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인들의 '노래하는 혁명' 2

서진석의 <발트3국 이야기>

등록 2001.11.20 17:15수정 2001.11.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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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인들의 노래를 듣고 싶으시면 왼쪽에 걸려있는 '관련화일보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첫번째 노래, <오빠가 말을 타고 나가네>는 리투아니아민요의 대표적인 장르인 여성들이 부르는 돌림노래이며, 두번째 <종달새 작은 새야>는 애인을 종달새에 비유한 사랑의 노래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나는 길을 따라 흘러간다>는 사진의 ILGI 그룹이 현대화한 라트비아 민요로서 노래 중간에 반복되는 Ligo하는 소리는 우리의 아리랑처럼 많이 쓰이는 라트비아의 여흥구입니다.)


필자의 의견으로 발트민족의 민요는, 끝없이 이어지는 평야와 들판의 모습과 아주 닮았다. 산과 계곡이 없어 변화 없이 이어지는 그 들판의 모습이 그 안에서 역사를 일구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노래에서 잘 투영되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단 누군가가 발트3국의 민속음악 음반을 가지고 와서 집에서 틀면 열 중 아홉은 뭔 음악이 저렇게 재미가 없어 하고 혀를 두르겠지마는, 리투아니아나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의 그 드넓은 평야를 달리면서, 아니면 농부들이 일을 하는 광경이나, 딸의 결혼을 준비하면서 머리를 빗어주는 어머니의 심정 등을 떠올리면서 노래를 듣는다면 그 감정은 정말 남다르다. 발트3국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더러 그 광경을 상상해보라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일 것이지만...

멜로디면으로는 상당히 비슷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용면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다르다. 일단 3국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내용은 힘들고 고된 농민의 삶, 여성의 한, 고향의 그리움 등이 될 수 있겠다.

아. 햇님, 우리 어머니
왜 그리 일찍 떠오르셨나요?

오, 가엾은 우리 딸
내가 그리도 일찍 솟아올랐건만

내가 그리도 일찍 솟아올랐건만
벌써 네가 들판에 있는 것을 보는구나

아, 햇님, 우리 어머니
왜 이리 늦게 지시는가요?

오, 가엾은 우리 딸,
내가 이리도 늦게 지건만

내가 이리도 늦게 지건만
아직도 너를 들판에 두고 가는구나.


이 민요는 리투아니아에서 수집된 민요이다. 내용에 대해서는 특별한 부연설명이 필요가 없으리라 믿는다. 이런 식으로 각자의 인생의 어려움을 한이 섞인 멜로디로 노래하는 특징이 있으므로, 어찌 보면 발트3국의 문화에는 한국인의 '한'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각국의 지리적인 입지조건, 역사적 조건, 주변 이웃국가들과의 영향 때문에 다양한 차이점을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일단 리투아니아는 바다와 접하는 면이 상대적으로 아주 적기 때문에 바다에 대한 민요가 거의 없다. 반면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에는 바다와 항해를 내용으로 한 민요들이 아주 다양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도를 살펴보면 그 이유가 분명해 지리라 믿는다. 리투아니아의 경우 바다와의 경계가 있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리보니아와 프러시아에게 바다로 가는 길을 잃은 적이 많았으므로 바다는 리투아니아 문화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닌듯 싶다.

자신의 감정과 한을 표출하는 것은 전반적으로 비슷하지만, 라트비아의 경우 사계절이나 세시풍속과 연관된 민요가 리투아니아보다 비교적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에스토니아의 경우, 역사적 사건이나 전설을 노래하는 웅대한 역사서사시가 민요로서 전수되어 오는 경우도 있다. 이전에 거론한 바 있는 '칼렙의 아들'이 그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민요를 수집하여 정리한 대표적인 예이다.

라트비아에도 십자군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영웅의 이야기인 '라츠플레시스(Lacplesis)'라는 작품이 있으며 이 역시 라트비아의 민요에 바탕을 두고 정리된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핀란드나 스웨덴 등 인접한 북유럽 국가의 영향으로 가능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리투아니아에는 그런 역사적인 사건이나 전설을 바탕으로 한 민요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구전민요를 정리하여 만든 서사시도 없다(그와 비슷한 장편시와 소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발트민족의 음악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상당히 많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상당히 오랜 세월동안 보전되어 내려오면서 원형의 모습을 많이 잃지 않은 민속음악과 민요는 전세계 중요한 민속축제에 고정레퍼토리로 지정된지 오래고, 우리나라에서도 엑스포 등 세계적인 축제에 많이 초청되어 그 모습을 선보인바 있다.

그 수수하고 순박한 모습이, 엄청난 물량과 속도로 공격해 오는 현대 매스미디어의 영향에 언제까지 굳건히 대항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박물관이나 특별보존지구에서만 전해내려오는 것이 아닌, 실생활 속에서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는 민속음악에 대한 사랑은 우리도 본받아야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사실 이런 웅변가 같은 논조로 글을 끝내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는데, 오늘만큼은 이 방법 외에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더 많은 리투아니아 민요 음악파일을 구할 수 있습니다.http://my.netian.com/~perkunas

덧붙이는 글 필자의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더 많은 리투아니아 민요 음악파일을 구할 수 있습니다.http://my.netian.com/~perku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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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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