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서점은 사라지는가

고려대 학생들의 장백서점 살리기 운동

등록 2001.10.09 10:21수정 2001.10.1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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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악화로 존폐 위기에 놓인 고대 앞 '장백'. 학생들이 나서서 출자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 역부족이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지난해 11월 연대 앞 '오늘의 책'이 경영악화로 문을 닫은 지 1년만에 고려대 앞 '장백', 서강대 앞 '서강인' 등 몇 군데 남지 않은 서울시내 사회과학서점들도 줄줄이 폐점 위기를 맞고 있다.

'서강인' 사장 신영균(36) 씨는 임대료가 두 배 이상 오르자 서점 운영을 포기하고 13년간 서강대 앞을 지켜온 서점 간판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이 자리에는 다음달에 약국이 들어설 예정이다.

고려대 학생들은 장백서점의 경영난이 알려지자 '장백 살리기 대책위'를 구성하여 출자운동을 벌이고 있으나 필요한 금액이 너무 커서 역부족인 상태다. 한 달간 모금한 금액이 약 1000만원. 하지만 장백서점이 다시 문을 열기 위해서는 최소한 5000만원이 필요하다.


'오늘의 책' 폐점 1년, 나머지 서점도 그 뒤를 따를까

10월 8일 찾은 장백서점은 책장의 반 이상이 비어있었다. 현재 장백의 재정상황은 한마디로 '최악'이다. 책값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해 생긴 '출판사 빚'만 5000만원이고 그 동안 경영악화로 쌓인 금융권과 사채 빚이 무려 7000만원이다. 출판사들은 거래 중단은 물론 이미 공급했던 책도 대부분 회수해 갔다.

재정이 이렇게 악화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97년부터 있던 빚이 5000만원이고 야심차게 시작했던 지하 문화공간 사업이 실패하면서 많은 손해를 봤다. 이후 여러가지 이유에 의해 매출이 점점 감소돼면서 빚이 빚을 낳는 결과가 됐다. 운영자인 김용운 씨의 두 차례에 걸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구속도 경영악화에 한몫을 했다.

서강대 앞 '서강인'은 두배 이상 오른 임대료에 서점을 폐점하기로 결정했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서강인의 경우는 장백서점과 조금 다르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서강인은 큰 무리없이 운영되고 있다. 신영균 사장은 "우리는 장백처럼 현재 빚을 많이 지거나 극도의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강인이 문을 닫는 이유는 임대 계약이 만료되면서 임대료가 두배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신 사장은 "학교 안 서점이 10% 할인판매를 시작하고, 홍익문고·신촌문고 등 주변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의 틈새 속에서 임대료가 두 배 인상되면 더 이상 서점운영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서강인의 폐점 결정은 대학가 앞 사회과학서점 쇠퇴의 원인이 학생운동권의 침체뿐 아니라 전반적인 도서유통구조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서강인의 결정이 현명하다. 또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장백서점은 벌써 문을 닫았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 6월 김용운 씨가 총학생회 게시판을 통해 경영악화로 인한 장백서점의 폐점을 선언하자 고려대 학생들은 아쉬움을 표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장백 재건운동을 펼쳐야한다는 이야기가 쏟아져나오고 장백 살리기 주점이 열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용운 씨도 다시 팔을 걷어부쳤다. 학생들은 '장백 살리기 대책위'를 조직, 한 구좌에 개인 10만원, 단체 50만원 씩 출자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상식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상식을 거부하고 장백을 살리려는 학생들

장백서점이 다시 문을 열기 위해서는 당장 최소한 5000만원이 필요하다. 출판사의 급한 불을 꺼서 책을 다시 들여오는데 최소한 2000만원이 들어가고 새로 이전한 장소의 임대료와 기본적인 인테리어 비용이 약 3000만원 정도다. 김씨는 학생들의 출자운동으로 약 2000만원 정도를 기대하고 있다. 나머지 필요한 자금은 투자·동업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현재 장백서점의 책장은 반 이상이 비어있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김용운 씨는 "일단 책이 들어오고 서점이 정상화되면 나머지 빚은 운영 이익금으로 차근차근 갚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향후 서점의 운영을 '운동권 서점'이 아닌 '인문학 전문 서점'으로 특화시켜나간다는 방침이다.

학생들의 계산은 좀 다르다. '장백 살리기 대책위' 김주태 대표(고대 화학공학과 95학번)는 "출자운동의 목표는 1억"이라고 말했다. "1억이 정말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래야만 장백이 빚이 빚을 낳는 예전의 악순환을 답습하지 않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으므로 그때까지 출자운동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출자운동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매우 많다. 장백서점은 이미 지난 97년 한 차례 출자운동을 벌인 경험이 있다. 당시 한 구좌에 개인·단체 10만원씩 3개월에 걸쳐 약 3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해 약 3100만원을 모았다. 그런데 4년 뒤 거의 똑같은 출자운동을 벌이게 됐다. 이유야 어찌됐든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경영에 실패한 것이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또 벌이는 출자운동은 명분이 안선다는 시각이다.

불투명한 전망도 출자를 회의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한 학생은 "설혹 출자를 해서 다시 서점이 문을 연다 해도 경영이 호전되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말했다.


장백을 살리기 위한 문화 공연

출자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든 또는 대성공을 거두어 1억이 걷히든, 결말이 어떻게 나든 간에 사회과학서점을 살리려는 고려대 학생들의 도전은 시작됐다. '장백 살리기 대책위'는 출자운동을 계속 진행하는 한편, 10월 11일 6시 고려대 노천극장에서 성시경·긱스·롤러코스터·이정열·천지인·풀린개 등이 참여하는 장백살리기 문화제 '장난(長亂)'를 개최한다.

ⓒ 오마이뉴스 이병한
長亂. 86년부터 15년을 이어온 학교 앞 작은 서점을 살리기 위해 학생들이 대규모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난(亂)'일지 모른다. 또한 80년대 군사독재정권의 극심한 통제 속에서 말과 사상을 확산시켰던 사회과학서점을 2000년대 대학생들이 살리려고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반란(反亂)'일지 모른다.

이 '반란'이 실패하게 되면 서울시내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은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 성대 앞 '논장', 건대 앞 '인서점' 등만 남게 된다.

덧붙이는 글 | 기사의 마지막 10월 11일 문화제 출연진 부분이 일부 잘못되어 수정하였습니다.(10일 오전 9시)

덧붙이는 글 기사의 마지막 10월 11일 문화제 출연진 부분이 일부 잘못되어 수정하였습니다.(10일 오전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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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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