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1.10.09 11:02수정 2001.10.0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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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보슬비가 내리는 날은 괜스레 마음이 우울해진다. 그러나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비밀스런 나만의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나는 꿈많은 18세 소녀가 된다.
주택생활에서 대단지 아파트로 이사 온 지 4년이 되어 간다. 처음 얼마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교통불편 때문에 불평도 많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 속의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도심 속을 벗어나 공기 맑고 조용한 이곳으로 이사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에 블라인더를 열어 젖히면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는 새벽, 하늘에 환히 내다뵈는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사로잡는 것은 묘한 분위기로 미지의 세계를 연상케하는 작은 풍경이다. 4층 베란다에서 내다보이는 그 곳은 약간 오르막 길이면서 그리 넓지않는 아스팔트 도로, 그 뒤로 키작은 나무들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4층에서 보이는 눈높이 보다는 시선이 조금 위로 보이는 덕분에 내게는 실제보다 더 경사지게 느껴진다. 그 언덕을 지나면 한 초등학교가 있고 여러 개의 마을과 공장들이 들어 서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 번 언덕 너머에는 알 수 없는 미지의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착각을 하게 된다.
언덕 옆에는 높이가 같은 밭이 길게 펼쳐져 있고 그 곳엔 갖가지의 채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밭 주인 그 곳에서 일을 하는 모습은 마치 외국의 어느 평원을 연상케 한다.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가을 걷이를 밀레의 종이 떠 올려지기도 한다.
하늘을 등에 지고 있는 언덕은 그것이 하늘인줄 명백하지만 나는 자주 바다로 착각을 한다. 땅거미가 짙어질 때면 나무들은 바다에 떠 있는 배가 되고 가끔씩 비치는 자동차의 불빛은 등대가 된다. 아무 것도 없던 언덕에 하얀색의 자동차가 출현하면 제주도의 운치있는 도로를 떠올리게 한다.
언덕은 어떤 존재가 나타나느냐에 따라 가지각색의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특히 날씨의 변화에 따라 그것은 더욱 짙어진다. 햇빛이 구름에 가려지고 바람이 떨어진 낙엽을 굴리면 고독이 밀려와 당장이라도 벤취로 달려가 고독한 여인이 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날씨가 화창한 날은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걸으며 가을 연인이 되어 보고 싶기도 한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노란 레인코트를 입고 비라도 흠뻑 젖어 보고 싶다. 무심코 보면 그저 보통 경치와 다를바 없는 풍경이라고 하겠지만 내게는 희망과 꿈을 안겨주는 소중한 언덕이다. 비밀스런 나만의 풍겨을 가진 나는 정말 행복한 여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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