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겁니다"

농성장 철거하는 명동성당 관계자들

등록 2001.11.01 00:00수정 2001.11.0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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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내용등급제 폐지와 정보통신부 장관 퇴진을 위한 릴레이 1인 단식농성" 6일째인 지난 27일(토) 오후 2시 경 명동성당 앞 진입로에 명동성당 주임신부님과 일단의 성당 관계자들이 들이닥쳤다.

"나가달라는 데 왜 이렇게 말을 안 듣습니까?" 주임신부님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성당 관계자로 보이는 예닐곱 명의 사내들이 현장에 설치된 선전판과 농성을 위해 깔아놓은 스티로폼을 치우기 시작했다.

혼자서 단식 농성 중이던 기자는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였고,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런 게 하나님의 뜻입니까?"라고 항의하며 그들을 만류하려 했다. 그러나, "당신이 직접 치울 거요? 아니면, 우리가 치울까?"라는 답변만 되돌아 왔을 뿐, 그들은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농성을 위해 설치됐던 물품들이 하나씩 성당 진입로 한켠 구석으로 치워지고, 마지막으로 기자와 기자가 깔고 앉은 스티로폼만 남았을 때, 그들은 다시 물었다. "자진해서 갈 거요? 아니면 우리가 들어낼까?" 기자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품들이 쌓인 쪽으로 발걸음을 뗄 수밖에 없었다. 주임신부님은 손상되지 않게 잘 치우라는 말만 성당 관계자들에게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이런 불상사를 빚게 된 첫째 잘못은 물론, 성당 측에 사전허락을 구하지 못한 주최측에 있다. 이런 류의 농성이 성당 측으로부터 허가를 받지 못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부터 허가절차를 밟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겪고 난 후 기자는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이 어렴풋하게 느껴지면서 자못 심각해졌다.

어느 때부턴가 명동성당은 시민사회단체나 노동계 등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명동성당 측의 태도를 필자는 87년 이후 쟁취된 제한적 형태의 민주화 이후 성당 측의 보수성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결과라고 해석한다. 성당 측의 태도가 변화되었다기보다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성당 측과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차이가 확인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해석에도 불구하고, 기자의 가슴 속에는 알 수 없는 서글픔이 계속 남아 있다. 암울했던 70년대와 치열했던 80년대에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성스러운 치외법권'을 행사해주었던 민주화의 상징 명동성당이 이제 와서 자신들의 정치·사회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성당측의 '자애롭지 못한 태도'(?) 때문에 한 겨울 매운 바람을 천막 하나 없이 견뎌야 하는 시민사회 운동가들이 하나둘 늘 때마다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뜻인지 의아스럽기만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회 민주화의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에는 성당 측이나 시민사회운동 진영이나 생각의 차이가 있을 터이고, 그런 인식의 편차야 서로 존중하고 이해해야 하는 성격의 것이겠지만, 그저 '미관상 좋지 않다'거나, '신자들의 불평' 때문에 사회 민주화를 위해 제 한 몸 돌보지 않은 채 단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처럼 매섭게 몰아치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기자가 단식을 하던 토요일 오후와 저녁에는 날씨도 잔뜩 흐려 있었고, 새벽에는 이내 빗방울이 굵어졌지만, 그 날 오후 늦게 다시 한번 몰려온 성당 사무장님 일행에 의해 비막이용 비닐이 강제로 철거되는 바람에 꼼짝없이 비에 젖은 침낭을 끌어안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밤을 지새던 동지들이 빗방울에 잠을 청하지 못하고, 그 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는 것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낙천적인 천성 덕에 웃는 낯으로 그들을 대하면서도,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면서도 못내 아쉽고 서글펐다. 고즈넉하고, 평화롭게 울려 퍼지는 성당의 종소리가 성당 관계자들의 매몰찬 눈길과 오버랩되면서 서글픔에 서러웠던 주말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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