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정이 아깝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를 외조하면 안되나?

등록 2001.10.30 13:37수정 2001.10.3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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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들로부터 가장 닮고 싶은 사람 1위에 꼽히던 KBS1 뉴스9의 황현정(31) 아나운서가 11월 5일자로 정든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나선다고 한다.

물론 그녀는 결혼을 통해 많은 것을 잃거나 양보해야 하는 이 땅의 많은 주부들과는 달리 내년 1월쯤에는 한양대학교 방송아카데미에서 겸임교수를 맡아 아나운서 실무에 관한 강의를 할 예정이라는 소리도 들리고, 다른 방송사나 광고업계에서도 그녀를 탐내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행복한 여성인 셈이다.


실제로 그녀는 "남는 시간에 프리랜서로서 저만의 차별화된 능력을 키우기 위해 영어, 컴퓨터 등을 배울 생각"이라면서 "국제행사장에서 동시통역사로 일하고 싶기도 하고 제 이미지를 널리 알릴 수 있는 CF 등에도 출연하고 싶다"며 사회생활에 대한 강한 의욕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결혼 후 불과 두어 달쯤 지난 상태에서 오래도록 정든 직장을 그만둔 그녀의 선택이 전적으로 자의(自意)에 의한 판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날마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 산다'고 말하는 그녀지만 "남편이 그만두라고 한 말도 있고, 막상 결혼해 보니 주부의 일과 직장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자신의 말 속에는 결혼을 통해 자신이 이뤄온 많은 것들을 양보해야 하고, 희생해야 하는 숱한 대한민국 여성의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물론 그녀는 "설거지하랴, 빨래하랴 결혼하니까 집에서 여자가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사표를 냈지만 완전히 가정주부로 살 생각은 없어요. 회사에 매여 있는 몸이 아닌 만큼 여유 있게 하고 싶은 일들을 맘껏 하고 싶어요"라며 사회적인 성취와 함께 원만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의지를 밝혔지만, 정보통신 벤처기업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사장으로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가는 남편 이재웅 씨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서 포기했다면 실망이 크다.

신혼의 단꿈을 즐기고픈 새내기 신혼부부의 욕심, 그리고 사랑스런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려는 남편의 소망을 나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런 행복을 위해 왜 일방이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는가 말이다. 이 씨가 아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있고 싶다면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의 매니저 역할을 맡으면 될 일 아닌가. 나는 아나운서 황현정 씨 일이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재웅 씨의 일보다 가볍다거나, 쉽게 그만둬도 좋을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황 씨는 자신이 그만두는데 대한 남편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 "회사 그만둔다니까 너무 좋아하더라구요"라고 말했다. 세간에 떠돌고 있는'남편이 KBS에서 사퇴할 것을 종용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아주 틀리다고는 할 수 없죠. 6월 결혼한 후 남편은 은근히, 하지만 지속적으로 그만둘 것을 권유했어요. 평일 밤 시간을 모조리 뺏기니까 그게 안타까웠나봐요"라며 남편을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남편이라지만 아내가 즐거워하고 보람을 느끼는 직업에 대해 '은근히, 지속적'으로 그만두라고 권유할 수 있을까. 도대체 아내의 직업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했기에 그런 권유를 지속한단 말인가. 그게 진정한 사랑일까. 지금은 사랑만으로 그런 요구들을 기쁘게 받아들였겠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행동,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의 행복한 선택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요즘 많은 예비신랑감들은 맞벌이를 할 수 있는 여성을 신부감으로 원한다고 한다. 먹고 살기가 그만큼 힘든 세상이니 함께 벌어서 빨리 자립하자는 뜻일 게다. 그런데도 이재웅 사장은 괜찮은 직장에서 인정받는 꽤 괜찮은 맞벌이 신부를 오히려 원하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내가 능력 있으니 당신은 안 벌어도 좋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지만, 약간만 달리 생각하면 '푼돈 안 벌어와도 좋다'는 말 아닐까.

도대체 이 땅의 수많은 남자들은 왜 결혼만 하면 아내를 집에 들어 앉히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전문분야에서 소위 '잘 나가는' 아내를 꼭 그만두게 해야 직성이 풀리냐는 말이다.


혹자는 '결혼이야말로 진정한 벤처'라고 한다. 딱 들어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끊임없이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게 벤처기업이듯, 세상의 고정관념과 얽매인 틀을 과감히 벗어 던져야만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는 게 바로 결혼이라는 생각이다.

아내를 집에 들어 앉히려 지속적으로 권유한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이 씨에게 결혼에도 벤처정신을 가져달라고 부탁한다면 주제넘은 권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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