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고생이 만들어주었다는 가수 한대수 씨의 노오란색 명함에는 '남자는 모두 늑대', '돈이 최고', '신속한 뻑치기', '가는 남자 잡고 오는 남자 끌어온다', '대중교통애용', '피임은 필수'... 등의 튀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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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대수 - 97년 일본 후쿠오카 페스티발에서 |
그러나 그 중에 한대수 씨와 적절한 관계에 있는 것이라곤 '대중교통애용'뿐이다. 돈이 최고라고? 아니다. 그는 간단하게 먹고 최소한의 공간만 있으면 만족하는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있다.
피임이 필수라고? 그는 피임을 하지 않는다. 연소자 관청불가(?)의 이야기를 꺼내자면, 그는 현재 '아이 만들기' 연습 중이다(그는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말을 생생하게 빌리자면, "10대에는 하루에 아이 만들기 연습을 열 번 해도 싱싱했지만, 이 나이에 연습하자니 연습도 제대로 안되고, 미치겠어..." 란다.
가수 한대수. 젊은 사람들 사이에 그의 이름은 낯설다. 거기에 그의 앨범 2집 <고무신>은 유신체제의 탄압으로 인해 판매금지는 물론 마스터테이프까지 압수당했으며, 데뷔앨범인 <멀고 먼 길>과 미국에서 발매된 <무한대>, <기억상실> 등의 앨범도 최고의 희귀율을 나타내 그의 음악을 접하는 것마저 쉽지가 않다.
 | '영원한 히피오빠'의 "물 좀 주소" / 김정훈 기자 |
그러나 타임캡슐을 타고 70년대로 돌아가보면... 청바지에 장발, 그리고 생맥주와 통기타가 반항의 아이콘이던 그 시절. 가수 한대수는 뉴욕에서 막 돌아온 한국 최초의 히피로서, 진정한 음악을 추구하는 싱어송라이터로서, 대중음악계에 모던포크바람을 몰고온 전설의 가수였다.
그 시절, 한국의 음악세계를 '행복의 나라'로 이끌어갈 것으로만 보였던 그는, 그러나 '물 좀 주소'라는 노래가 당시의 물고문을 암시한다는 중앙정보부의 말도 안 되는 검열과 탄압에 좌절, 다시 뉴욕으로 돌아갔다.
뉴욕에서 사진을 전공했던 그는 칼라 휠(Color Wheel), 크로마 카피(Chroma Copy) 등의 사진점에서 밑바닥 사진작가생활을 꾸려나갔고, 휴가 때마다 한국에 들어와 새 앨범을 만들며 음악을 향한 갈증을 해갈시켜야 했다. 첫 번째 부인 김명신 씨와는 슬픈 결별을 해야 했고, 그 후엔 모델 출신의 22살 연하 옥사나 씨와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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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촛불까지 켠 열정적인 한대수 ⓒ 오마이뉴스 배을선 |
그리고 한국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멀고 먼 길'로만 보이던 그에게 '구원의 빛'이 반짝였다. 최근 음악후배 몇 명과 뜻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그의 32년 음악인생을 장식할 대규모 콘서트를 기획한 것. 그는 기획을 맡은 젊은이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탄해 콘서트 출연을 바로 수락하고 고국으로 날아왔다. 콘서트 준비로 서울에서 보낸 기간도 한 달 남짓. 논현동의 조그만 오피스텔에서 예쁜 화분 하나를 키우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는 나일론천에 자주색으로 나염된 태국 남자들의 전통바지를 입고 탑리스(Topless) 상태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는 "촬영용 티셔츠를 입어야 해"라며 오렌지 색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그는 "집에 소주, 맥주 다 있어요. 뭐 마실래요?"라고 물었고, "물 좀 주소..."라는 기자의 답변에 "오, 초양호야, 초양호..."라며 흐뭇해했다.
- 인터뷰 부록-
* 인터뷰를 읽기 전에 숙지해야 할 <한대수에 관한 몇 가지 것들> *
1. 양호? 초양호?
그에게 좋은 것은 '양호', 나쁜 것은 '불양호'이며, 매우 좋은 것은 '초양호', 매우 나쁜 것은 '초불양호'이다.
2. 음악에 관하여...
"음악은 섹스와 같다. 연습을 하면 힘이 쭉 빠진다. 미남, 미녀라고 섹스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맞아들어가야 한다. 음악가들도 꼭 최고라고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서로 맞아야, 서로 화합을 해야 좋은 음악이 나온다."
3. 화폐에 관하여...
그는 돈을 '화폐'라고 부른다. 그에게 '투 머치 화폐(Too Much Money)'는 큰 의미가 없다. "콘서트를 위해 방문하는 장모님, 몽골공연단 등을 위해 호텔을 잡아야 하는데 공연 당일 코엑스에서 행사가 있는지 호텔에 빈 방이 없다." 이때, 논현동에 있는 그의 거처와 가까운 반포의 매리어트 호텔을 추천하는 기자에게 그가 말하길, "오, 투 머치 화폐! 나에게 그 정도의 투 머치 화폐는 없지!"
4. 열정적인, 너무나 열정적인..
스스로 인터뷰를 녹음해주는 서비스 제공. "액서서리를 해야 사진에 잘 나오지." 그는 인터뷰를 위해 인터뷰 도중 페루산 목걸이를 목에 걸었고, 갑자기 머리를 빗기도 했으며, 밥 말리용 모자를 썼다. 그리고 더 나은 인터뷰 분위기를 창출하기 위해 촛불을 켜기도 했으니...(지천명을 넘긴 영원한 히피 한대수는 너무나도 열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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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냉장고에는 김현정, 엄정화, '조폭마누라'인 옥사나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붙어 있다 ⓒ 오마이뉴스 배을선 |
- '마리화나'라는 노래를 만들었다는데?
"아... 그건 작곡과 관련이 있다. 나는 작곡을 싱싱한 10대에 거의 다했다. 나이 50줄에 들어서니 작곡? 하늘에 별따기다. 이제는 예쁜 여자를 봐도 영감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올해 4월 뉴욕 5번가를 걸어가는데 핑크색 마이크로미니스커트를 입은 금발의 여자가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라'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메디칼 마리화나를 미국 전역에서 합법화하라는 이야기인데, 직장도 그만두고 시위를 하는 그 여자에게 그것은 인생의 목적이었다. 그 여자와 이야기를 한 후,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고 마약에 대해 공부를 했다. 1930년대부터 미국에서 마리화나가 불법화된 거다. 마리화나하면 모두 살인보다 무서운 것처럼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지나치면 안 좋지만, 마리화나의 좋은 점을 관념화해서 알리려고 한다. '무지'는 인간에게 공포를 준다. 우리가 죽음을 몰라서 죽음을 두려워하듯이... 그래서 "오! 마리화나.. 두 왓 유 워너(Oh! Marijuana, Do what you wanna...)라는 유머러스하고 진지한 노래가 탄생된 거다. 하여튼, 나이가 드니 영감이 안 떠오른다."
- 자신은 나이가 들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한대수를 영원한 히피오빠로 기억하고 있다.
"내 생각엔 우리 인간이 인간에게 공포를 주는 것 같다. 법과 질서는 나름대로 양호한 면이 있지만, 제도나 형식같은 것이 시대에 따라서 바뀌지 않으면 젊은 사람들을 구속하게 되고 예술가의 창작력을 죽이게 된다. 또 화폐가 인간생활의 중심이 되는 만큼 세계인구의 3%만 이득과 행복을 누리게 되고 나머지 97%는 제도속에서 구속을 받는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문제다. 원래 법과 제도란 모든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만큼, 난 항상 거기에 물음표를 던진다. 우리가 만든 제도인 만큼 우리가 개선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항상 무언가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할아버지인 나를 아직도 히피오빠로 보는 것 같다."
- 당신은 아직도 히피의 정신인 사랑과 평화를 옹호하는가?
"인간은 원래 맬리셔스(malicious, 악의 있는)하다. 왜냐면, 인간이 인간을 미워하는 것은 노력을 안 해도 되지만, 인간이 인간을 좋아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전쟁과 분쟁이 있는 세상은 내츄럴하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미국의 테러사건도 종교분쟁에서 출발한 것이다. 미국의 뉴욕은 유대인의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또한 미국의 영화, 음악, 언론 등 모든 매스미디어는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과 마찬가지다. 배에 폭탄을 설치하고 뛰어오는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막나?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악의 씨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사랑과 평화의 마음을 갖기 위해서 정말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하늘은 푸르고, 광야는 넓어요... 캬! 누구 노래지? 내 노래잖아! 행복의 나라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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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날 너무 저항의 이미지로 터프하게만 찍으려고 해, 제발 귀엽게 찍어줘!" ⓒ 오마이뉴스 배을선 |
- 헤어진 아내 김명신 씨와 지금의 아내 옥사나 씨와 셋이서 함께 살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일부다처제로 의심하겠다?
"김명신 씨는 20년간 나의 친구요, 아내요, 동반자였다. 이혼을 하고 옥사나와 재혼해서 살고 있을 때 김명신 씨가 재혼한 독일인과 이혼을 하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했다. 나의 아내 옥사나는 나와 2년을 함께 살고 있는 자신도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나와 20년을 보낸 사람이면 무척 소중한 사람이라면서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같이 지냈던 것이다. 지금은 명신 씨와 옥사나가 친구처럼 너무 잘 지내고 있다. 옥사나는 나에게 제 2의 인생을 주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훌륭한 여자다. 몽골의 피가 흐르는 유러시안이라서 미모도 훌륭하지만 사람을 챙겨주는 데 무엇보다 감명받았다. 다시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준 것도 옥사나다. 옥사나는 내가 일을 그만하고 음악활동에 전념하라며 혼자 돈을 벌었다. 웃는 것도 행동도 터프하고. 난 싱싱한 젊은 여자와 살게 되니 너무나 좋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이 많은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없지... 하하하"
- 해군에 다녀왔다. 히피와 해군? 전혀 안 어울린다.
"히피와 해군은 완전히 부작용이 심하다. 말이 안 된다. 그 당시는 김민기 씨와 양희은 씨가 내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내가 TBC 방송국에서 말도 안되는 딴지로 인해 출연금지를 당했을 때이다. 돈이 없었다. 마침, 박정희 대통령이 디자인센터를 추진중이었고, 내가 미국에서 사진을 배웠기 때문에 디자이너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5급 공무원으로, 머리 길어도 좋으니 함께 일하자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욕심이 나서 3급 공무원으로 해달랬고, 결국 3급 공무원 초봉을 받고 디자인센터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 영장이 발급되었고, 공무원에게 영장이 나오니 빼도 박도 못하고 군대에 가야 했다. 군대에 가자니 해군들이 입는 세일러복이 가장 멋있는 것 같고 해군이 되면 배타고 해외에 간다고 해서, 이왕 '빳다'를 맞을 거면 바다에서 맞자고 해군에 입대했다. 하필 군기가 가장 센 기함에 배치되었고, 어찌나 때리던지 항상 맞았다. 히피가 군대생활을 잘 했겠나? 난 해군에서 3년 있었지만 수영도 못한다. 항상 '고문관'이었다. '고문관'이란 요즘 말하자면 군대왕따다. 하여튼 얻어맞았다."
- 당신은 군대에서 '고문관'이었을지 몰라도 당신의 노래는 영화 <공동경비구역>에서 남한병사가 북한병사에게 건네주는 첫 번째 노래였다. 영화는 보았나?
"봤다. 박찬욱 감독하고 같이 봤다. 그 당시 유니텔에서 후원하는 속초 락페스티벌이 열려서 한국에 있었다. 배우 이영애랑 송강호를 옆에 앉히고. 초양호했다. 박찬욱 감독이 내 팬이라고 하더라. 정말 영화에 내 노래가 나오더라."
- 노래 '하루아침'과 '하루밤'이 나온다. 그런데 극 중에서 송강호가 "보내준 한대수 노래테이프는 잘 들었다. 그런데 여자가수 테이프는 없나?"라고 하더라. 만약 자신의 노래 대신 여자가수 노래를 북한에 보낸다면 누구를 고르겠나?
"김현정이다. 밴드 없이 생음악을 하는데 김현정 목소리가 좋더라. 락적인 요소가 있고 허스키하기도 하고... 그리고 외모도 양호했다. 서양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외모였다. 안 그래도 어제 만났었는데 미국시장을 공략하라고 영어공부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했다. 미국에서는 일본 뮤지션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지만, 류이치 사카모토 정도가 양호한 편이고, 그도 영화음악을 하기 때문에 주류음악을 한다고 할 수가 없다. 미국에서는 동양여성이 인기다. 만약 동양여성의 락커가 음악성을 갖추고 외모도 갖추었다면 미국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다. 그 반면에 동양남성? 인기 빵점이지. 하하하. 후배가수들이 국제적으로 성공하려면 중국의 한류열풍도 좋지만 영어로 노래를 해야 한다. 스웨덴 출신의 '아바'와 독일 출신의 '스콜피온즈'가 국제적 스타가 된 이유는 그들이 영어로 된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컴퓨터 시대 아닌가? 컴퓨터 언어는 영어이다. 가수들이 노력해야 하고 기획사도 미국상륙작전을 짜야 한다. 미국시장에서 화폐를 가장 많이 벌 수 있고 국위선양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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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은 핸드폰이 안터져! 창문에 붙어야 통화를 한다니까!" 그래서 그의 창가에는 핸드폰이 놓여있다. 작은 화분은 그가 키우고 있는 것. 그의 집에선 그가 '어린왕자'다 ⓒ 오마이뉴스 배을선 |
- 70년대 후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후 고국에 돌아온 셈이다. 그때와 지금의 좋고 나쁜 점은 무엇인가?
"우선, 지금 좋은 점은 서울, 그리고 여러 도시의 편리함이다. 그 때는 수퍼마켓도 없었으니까. 그 때의 나쁜 점은 정치적인 탄압으로 예술창작이 어려웠다는 것. 하지만 좋았던 점은 정치적 억압으로 인해 국민적 화합, 협조가 어느 정도 지금보다 더 쉬웠던 것이고, 전위적인 예술, 누드를 비롯 정말 아티스트다운 아티스트들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진정한 예술보다는 화폐를 먼저 생각하는 예술가들이 많다. 지금은 정치적 억압은 없지만 화폐의 억압이 등장한 것이다. 밀리언셀러가 안될 것 같으면 기획사들이 투자를 해주지 않으니, 어떤 면에서는 화폐야말로 정치적 억압보다 더 완벽한 억압이다."
- 우리나라의 문화적 환경이 어떻게 조성되어야 '행복의 나라'로 갈 수 있을까?
"첫째, 남북간의 대화가 계속되어야 한다. 둘째, 이산가족들이 서로를 방문할 수 있도록 비자시스템이 정착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단체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흘비자, 한달비자 하는 식으로 방문을 허용하고 남북에서 서로 머물 수 있도록 영주권을 발급하고, 그렇게 서로의 왕래가 자유로워지면 정치적인 문제는 해결하기 힘들다 해도 경제적, 문화적 협조가 가능해질 것이다. "We shall overcome!(우리는 극복할 것이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국민이라는 정신으로 영화, 음악, 문화를 공유하다보면 서서히 38선이 붕괴될 것이다. 시작이 반이지 않나? 그리고 셋째, 지방색을 없애야 한다. 그리고 좀더 세계적으로 나아가 넷째. 중국, 일본과 협조해야 한다. 이제 유럽은 EU의 탄생으로 경제적으로 하나가 되었다. 미국에는 NAFTA가 있다. 아시아만 아무런 협조가 없다. 우리도 손을 잡고 지내야 한다."
한대수 씨는 그의 새 노래 '마리화나'를 콘서트에 우정출연하는 전인권 씨와 강산에 씨가 부르게 할까 생각중이다. 아무래도 마리화나로 큰 일(?)을 겪었던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게 더 의미있고 극적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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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히피 한대수 "난 밥 말리의 노래 'No woman, No cry'를 들으면 슬퍼져!" ⓒ 오마이뉴스 배을선 |
탑리스(topless)의 모습이 섹시하다는 칭찬에 수줍게 웃고, 53세의 나이에도 밥 말리의 노래 중에서 "No woman, No cry"의 노래를 가장 좋아할 정도로 여자와 감정에 약한. 그래서인지 그의 노래와 앨범 제목이 '멸망의 밤', '영원한 슬픔' 등 어둡고 우울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삶은 슬픈 것"이라며, "슬픔, 그것을 인정하고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순간부터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며 유유자적한 삶의 여유를 보인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그와의 인터뷰를 지면으로 줄여 놓으니 아쉬움이 앞선다. 이번 테러와 전쟁에 관한 그의 통찰력 및 예술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는 그를 실제로 만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왜 과거의 시대는 그와 같은 예술가를 뉴욕으로 내몰았을까?
그러나, 한대수에게 과거의 슬픔과 고통은 병아리 눈물(그는 '새발의 피'를 '병아리 눈물'이라고 표현한다)일 뿐이다. 사랑과 평화, 자유와 행복을 꿈꾸는 그의 히피정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장막을 걷고 창문을 열어라! 푸른 하늘과 넓은 광야 사이로 세월을 초월한 영원한 히피가 우리를 '행복의 나라'로 부르고 있지 않은가. "런, 베이비, 런!(Run, Baby run!)"이라 외치면서...
덧붙이는 글 | <공연 안내>
일시 - 2001년 10월 19일 금요일 저녁 8시
장소 - 올림픽 펜싱 경기장
문의 - www.ticketlink.co.kr 1588-7890 / www.movieok.co.kr 552-9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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