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역 앞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 뒷골목을 걷다가 오래된 여인숙을 발견했습니다. 철도 들기 전에 헤어진 다정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알 수 없는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뭐 생각도 없이 얼결에 그냥 들어갔습니다.
간판이 민자여인숙이네요. 그러니까 여자 친구를 만난 격이라고나 해야 하나요. 대로변의 화려한 건물들의 뒤쪽, 골목에서도 또 한 골목, 사람 한 명 겨우 나다닐만한 넓이의 골목으로 꺾어져 들어가면 바로 현관문이 나오고 그 뒤쪽으로 한 평 반이나 겨우 될까 싶은 골방에 주인아주머니가 모로 누워 14인치 흑백 텔레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현관문은 옛날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교실문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열면 유리가 덜컹덜커덩 흔들리고, 경첩은 또 삐꺽삐꺽 쇳소리를 냅니다. 옛날 초등학교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학교에서의 문은 미닫이었던 반면 여기 민자여인숙은 여닫이라는 정도나 될까. 아, 그리고 또 하나, 신기하게도 어디서 구해왔는지 바닥에 카펫을 깔았군요. 시멘트가 노출되어 무시로 또각또각 들려오는 구둣소리가 손님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주무실려구요?"
주인아주머니가 조금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훑어봅니다. 커다란 배낭에 무릎 보호대를 차고 밀짚모자처럼은 생겼지만 밀짚모자는 아닌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주머니까지 앞쪽으로 따로 차고 들어서는 유랑인의 모습이 아마도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아직 초저녁이라서 여관이나 모텔 쪽에도 방이 많을 텐데 웬 숙박손님인가 싶기도 했겠지요.
"혼자세요?"
"예."
"어디 등산다니세요?"
"아 예, 그런 셈이지요."
"무슨 대답이 그렇게 얼렁뚱땅하담?"
"미안합니다. 집 나온 지 한 달도 훨씬 넘었거든요. 그래서 정신이 거의 없어요."
"아니 애들이랑, 식구는 어쩌고?"
"아 그냥, 뭐, 혼자 다녀요."
"아니 그럼, 혼자세요?"
"글쎄 그렇다니까요."
"아니 내 얘기는, 그게 아니고, 완전히 혼자냐, 이거지."
"허허, 뭐, 그런가봅니다."
"아이고나 세상에"
유랑인은 어쩌면 주인아주머니와의 그런 대화를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잠깐만이라도, 조금이라도 나를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을, 나를 열어놓을 수 있는 한때를, 그리하여 인생의 아주 작으면서도 민감한 부분을 잠시나마 공유하며, 사람은 언제나 혼자이지만 결코 혼자서 홀로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릅니다. 장급 여관이나 모텔 같은 데서는 백 번을 다시 태어난다 해도 맛보기 어려운 값진 것이지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주인아주머니와의 대화는 거기서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손님이 왔으니까요. 숙박손님이 아니고, 아마도 주인아주머니의 친척이거나 오래 못 만난 허물없는 옛 친구쯤 되는가봅니다. 계단을 종종걸음으로 절반쯤 내려가다가 멈춰서서 어, 나 곧 내려갈게, 하더니 다시 종종걸음으로 올라와서 만원만 주세요, 하고 손을 내밀고는 만원짜리 한 장을 건네주자 이내 내려가 버리는군요.
유랑인은 아마 순간적으로 야속했던 모양입니다.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한 평 반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방으로 들어와서 씻을 생각도 없이 발랑 드러누워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리는 바람에 정신이 돌아왔지요. 과부하라 하나요. 전기 사용량이 너무 많을 때 일시적으로 정전이 되어버리는 현상 말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쩌면 설비가 워낙 낡아서 붙었다 떨어졌다 그러지는지 모르겠군요.
당연한 일이겠지만 목욕탕이라 할만한 시설은 없습니다. 화장실도 밖으로 나가서 한참을 돌아야만 합니다. 화장실과 샤워실이 나란히 있군요. 여닫이로 된 나무 문짝 두 개가 나란히 딱 붙어선 채로 하나는 샤워실, 또 하나는 화장실, 그렇게 시커먼 페인트로 우직하게 씌어 있습니다.
화장실도 그렇고, 샤워실도 꼭 문짝 하나만큼의 넓이라서 사람 한 명 간신히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군요. 수도꼭지 밑에 다소 큰 고무통이 있고, 고무통 안에 플라스틱 바가지 한 개가 떠 있습니다. 바닥에는 비누그릇 하나, 천장 가까이로는 벗은 옷을 걸 수 있게 빨래줄이 늘어져 있습니다. 기분이 제법 괜찮군요. 궁색함이 줄줄 흐르는 이 비좁은 공간에서 영혼이 맑게 씻겨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까닭은 또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흑백텔레비전의 마감뉴스도 끝났으니까 분명히 열두 시는 넘었고 지금은 몇 시일까. 한 시나 되었을까 두 시나 되었을까.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마치 시간을 알 수 있다는 듯 무심히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자니 어둠침침한 골목에 민자여인숙이라는 작은 입간판이 빨갛게 서 있군요.
그런데 그것은 이상하게도, 유랑인의 눈에는 간판이라기보다는 무슨 위패(位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홍콩영화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죽은 이의 영혼이 금방이라도 흘러나와 누군가의 몸으로 스며들어갈 것처럼만 여겨지는 그런 위패 말입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올라오는 그림이 있습니다. 쾅, 쾅, 쾅, 폭발음과 함께 산산히 부서져서 날아가는 건물과 그리고 사람의 시체들......익산을 목적으로 자전거를 달려오면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화물열차 폭발 사건이 갑자기 떠올라옵니다.
그나저나 민자는 누구일까. 아까의 그 주인 아주머니일까. 아니면, 아니면, 오래 전 익산이 이리(理里)로 불리던 시절 화공약품을 실은 화물열차가 폭발했을 때, 이리 역사(驛舍)가 산산히 부서지면서 민가를 덮쳤을 때 그 파편으로 숨져간 수많은 여인들, 철창에 갇힌 채로 몸을 팔아야 했던, 어리거나 혹은 늙은 여인들, 지금은 그 이름마저도 지워져 버렸을, 슬픔과 억울함을 인간의 조건처럼 여기며 겨우 존재해야 했던 그 여인들 가운데 누구의 이름인 것일까.
그렇지. 그럴지도 몰라. 누군가 한 사람, 죽어버린 그 수많은 여인들 가운데 누군가 한 사람, 가운데서도 특히 영적인 힘이 뛰어난 누군가 한 사람이 아까 그 주인 아주머니의 몸 속으로 흘러들어가서 민자여인숙이라고, 그렇게 자신의 위패를 세워놓은 것인지도 몰라......
그렇게 하릴없는 생각을 뒤적거리다가 유랑인은 아마 사르르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모기에 물린 자국이 가려워서 긁어대다가 눈을 뜨니 간밤에 열어놓은 창문이 그대로 열려 있고, 거기로 부신 햇살이 마구 들어오고 있군요. 그러니까 민자는,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그 슬픈 여인은 내게 아마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