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최대피해자 여성가장 2백만

남편 '퇴출쇼크' 속 일자리 찾기 안간힘..."입에 풀칠이라도..."

등록 2001.10.09 17:32수정 2001.10.0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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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린이와 여성들이라고 한다. 1997년 말 닥친 경제환란도 이 땅의 수많은 여성들에겐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날마다 셀 수 없이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았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일터에서 밀려난 남편들은 '퇴출'의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고 그 공백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IMF 이후 여성의 경제활동 늘어

1997년 이후 IMF 체제를 계기로 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때늦은 발걸음을 내딛었다. "자아 실현을 위해서" "세상을 체험해보고 싶어서"라는 사치스러운 명분은 그들에게 없었다. 단지 "생계를 위해서"였다. 이러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정부가 IMF 졸업을 발표한 올해 상반기까지도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9월 12일 국정감사에서 노동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998년 856만2000명이던 여성 경제활동인구는 매년 늘어나 올해 7월 932만8000명을 기록했고, 이 중 여성가장은 200만이 넘는다.

정부에서는 IMF 이후 늘어나는 여성가장들의 사회 진출을 위해 1998년부터 여러 가지 지원책을 내놓았다. 노동부가 지원하고 있는 '여성가장 취업훈련'과 '여성가장 자영업지원', '여성가장 채용장려금'이 대표적인 정책이며, 이중 IMF 직후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이 여성가장 취업훈련이다.

노동부 근로여성정책국 방미경 사무관은 "알반 실직자재취직훈련과는 달리 독서지도사, 꽃방 창업, 피부관리사 등 여성들이 배우기 쉬운 프로그램들이 갖춰져 있어 인기가 많다"며 여성가장 취업훈련의 역할을 강조한다. 1998년부터 올해 6월까지 이 훈련을 수료한 여성가장은 1만8953명이며 훈련을 마치고 취업한 여성가장은 6927명에 달한다.

마포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꽃방 창업훈련을 받은 김정아(가명·40세) 씨는 노동부에서 시행하는 여성가장 지원책을 골고루 활용한 경우다. 김 씨는 꽃방 창업훈련을 마치고 여성가장 자영업지원을 신청, 근로복지공단에서 점포를 지원받아 수유리에 꽃가게를 열고 성업 중이다.


김 씨가 자립하는 데 무엇보다 큰 힘이 된 것은 함께 훈련받은 여성가장들이었다. 사회로 나가는 첫 번째 관문을 함께 하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됐던 것이다.

독서지도사 훈련을 받은 이수영(가명·40세) 씨도 여성가장 취업훈련에서 취업 이상의 힘을 얻고 사회에 진출했다. 처음에는 힘든 현실에 절망하기도 했지만 훈련을 받으며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 정신적으로 큰 힘을 얻었다. 현재 이 씨는 세 아이를 키우며 간신히 생계유지를 하고 있지만 그 열의만은 잃지 않고 있다.


정부 지원 소외받는 실질적 여성가장

그러나 여성가장 취업훈련을 비롯한 정부의 여성가장 지원책이 지닌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노동부에서 규정하고 있는 여성가장은 사별이나 이혼으로 여성이 세대주이거나 남편이 심각한 장애를 지니고 있어 근로능력이 전혀 없는 경우, 또 남편이 수감 중이거나 행방불명돼 가족을 부양할 능력이 전혀 없는 경우로 제한돼 있다. 즉, IMF 이후 이에 대한 대책으로 마련된 지원책에서 IMF로 장기실직한 남편대신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여성가장들은 완전히 소외된 것이다.

실제로 여성인력개발센터에 걸려오는 수많은 문의전화 중에 절반 이상이 노동부에서 규정한 자격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라고 한다. 마포여성인력개발센터 박정숙 사무국장은 "노동부에서는 직접 나와서 보지 않으니 잘 모른다. 정작 교육받아야 할 사람이 못받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며 여성가장 취업훈련의 현실을 개탄했다.

서초여성인력개발센터 김인선 관장 역시 "노동부에서 규정한 자격 이외의 여성가장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다. 아마 그에 대한 통계조차 없을 것"이라며 여성가장 정책의 사각지대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IMF 이후 장기실직상태에 빠진 남편을 대신해 취업전선으로 뛰쳐나온 대부분의 여성가장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미화 파출부직업소개소의 김동희 소장은 IMF 직후 파출부나 식당일을 하겠다고 문의하는 주부들이 급증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말한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배울 만한 여건도 안되는 여성가장들이 할 만한 일은 식당일이나 파출부뿐이었다. 또 조금만 자본이 있으면 모두들 식당을 하겠다고 나서 그나마 있는 돈마저 날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루에도 수십개의 식당이 문을 열고 또 그만큼의 식당이 문을 닫았다.

"장래 위한 교육보다 생계유지가 우선"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가장창업위원회에서 작년 4월에 시작한 여성가장을 위한 일터 '어머니의 뜰'도 식당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신명숙(가명·46세) 씨는 IMF가 배출한 전형적인 여성가장이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그래도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뚜렷한 직장없이 여기저기서 벌어오는 돈으로는 생계비의 반도 감당할 수 없었다. 신 씨까지 팔을 걷어부치고 식당일을 해야 간신히 두 아이를 먹이고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신 씨도 노동부에서 하는 취업훈련이나 자영업지원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남편이 있어 자격이 안될 뿐 아니라 가만히 앉아서 교육이나 받고 있을 형편이 아니었다.

"당장 돈을 벌어서 입에 풀칠을 해야 하는데 길게는 1년이나 되는 교육을 어떻게 받아요. 나중에야 도움이 될지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 돈이 들어와야지……." 신 씨는 그렇게 까다로운 여성가장 지원책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다 정부의 생색내기일 뿐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신 씨는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해 한달에 90만원 정도를 받는다. 대부분의 여성가장이 그녀와 같이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고된 육체노동으로 100만원이 채 안되는 돈을 받는다.

1998년을 기점으로 수많은 여성들이 밀려나오다시피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IMF 체제는 모두에게 너무나 큰 타격이었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여성들은 피해자로 남지 않았다. 그들은 실의에 빠진 남편들을 대신해 쓰러진 경제와 가정을 짊어지고 전쟁의 최전방에 나섰다.

올해 8월 정부는 IMF 졸업을 선언했지만 아직 많은 여성들에게 IMF는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 있다. 정부 관료의 입이 아닌 그녀들의 입에서 승전보가 전해져야만 우리는 비로소 IMF 졸업을 실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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