섬진강 15)

김용택의 연작시집 <섬진강> 중 절창으로 꼽는 <섬진강 15>는 이렇게 시작한다. 산과 산 사이 작은 들과 강 그리고 그 들과 강에 의지하여 가난하게 살아가는 마음 착한 이 땅의 백성들이 삶을 꾸려온 남도의 젖줄 섬진강을 찾아 떠난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마령면 원신암 마을의 작은 샘에서 발원하여 남도 오백리 삼 개 도와 열두 개 군을 지나며 이 땅의 아픈 역사를 아우르고 흐른다. 진안 골짜기를 감고 돌아나온 섬진강은 임실을 지나 운암면과 강진면 옥정리를 흐르다 섬진강 다목적 댐에 이르러 거친 숨을 돌려 잠시 몸을 푼다. 옥정호에 잠긴 물이 다시 회문산 줄기에서 흘러나온 물과 합쳐져 적성강을 이루고 순창을 지나 남원에서 요천수와 합류하면서 강 이름은 순자강으로 바뀐다. 다시 곡성을 휘감으며 보성강 물과 합쳐지면서 제법 도도한 흐름을 간직한 섬진강은 지리산 맑은 물과 어울려 <토지>의 배경이 된 악양 들을 적시며 하동포구를 거쳐 광양만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길고 긴 여정을 마친다.

이 강은 예로부터 모래가 곱고 많아 모래내 또는 다사강으로 부르다가 고려 우왕때부터 섬진강으로 불렀다고 한다. 왜구들이 경남 하동쪽으로 강을 건너 광양쪽으로 침입하려 하자 두꺼비 수만 마리가 지금의 다압면 섬진마을 나루터로 떼를지어 몰려와 울부짖어 왜구들이 도망쳤는데, 이때부터 당시 두치강으로 부르던 강을 두꺼비 <蟾>자를 써서 섬진강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 찾아갈 섬진강은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과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을 군계로 구분지으면서 호남정맥 줄기로 해발 700m가 넘는 고리봉과 동악산 사이의 계곡 사이로 빠지는 섬진강 중상류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이곳 사람들은 이 호젓하고 적막하며 한적한 계곡을 '살뿌리'라 부른다. 살뿌리란 지명의 '살'은 '어살'이나 '독살'의 준말로 물 속에 나무나 돌로 울타리를 쳐 고기를 유인해 잡는 재래식 도구로 어전(魚箭)이라고도 부르는데, 살뿌리란 지명은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엔 조선 중기 때 설치한 독살이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거센 물결 속에서 건재하고 있다. 첨단 공법으로 건설한 성수 대교가 십 수년도 못 견디고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그냥 차곡차곡 쌓아놓은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은 독살이 수백년 동안의 대홍수 속에서도 끄덕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늘의 우리가 마냥 부끄럽기만 하다.

이곳 살뿌리를 중심으로 섬진강 자락 이곳저곳에 점점이 박혀 있는 크고 작은 강변 마을의 곱고 아름다운 이름들을 잊을 수 없다. 꽃여울, 달여울, 쇠여울, 새터 등의 마을 이름들이 그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져 버리고 지금은 화탄(花灘), 월탄(月灘), 금탄(金灘), 신덕(新德)으로 바뀌어 그 곱고 고운 모국어의 정겨움은 사라져 버렸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아까울 뿐이다.

이곳 살뿌리 계곡의 매력은 누가 뭐래도 강변 양쪽으로 난 도로를 타고 걸어보는 호젓한 산책과 초가을 햇살 아래 달려보는 하이킹에 있다. 유홍준은 구례 토지에서 하동까지의 섬진강변이 남한 내 최고의 드라이브코스라고 했는데, 나는 이곳을 남한땅 최고의 하이킹 내지는 트레킹 코스로 추천하고 싶다. 곡성군 입면 제월리에서 남원시 대강면을 잇는 예전의 작고 소박한 시멘트 다리 대신에 최근에 튼튼한 다리가 준공을 눈 앞에 두고 있는데 여기를 기점으로 곡성 쪽 강변 도로를 타고 하류 쪽을 향해 가다 전라선 교각이 있는 금곡교까지 왕복 12km 환상적인 강변도로를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차량 통행이 거의 없고 도로 여건이 좋을 뿐만 아니라 강을 타고 달리는 주변 풍광이 압권이다. 산과 강과 계곡이 어울어진 수려한 경관은 정말이지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광주에서 40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어 이 가을 가족 나들이에 최적이다. 어른들이라면 조금 긴 코스를 권하고 싶다.


참고로 나는 가을이면 몇 년 전부터 지기(知己)들과 매년 이곳까지 하이킹을 즐긴다. 광주에서 88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순창 나들목을 빠져나가 유등면과 풍산면을 거쳐, 순창군 풍산면과 남원시 대강면을 잇는 대풍교에서 차를 내린다. 여기서부터 싣고 온 자전거를 타고 금탄 부락을 거쳐 고개를 넘어 월탄, 방동 석촌 마을까지의 그림 같은 산길과 들길을 지나 살뿌리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강변도로가 시작된다. 두서 시간이 소요되는 이 길을 달리고 나서 청계동 계곡 입구에 있는 매운탕 집에서 참게탕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이른 시각에 광주에 돌아 올 수 있다.

강변도로를 타고 즐기는 트레킹이나 하이킹은 4계절 모두가 좋지만 특별히 가을을 권하고 싶다. 가을 오후면 더욱 좋을 것이다. 산 그림자 떨어지는 강물은 은빛으로 반짝이고 강물은 더욱 깊고 맑기만 한데 가슴까지 씻어내는 서늘한 강바람을 들여 마시며 걷는 한 두 시간의 행복한 산책은 분명 오래오래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걷다가 힘들면 투명한 햇살 아래 화강암의 흰 속살을 드러낸 수려한 고리봉 자락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가을색이 완연한 강물에 눈길을 빼앗기거나 그것도 싫증나면 아예 강으로 내려가 시린 강물에 발이라도 담궈 볼 일이다.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몬타나주'의 아름다운 계곡에 결코 뒤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남원쪽 강변도로보다는 아무래도 최근에 개통한 곡성쪽 도로가 눈맛이 시원하고 더 한적하다. 근래에 곡성 쪽 강변 도로가 개설되고부터 동악산 청계동 계곡은 여름철이면 북새통을 이룬다. 하지만 여름이 가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인적이 드물어지고 차량 통행도 뜸해진다. 그러면 강물은 더 깊고 맑아진다.


어느 해 가을 혼자 보름밤에 이곳에 온 적이 있다. 강물위로 쏟아지던 달빛과 건너편 솔밭에서 반짝이던 인가의 따뜻한 불빛들... 한국의 달밤을 가장 탁월하게 그렸다는 이문구의 <공산토월>보다 더 숨막히도록 아름다웠던 그 해 가을 섬진강 달밤을 난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광주에서 가는 길은 세 코스가 있는데 첫째 광주→남해고속도로→옥과 나들목→곡성 금호타이어 정문→제월리 방향으로 가는 방법. 둘째 광주→88고속도로→순창 나들목→풍산면 방향→ 남원시 대강면 →금탄. 방동. 석촌을 거쳐 가는 길. 셋째 광주→남해고속도로→곡성 나들목→곡성읍→남원 쪽으로 가다 →섬진강 다리 바로 못 미쳐서 좌회전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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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교사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2년째 광주교사신문 12면에 주제가 있는 여행 꼭지를 맡아 집필하고 있다. 또한 광주과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담당하고 있으면서 학교도서관 운동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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