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3시에 문예진흥원 강당에서 열린 문예진흥기금 설명회에는 200여 명에 가까운 예술가 및 관계자들이 몰려들어 문예진흥기금을 둘러싼 최근의 급격한 변화와 불안정한 분위기를 대변했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문예진흥기금과 기금관리 주체인 문예진흥원의 변화 몸부림이 역력히 드러났다. 물론, 문화부와의 관계 개선 및 문예진흥원 내부 개혁 없이 추진된 몸부림이기 때문에 한계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변화의 주요 내용과 시도는 일단 긍정적으로 보인다. 2002년 문예진흥원 및 문예진흥기금의 주요한 변화는 아래 내용과 같다.
첫째, 다소간 추상적이거나 막연했던 이념(mission)과 지원목표(goal)가 비교적 구체적이고 명확한 형태로 표현되었다. 문예진흥원이 내건 문예진흥기금의 이념은 "예술을 통한 국민의 창조성 계발 및 삶의 질 향상"이다. 진흥원 측은 "문예진흥기금의 궁극적인 이념을 국가 발전의 원천이 되는 국민의 창조성 계발과 더 나아가 예술이 지향하는 고귀한 인간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에 둠으로써, 문예진흥기금의 공익성을 분명히 천명하였다"고 밝혔다.
이러한 이념은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예술을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여 민족문화의 중흥에 기여할 목적으로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한다는 과거의 추상적인 이념에서 진일보한 내용이다. 이념을 명확히 함으로써 문예진흥기금의 존재근거와 의의를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내세운 3대 기본 방향도 일단은 긍정적으로 풀이된다. 이념을 보다 구체적인 형태의 중장기적 전망 아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예술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발함 ●국민의 예술 창작과 향수 권리를 신장함 ●세대간·계층간·지역간의 문화적 조화를 추구함 등 3대 기본 방향은 각각 창작 여건 개선 등 창작자 측면, 국민의 예술활동 참여와 접근성 제고 등 향수자 측면, 문화통합적 측면 등을 지향하고 있다.
두 번째 변화는 장르별·단위사업별 중심 관리체제에서 목표지향적인 성과 관리체제로 변화를 꾀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문학, 미술, 음악, 연극, 무용, 전통예술, 대중예술, 종합 분야 등 기존의 8개 분야 70여개 사업이 ①예술 접촉기회 확대 ②예술적 창조 역량 강화 ③예술의 보존과 발전적 계승 ④문화적 조화를 위한 예술의 역할 증진 등 4대 지원목표에 따라 △관객 개발 지원 △찾아가는 예술 지원 △참여하는 예술 지원 △예술 자료·정보 보급 지원(이상 ①예술접촉 기회 확대) △창의적 예술 지원 △창작공연활성화지원 △다원적 예술 지원 △신진 예술가 지원(이상 ②예술적 창조 역량 강화) △예술 보존·조사연구 지원 △전통예술 발표·전승 보급 지원(이상 ③예술의 보존과 발전적 계승) △함께하는 문화복지 지원 △지역문화활성화 지원 △통일민족문화교류 지원 △문화예술해외교류 지원(이상 ④문화적 조화를 위한 예술의 역할 증진) 등 14개 분야로 크게 개편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문학, 미술, 음악, 연극, 무용 등 서구적 개념의 전통 예술장르 중심의 낡은 지원체제에서 참여적 문화민주주의, 문화복지, 문화적 다양성 등으로 문화예술의 중심축이 옮아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지원체제로의 이동을 뜻한다. 이는 늦게나마 문화예술의 변화와 그것을 둘러싼 급격한 환경의 변화를 수용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날 열린 설명회에서 문예진흥원 측은 창조 역량강화 측면은 예술성에 강조를 두고, 예술 접촉기회 확대 등은 4대 지원목표를 기준으로 가중치를 부여하여 차별화된 심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목표지향적인 성과관리를 위해서 4대 지원목표에 최대한 부합한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대대적 사업개편과 함께 지원심의와 관련되어 크게 주목받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지원심의 절차와 방식은 큰 변화가 없지만, 심의 주체인 심사위원을 전원 교체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동안의 기금심사 관행을 봤을 때 심사위원 전원 교체는 다소 파격적이다. 이는 문예진흥원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변화를 꾀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면서도 개인창작 지원 등 소액지원이 불가피한 영역은 기존 방식대로 할 수밖에 없으며, 지원 사업 및 규모의 1/3 정도만이 지원되는 과거의 방식은 크게 변화되지 못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단체나 개인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소액다건식 지원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액다건식 지원이 불가피한 가장 큰 이유가 기금규모의 한계 때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기금 규모의 대폭확대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예년과는 달리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할 사업에 대한 집중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 피력돼 공감을 얻기도 했다. 설명회 현장에서는 특히 예술창조 역량강화와 창조성을 제고할 수 있는 사업을 대상으로 집중지원 사업을 선정하여 지원하겠다는 방침이 천명돼 관심을 모았다.
진흥원은 또한 기존 평가방식을 대폭 수정하고, 평가 활용도를 최대한 높이겠다는 구상도 내비쳤다. 내실있는 평가수행을 위해 대대적인 사업 결과 실사를 벌이겠다는 것이다. 물론, 인원 등 여러 가지 제약에 따라 현장 평가는 몇몇 표본을 설정해 평가하는 데 그치고,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는 문서(평가서)를 통한 행정적 평가가 불가피하지만, 행정적 평가라도 꼼꼼히 해서 기금 지원과 차기 년도 사업심의 때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또, 평가의 내실화를 위해서 국민 모니터링제도도 대폭 확대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문예진흥원은 설명회를 통해 몇 가지 유의사항을 전달했다. 우선, 지원사업 유형이 대폭 바뀐 만큼 헷갈릴 경우에는 '사업 목적'과 성과가 지원사업 유형에 가장 부합하는 것을 기준으로 지원사업 신청유형을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서는 '함께하는 문화복지' 유형은 계층적 복지에 중점을 두는 사업이 해당되고, '찾아가는 예술' 유형은 공간적·지리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복지 사업에 해당되는 사업임이 일례로 제시됐다.
다음으로는 창작품에 대한 지원에 있어서 초연의 경우에는 되도록 무대공연작품 지원사업에 우선 지원할 것을, 서울 이외 지역은 되도록 지역 문예진흥기금을 이용할 것을 각각 당부했다. 또한, 국제교류나 통일 등과 관련된 사업은 정부 허가 관련 사항 등을 꼼꼼히 체크해 관련 증빙서류를 반드시 첨부해야 함에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신청서 작성시 반드시 유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도 얘기가 오갔다. 먼저, 사업 신청서 작성시에는 목표 지향점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서술해야 한다. 사업계획은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작성돼야 한다. 사업의 지속성과 집중성을 견지할 수 있도록 작성하고, 되도록 사업성과와 전망이 분명히 보일 수 있도록 꼼꼼히 기재해야 한다. 예컨대 지금까지 "지원금 교부 신청서" 작성 시에 기재했던 방식의 구체적인 계획을 지원신청서 작성 시에 기재할 것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소액다건식 지원관행 등을 포함해 예년에 비해 달라지지 않은 것들도 적지 않다. 사업비만 지원하는 원칙, 동일한 내용 지원의 경우 다수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업을 지원한다는 원칙, 중복 지원 불가 원칙 등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문예진흥원 측은 문예진흥기금 사업의 이 같은 대대적 개편이 지난 1년 여 동안 지속돼온 문예진흥기금을 둘러싼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문예진흥원이 1년 이상 준비한 "문예진흥기금 중장기 발전계획"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기금 규모와 기금 관리 주체인 문예진흥원의 구조개혁 없이 이념과 방향을 명확히 하고, 지원사업 유형을 대폭 개편한 것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지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회의적인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문예진흥지금 지원사업 개편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그래서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된다. 술만 새로 담는다고 해서 새는 부대가 안 새지는 않을 것이라는 비판을 간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위의 기사는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기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예진흥기금은 우리나라 순수예술의 유일한 젖줄인 만큼 문화예술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문화예술 분야만의 일이 아닌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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