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님,
이렇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가을이 깊어가니 아직도 가을을 탄다고 하시던 홍 선생님이 문득 생각나 이렇게 글을 띄웁니다. 귀국하고 바로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 건데, 어쩌다 바쁘게 지내다보니 차일피일 늦어졌습니다. 널리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홍 선생님과의 이국에서의 첫 대면은 저를 설레게 했습니다. 라데팡스의 카페에서의 시간, 그리고 고호박물관에서의 시간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어떻게 그런 많은 이야기를 - 언론개혁, 안티조선,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 한겨레신문, 그리고 기독교 등등에 관하여 - 나눌 수 있었는지, 그리고 생각이 어떻게 그렇게 비슷한지 저도 놀랐습니다.
홍 선생님을 뵙고 온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벌써 여름은 다 가고, 단풍들고 낙엽이 지기 시작입니다. 그러나 요새는 왠지 낙엽지는 것을 보면 조선일보가 연상이 되어 낙엽 구경이 싫지 않습니다.
제가 고호기념관 관람을 마치고, 고호정원에서 뵌 홍 선생님의 모습은 고뇌하는 지식인의 상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때 홍 선생님은 가을 타는 마음으로 이 나라와 사회를 걱정하셨습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홍 선생님의 그 모습 위에 세무조사 이후 벌어졌던 지식인 논쟁의 중심에 서 있던 몇몇 추악한 지식인 군상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이라는 억지로는 성이 차지 않아 신문개혁을 주장하는 지식인과 시민사회단체를 악에 받쳐 홍위병, 악령으로까지 매도하던 그 소위 지식인들 말입니다.
신문사 세무조사로 촉발된 지식인 논쟁은 지식인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나타냈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막연히 지식인처럼 보였던 대학교수, 소설가, 언론인들이 실은 지식인이 아니라 지식꾼 또는 지식기술자였다는 사실을 지식인 논쟁은 여실히 보여 주었지요. 그동안 대학교수, 소설가 하면 자동 지식인으로 인식되었지만 이번 세무조사를 둘러싼 지식인 논쟁을 통해 그들이 다 지식인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졌으리라는 생각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그전 같으면 저 같은 사람에게 악령이라는 자랑스런 칭호를 내려준 대학교수 유석춘이 지식인 행세를 했겠지요. 또 아직도 일부 거대신문에서는 시평도 쓰면서 마치 지식인연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이문열, 이인화도 마찬가지지요. 저도 사실은 소설, 시를 쓰는 문인에 대해 외경 같은 것을 갖고있었지요. 그것이 이번 논쟁을 통해 완전히 깨졌습니다. 말하자면 제가 개안을 한 셈이지요. 이인화가 말한 대로 '저런 것들'이 지식인이라면 우리 사회에게는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희망이 없는 사회가 되겠지요. 아무튼 세무조사 덕분에 사이비 지식인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세무조사의 커다란 부차적 수확이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논리도 없이 전개되는 소위 대학교수, 소설가, 언론인라는 사람들의 억지 글. 그 이유를 홍 선생님은 인문사회 계통에서 수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셨지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어찌 저런 지식꾼들만 날뛰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옳은 생각과 바른 말을 하는 지식인은 유배생활을 하거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곡학하는 지식인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시대는 홍 선생님 같은 분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그동안 홍 선생님께서 쓰신 글들은 이 좁은 땅덩어리에 사는 우물안 지식인들을 눈뜨게 하는 그런 글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이 사회에는 조선중앙동아 같은 거대신문에 글같지 않은 허접쓰레기를 써갈기는 일부 위선적인 지식인들을 글로써 꾸짖을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 이국땅에서 조국의 가슴아픈 현실을 바라보며 고뇌에 잠겨있기 보다, 여기, 우리나라에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겨레신문 독자수가 아직도 창간 때의 독자수 수준에 머물러있는 사실에 선생님과 저는 개탄을 했지요. 그 현상을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한겨레가 어떻게 탄생한 신문입니까? 오랜 독재에 저항해 오던 민중이 시대의 흐름을 민주화로 바꾼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6월항쟁으로 태어난 신문 아닙니까?
민주화운동의 적자이며 온 국민의 염원을 후광으로 태어난 국민주 신문을 국민이 외면을 하다니요. 한겨레의 직무태만은 후에 엄히 꾸짖을 일이고, 일반 대중이 외면을 하는 것은 백보 양보하여 그렇다 치더라도, 소위 지식인들이 외면하는 이유는 무언가요. 그들이 그 당시 부르짖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단 말인가요?
그런 한겨레를 위해서도 할 일이 있고 오셔서 하고픈 일도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홍선생님께 말씀드렸지요. 이 사회가 바로 지금 홍 선생님을 절실히 필 요로 하고 있다고요. 저는 솔직히 선생님의 개인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귀국추진위원회라도 만들고 싶은 생각입니다. 선생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우리의 사회가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서 돌아 오십시오. 큰 플래카드 하나 들고 환영나가겠습니다. 이 땅의 홍 선생님을 기다리는 많은 분들과 함께 마중나가겠습니다.
2001년 10월 말 어느날
대전에서 여인철 올림
추신. 홍 선생님이 저를 고호기념관에 데려가신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호가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그곳, 마지막 70일 가량 동안 70여점의 대작을 생산해 냈다던 그곳, 그곳의 영상이 지워지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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