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창 4:23~24)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라멕의 검가'(劍歌)다. 라멕은 동생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 카인의 7대손으로, 타락한 인간의 전형으로 묘사되는 인물이다. 그러한 인물이 부르는 노래니 뭔가 특별한 게 있을 법 하다.
내용은 이러하다. 나 어린 어떤 녀석이 감히 라멕에게 상처를 입혔는데 그 보복으로 라멕이 그를 잔인하게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라멕은 그것이 자랑스러워서 자신의 무용담을 아내들 앞에서 떠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현대적인 말투로 옮기면 "봤지? 누구든지 나를 건드는 놈은 내가 몇십 배로 갚아주고 만다. 내 몸에 상처 하나라도 나면 그는 죽음을 각오해야 할 껄~!" 정도가 되겠다.
라멕의 검가는 카인에 의한 첫번째 살인 이후 에덴의 동쪽에서 살인이 만성화되고 대물림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무력과 폭력이 인간세상의 새로운 질서로 등장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내가 왜 느닷없이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가? 그것은 지금 미국이 벌이고 있는 짓이 라멕의 행동과 너무나 유사해서다. 9.11 미 본토에서의 대규모참사 이후 미국은 테러범에 대한 척결을 다짐하며 전세계를 상대로 "미국편이냐? 테러리스트편이냐?"는 생사결단의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미국편에 서지 않으면 미국의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위협과 함께.
이런 무지막지한 흑백논리 앞에서 동맹국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국의 생존을 위해 미국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일본과 러시아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이를 이용해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약삭빠름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전세계적인 지지를 확보한 미국은 물증도 없이 테러범으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요구하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압박하는 한편, 무자비한 보복을 거듭 천명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8일, "무한정의"에서 "항구적인 자유"로 옷을 바꿔입은 미국의 군사공격이 시작됐다. 아프가니스탄 1년 예산보다도 더 비싸다는 토마호크 미사일 수십.수백 기가 아프간의 도시들을 융단폭격하고, 레이다망에도 잡히지 않는다는 '유령' 스텔스전폭기는 아프간 하늘을 제 집 드나들 듯 오가며 마음대로 유린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79년, 아프간군이 구 소련군을 물리친 것을 두고 아프간이 만만치 않은 적수이며 자칫하다간 미국이 제2의 월남전과 같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모양이지만, 그러나 이는 마비된 쥐를 사냥하려는 뱀을 걱정하는 꼴이다.
당시 냉전체제 하에서 치뤄진 전투에서 아프간군은 미국을 위시한 여러 나라로부터 대규모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적으로 철저하게 고립됐다. 게다가 인공지능을 장착한 미국의 신무기는 구 소련군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정교하다. 어찌 상대가 되겠는가.
밤낮으로 쏟아붓는 서너 차례의 공습만으로도 아프간은 이미 수습불능의 만신창이가 된 듯 하다. 벌써부터 병원이 피폭되었다는 말이 들리고, 민간인들도 다수 희생되었다는 말들도 들린다. 그러나 미국은 빈 라덴과 아프간을 공격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한 술 더 떠 제3국으로까지 전쟁을 확대시키려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세계 제일의 화력을 앞세운 미국이 하려고 하는 일을 뉘라서 막겠는가. 엄연한 주권국가인 탈레반 정부를 뒤집어 엎는대도, 유엔의 동의와 절차없이 전쟁을 감행한대도, 공격대상을 마음대로 선정하여 확전을 시도한대도 이를 바로잡고 제지할 나라가 없다. 이 땅이 "미국의, 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 팩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세상인 탓이다.
이런 판국에 미국을 향해 미국인들의 목숨과 아랍인들의 목숨은 다같이 소중하고 존엄한 것이라고, 테러나 전쟁이나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보복공격으로는 테러를 근절하지 못하며 피의 악순환만 불러올 뿐이라고 아무리 목이 쉬어라 외쳐봤자 우이독경 내지는 마이동풍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은 뻔할 뻔자. 주한 미 대사관 앞에서 '전쟁반대'를 외치며 시위하는 여성들을 경찰들이 연행해가는 세상이니 더 말해 무삼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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