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은 무국적 자본주의의 한쪽 귀퉁이를 포크레인으로 떠다가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갖게 하는 도시로군요. 도로는 사통팔달 훤하게 뚫려 있고 어느 한 곳 막힘이 없이 기능적으로 잘 구획되어 있습니다. 역시 모두가 자동차 위주로 되어 있고, 인도는 마치 벌레가 갉아먹은 나뭇잎처럼 군데군데 뜯겨져 나갔거나 움푹움푹 꺼졌거나 혹은 갈라져 있는 곳이 많습니다.
자전거를 생활화하자는 전라북도 차원의 정책적인 영향을 받아서인지 군데군데 자전거 도로가 설치되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맹랑하군요. 전시행정이라고 하던가요. 겉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육두문자가 입에서 절로 터져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블록과 블록 사이의 경계석을 낮추지 않고 그냥 버려둔 게 태반이어서 자전거는커녕 오토바이도 지날 수가 없게 되어 있고, 경계석을 낮춘 곳은 또 자동차가 이미 점거하고 있어서 자전거는 차도로 내려서야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익산은 보석단지가 있는 곳이로군요. 보석은 역시 부를 상징한다고 봐야겠지요? 그것이 설령 인조보석이라 해도, 아니, 인조보석이기 때문에 더욱더 자본주의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주는 것도 같습니다. 보기에는 빛나지만 뜯어보면 내용이 부실해서 허망스러워지는 것, 속는 줄을 알고 속아주었으면서도 나중에는 속았다는 느낌으로 허둥거리게 하는 것.
'돈'이 많은 곳이라서인지 문화원의 규모도 대단하군요. 철근 콘크리트 이층 건물에 지붕에는 기와를 얹어 이른바 절충을 했는데 속된 말로 궁궐 같습니다. 문화원에서 하는 사업이 많은 모양이지요, 아마? 그런데 내부에 사람이 한 명도 없군요. 아니, 간사로 있는 여자분 한 분이 계시기는 합니다. 그러나 유랑인에게는 역시 한 명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크거나 작거나 조직의 간사란 대체로 그 조직의 핵심실무자라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여기 문화원은 간사의 재량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자료가 모두 자료실에 있는데 미안하다고, 간사께서 그러시는군요. 열쇠를 사무국장님이 갖고 계시는데 지금 식사를 하러 가셨다고, 언제 오실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는군요. 언제 오실지도 모르는 식사라면, 필경 식사는 아닐 것이고, 어쨌든 여기 문화원은 굉장한 권위와 위계질서로 구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원장과의 면담은커녕 사무국장 관리하의 자료 한 건조차도 사전예약이 없으면 유출이 불가하다 하니 문화원이란 본래 무엇하는 기관이었더라? 잠시 그런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기 어디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신 어떤 분이 문화원에서 문화의 옷을 입고 정성껏 마음을 닦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하는 그런 쓸데없는 공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마저 가지고 나가야만 할 정도로 귀중한 무엇인가를 자료실에 모셔둔 문화원장이고 사무국장이라면, 필경 문화와는 관련이 없는 분들이겠다 싶은 마음에서 아마 그런 공상을 하게 한 것도 같습니다. 문화란 언제나 열려 있고 따뜻하다는 이미지가 있기에 우리가 친근감을 갖고 선뜻 들어설 수 있는 것이지, 닫혀 있는 것이라면 이미 문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시청에서 발행한 관내지도를 보니 이게 또 여간 재미있지 않군요. <유구한 문화유산의 고장 익산>이라는 표제와 함께 미륵사지 석탑 사진이 있고, 펼치면 시청사와 의회건물 그리고 주차장이 한눈에 보이는 항공사진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행객이 필요로 하는 지도는 마치 초등학생이 색연필로 그려놓은 것처럼 엉성하기 짝이 없는데, 시청사와 체육관, 공설운동장, 도서관, 문화예술회관에 익산역사, 심지어는 호텔과 백화점 내부 사진에 이르기까지 견문이 짧은 유랑인으로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그림들이 지면을 채우고 있군요.
여행객이 시청사를 구경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시청사를 비롯한 기관 건물들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요. 아니, 아니 어쩌면 담당공무원이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함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에서 이런 특이한 발상을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잘못된 자본주의는 사람을 대체로 무능하게 하고, 게으르게 하고, 근거도 없는 자부심으로 오만스럽게 만든다 하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충정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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