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끝낼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가 또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감에 휩싸였다. 1320억 달러의 외채 가운데 380억 달러 규모의 외채 조건을 재조정하고 있지만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세계 금융가는 중남미 3대 강국의 하나인 '탱고의 고장' 아르헨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인 관측은 비관이 주류다. 아르헨이 이번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은 채권 스와프(맞교환), 환율 제도 변경, 국제통화기금(IMF)의 신규 자금 지원 등 3가지 등이다. 이 중 어느 방안도 단기적인 처방에 그칠 수 있고, 급격한 금융시장의 혼동을 야기시킬 수 있어 전문가들은 흔쾌한 동의를 보내지 않고 있다.
채권 스와프(Debt Swap) 고리(26%)의 장기 외채를 새로 발행하는 저리(7%)의 신규 채권으로 맞바꾸는 방안이다. 아르헨 정부는 10월 초 1320억 달러에 달하는 외채 부담을 벗어나기 위해 현지 은행 및 연기금에 채권 스왑을 요구했다.
채권 스왑은 세금 수입과 국제 대출을 담보로 아르헨 정부가 저리의 신규 채권을 발행하고 이 채권을 은행 및 연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고리의 아르헨 국채와 맞바꾸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스왑 규모는 최소 140억 달러 어치다. 이 경우 아르헨 정부는 매년 12억 달러의 이자를 덜 지불하는 효과를 갖게 된다.
당시 이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아르헨 정부의 이자 부담이 덜어질 수 있어 시장은 환영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러나 국제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더드 앤 푸어스(S&P)는 "맞바뀔 채권의 이자율간 차이는 그만큼 아르헨이 채무 상환 능력을 잃은 것"이라고 혹평하며 9일(현지시간) 장기 국가 신용등급을 기존 'B-'에서 'CCC+'로 한단계 하향 조정했다. 사실상 디폴트에 빠졌다는 것이다.
최근 아르헨은 380억 달러 규모의 해외 금융기관 보유 외채에도 채권 스와프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메릴린치의 국제 부문 회장이었던 자콥 프렝켈을 영입했고, 법률 자문가들을 클리어리 고트리브 스틴 앤 해밀턴(CGS&H)에서 스카우트했다. 도밍고 까바요 경제장관의 윌리암 맥도너 뉴욕 연방은행 총재 회동, IMF고위 관료의 아르헨 방문, 전화 회담 등이 이어졌지만 결과는 신통찮다.
환율제도 변경, 아르헨은 현재 통화위원회(커런시보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페소화를 1대1로 미국 달러에 고정시키며, 외환 보유액(달러)만큼 국내 통화량(페소)이 결정되는 제도다. 그러나 환율 평가 절하 압력이 거세지면서 이 제도의 폐지 가능성이 강력히 거론됐다. 리처드 하우스만 하버드 대학 교수는 "이제는 변동 환율제로 이행할 시간"이라며 "현재의 아르헨 제도는 낡고 시대에 뒤처진 방식"이라고 말한다.
역설적이지만 이 제도는 까바요 장관이 1991년 경제장관 시절 고물가, 만성적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96년 위기 재발 이전까지 시중 통화량이 크게 줄어들며 살인적인 고물가가 잡혔고, 긴축 재정정책이 취해지면서 재정적자도 급격히 감소했다.
그러나 이 환율제도가 다시 아르헨의 경제에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96년 위기 이후 물가는 다시 상승하고 있고, 금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환율은 달러와 1대1로 고정돼 있다. 평가절하 압력이 있는데도 탄력적인 외환 정책을 펴지 못한 셈이다.
하우스만 교수는 변동환율제로 환(換) 시스템을 바꾸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조정된 환율을 통해 아르헨의 달러 표시 국내 자산을 물가가 반영된 페소화 가치로 재평가하라고 주문한다. 재평가된 자산의 가격을 다시 달러로 환산했을 경우 아르헨 국내 자산의 가치는 크게 떨어지고, 결국 모든 변수가 반영된 제값이 매겨진다는 것이다.
현재의 아르헨 외환 위기가 불투명한 시장과 제대로 가격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에 원인을 두고 있기 때문에 환율제도 정비를 통해 이를 일소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금융기관과의 협상에 진척이 없고 IMF 등 국제기구와 의견 절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급격한 변동환율제 도입으로 페소화 가치가 붕괴될 경우 이들 금융기관의 아르헨 내 투자자산의 가치도 함께 붕괴되기 때문이다.
하우스만 교수는 그러나 "아르헨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탈선한 기차'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은 없다는 것은 명백해졌다"며 "정상적인 방법이 작동되지 않을 경우 비정상적인 방법이 동원되야 한다"며 환 시스템 정비를 강조한다. 필요할 경우 급격한 정책 변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신규자금 지원 토마스 도손 IMF 대변인은 "모든 논의들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30억달러의 신규 지원을 IMF가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세계은행 또한 지난해 12월 25억 달러 외에 추가 자금 지원을 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데이비드 데 페란티 세계은행 부총재는 남미 한 컨퍼런스에 참석해 "다양한 방안이 있고 우리는 모두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르헨이 이 같은 단기적 땜질식 처방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채권 스와프를 위한 보증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한다는 고충이 있다. 현재 아르헨 국채 금리는 미 재무부 채권과 18%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 신용만으로는 신규 채권을 발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규 자금 협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아르헨과 국제기관간 비공식 회담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결과는 불투명하다. 채권 스와프 방안이 적절한 대책인지부터 의문시되고, 게다가 또 자금을 지원하는 문제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주요 외신들은 아르헨의 디폴트 선언 가능성을 어느 때보다 높다고 전하고 있다. 지금 상태에서 아르헨이 결국 파산 상태에 빠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위와 같은 방안이 추진되고 있어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지난 8월 IMF와 극적인 타협을 보며 한 고비를 넘겼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러한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정부 대변인은 "종합적인 경기 대책을 30일 또는 31일 발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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