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1.10.10 10:55수정 2001.10.10 13:52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침부터 사물놀이패가 아파트 전체를 들썩거리게 한다. 어제 저녁부터 아파트 단지내 거주하시는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를 한다는 내용의 방송이 이어졌다. 주최는 물론 아파트 부녀회다.
오늘 열리는 경로잔치는 사물놀이패 덕분에 아파트내에 자리잡은 나무들까지도 흥을 돋군다. 어깨가 저절로 덜썩덜썩. 떡과 국수, 김밥, 과일, 고기 등등 갖가지 음식들이 등장하고 가마솥에 끓는 국밥의 열기는 쌀쌀한 가을날씨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낸다. 매년 이어지는 행사지만 올해는 유난히 나의 마음이 훈훈해지는 건 무엇때문일까.
어느 프로그램에서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기 싫어 급기야 백화점 쇼핑을 핑계로 백화점에 버려두고 집으로 가버리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고도 그 며느리는 당당하게 자기가 버린 게 아니라 시어머니를 집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쓸모없는 사람으로 몰아 부치는데 정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야기의 주제는 부부간의 갈등을 다룬 내용이었으나, 자식을 위해 며느리의 구박을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두드러지는 드라마였다. 그 며느리를 보면서 자신의 잘못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그녀가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노인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어른을 모시는 문제, 노인복지문제. 그러나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미래가 이토록 어둡고 불확실한데 대해 마음이 아프다.
어렸을 때부터 종가집 맏며느리로 시집 와서 고생만 하는 엄마를 보는 게 싫었지만, 지금의 나 역시 엄마와 똑같은 자리에 있다. 언니와 나는 나란히 외동아들에게 시집을 가 엄마의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다. 그러나 보고 자란 환경은 무시하지 못하는가 보다.
시어른을 모시는 것이 내겐 당연하게 여겨졌고 핵가족 시대에 가족 모두가 함께 모여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친정이 종가집이었다고는 하나 2남2녀 중 오빠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언니는 일찍 객지생활을 해 가족간의 사랑이 나는 늘 그리웠다.
점점 삭막해져 가는 현실에서 내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진정한 가족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의 마음에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방법을 깨닫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바람은 시어머니의 반대로 희망사항이 되고 말았다. 시어머니는 아직까진 며느리와 살고 싶지 않고 당신 친구분들과 어울려 여행을 다니는 것이 더 큰 재미라고 극구 반대를 하신다.
이 년전, 시어머니는 골다공증이 심해 부득이 우리 집에서 두 달 정도 계셔야만 했다. 그 때, 5살이던 둘째녀석은 곧 잘 할머니와 다투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 녀석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할머니께
"할머니, 할머니 집에 가라. 할머니 싫다."
"할매는 싫다. 여기는 우리 아들집인데 나는 안갈란다. 여기서 살기다."
녀석의 말에 시어머니는 내심 서운해 하실 거라 생각하니 내가 민망해졌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동안 어머니의 몸은 생각보다 빨리 회복되어 시어른들이 사시던 곳으로 돌아가셨다. 그 뒤로, 전에는 큰 손자만 이뻐하시던 어머니는 작은 손자와 싸우면서 정이 많이 들었는지 지금은 작은 손자을 더 귀여워하신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냄새가 나서 싫다고 가까이 가는 것조차 꺼려하는 것이 요즈음의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을 길러 주지 않으면 지금의 우리가 늙으면 자식들에게 어느 프로그램의 며느리와 똑같은 대접을 받지 말란 법은 없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람이 살아가는데 대한 예의와 법도는 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지켜져야만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도 인간사회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물놀이패의 한 판 놀이가 끝나고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자식들의 자랑, 손자들 자랑으로 이야기 꽃을 피우며 경로잔치를 즐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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