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사설을 통해 본 미국의 아프간 보복공격

등록 2001.10.09 10:03수정 2001.10.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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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 오늘은 555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그러나 전국 일간지 가운데 잊혀져가는 한글의 문제를 사설로 다룬 곳은 단 하나도 없었다. 들리는 건 온통 아프간 천지를 뒤엎은 가공할 미국의 대포소리 뿐. 미국의 보복공격으로 피해를 당하기는 한글도 예외는 아닌 성 싶다.

'자유'를 명분으로 내건 이번 전쟁에 대해 대부분의 신문들은 그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확전의 가능성을 경계하는 논조를 견지했다. 그러면서도 세부적인 면에 들어가서는 각 신문사의 입장에 따라 시각을 약간씩 달리하기도 했다.

우선 '메이저신문'이라 일컬어지는 조선.중앙.동아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중앙일보는 "미국의 아프간 공격은 정당성을 지닌다"고 일찌감치 못박고, 그러나 "미국은 목표물을 정교하게 조준한 핀포인팅 공격으로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미국은 이라크 등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 효과적인 공격으로 단기간에 전쟁을 마무리하도록 해야 한다"며 피해의 최소화와 조속한 마무리를 촉구했다.([중앙일보 사설] 21세기의 첫번째 전쟁, 2001.10.9)

동아일보 역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오사마 빈 라덴을 숨기고 지원한 혐의가 짙은 탈레반 정권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라면서도 "미국은 민간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무엇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거나 "어떻게 하든 서구세계와 이슬람세계 간의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해 중앙일보와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동아일보 사설] 아프간공습의 명분과 기준, 2001.10.9)

조중동의 맏형격인 조선일보 또한 "테러집단에 대해 달리 대응할 방법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그 불가피성을 확인하면서 그러나 "이번 전쟁은 테러리즘에 대한 응징이라는 목적을 정확히 달성할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전개돼야 하며 가능한 한 조속히 종결돼야 한다"고 촉구한 점에서 앞의 두 신문과 일치된 시각을 나타냈다.([조선일보 사설] 테러응징 공격의 제한성-조속성, 2001.10.9)

그런데 이들 세 신문이 과연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보복공격의 제한성과 조속성을 촉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렇게 보기 힘들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앙일보는 "공격 개시와 동시에 식량과 의약품을 아프간 주민에게 투하한 것은 잘한 일"이라며 병 주고 약 주는 미국의 행동을 치하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이슬람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반미 데모 또한 만만치 않다"고 우려하면서 "미국이 범세계적인 지지기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히 온건 이슬람 국가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군사적 성과에 집착하다 보면 자칫 구(舊)소련이 경험했듯이 제2의 베트남 악몽이 재현될 수도 있다"고 미국에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생명에 대한 존엄에서 그리 말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을 위해서 전쟁의 제한성과 조속성을 역설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기자의 판단이다.

그러면 조선.중앙.동아를 제외한 이른바 '마이너신문'들은 이번 전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먼저 경향신문. 전쟁의 명분을 인정하면서도 "무고한 인명살상"과 "문명대충돌"의 가능성을 우려한 원론적인 입장에서는 조중동과 동일했지만, 그러나 탈레반 정권의 전복을 노리고 있는 미국의 오만에 대해 "확실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타국의 정권을 범죄집단시하고 무리한 타도작전을 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비판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함으로써 구별된 모습을 보였다.([경향신문 사설]아프간 공격 확전 안되길, 2001.10.9)


국민일보도 사설에서 "이번 전쟁은 썩 흔쾌하지만은 않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미국이 테러참사의 배후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결정적이고도 직접적인 증거를 전세계에 공개하지 않고, 혹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떳떳치 못한 미국의 처사에 대해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국민일보 사설] 아프간 공격개시 이후, 2001.10.9)

한국일보는 미국의 아프간공격을 "오로지 테러리즘 대응 차원에서 보는 것은 걸맞지 않은 듯 하다"며 미국에 치우친 기존의 시각을 싸잡아 비판하고, 이번 전쟁을 "아프간의 지정학적 위치와 미국의 전략적 의도"에서부터 따져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일보는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이 지속적 테러척결 전쟁을 선언한 것은 아프간에 대한 장기적 개입을 예고한 것이며 이를 통해 중앙 아시아 전역의 불안정한 상태를 통제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작용한 것", "냉전 종식과 소련 붕괴 뒤 러시아와 서구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앙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 확대와 이 지역 석유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겨냥한 것"이라는 새로운 분석을 제시하여 눈길을 끌었다.([[한국일보 사설] 對테러戰의 의미와 한계, 2001.10.9)

대한매일은 정부 소유 신문답게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의 대응에 초점을 맞춰 논지를 전개했다. 미국의 공격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한 김 대통령의 발언과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이어서 "주도면밀한 대응과 다각적인 외교로 남북 관계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과 "물샐 틈 없는 국방태세를 바탕으로 공항, 항만, 주요시설 등의 보안에 만전을 기하고, 정치권 안정을 통해 국민 생활이 불안하지 않도록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 등을 특별히 주문하기도 했다.([대한매일 사설] 아프간 공격과 우리가 할 일, 2001.10.9)


사설의 백미는 한겨레신문. 한겨레신문은 "동시테러로 숨진 무고한 미국 시민들이나, 미국의 군사공격으로 숨지게 되는 아프가니스탄의 무고한 시민들이나 다같이 값진 목숨"이라는 휴머니스틱한 관점에서 "피와 보복의 악순환"을 가져올 수 밖에 없는 미군의 아프간보복공격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겨레신문은 또 "이번 군사작전이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를 통하지 않고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테러 응징의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점" 그리고 "보복공격으로는 테러재발을 방지할 수 없다"는 등의 절차와 목적의 불합리성을 들어 미국을 강하게 비판한 뒤, 이번 전쟁에 소요될 410억 달러를 가난한 아랍나라들의 경제발전을 위해 대신 사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테러의 재발을 막는 근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한겨레신문 사설] 피와 보복의 악순환 멎어야, 20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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