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인간적이었던 천재의 노래

작고 11주기 맞은 고 김현식

등록 2001.11.23 02:22수정 2001.11.2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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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수라고 부르면 뭔가 촌스러운 시대이다. 적어도 싱어송 라이터에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명함이 없으면 무대에서 노래부르기가 '쪽팔리는' 대단한 시절이 온 것이다.

한달에도 미끈하게 믹싱되고 프로듀싱 된 이들 엔터테이너들의 음반이 수십 장씩 발매되고 정말이지 참신하고 파격적인 노래속에 파묻히고 있는 세상이지만 이런 세련된 노래의 인기 상종가는 한달을 넘지 못하는 세상이다.


돈이란 것들이 이 세상 것들을 천박하게 만드는데 재주가 많다고 하지만 요즘 나이 20살이 되기도 전에 몇 억씩 되는 돈을 굴려보는 이들에게서 어쩔 수 없는 허전함을 느낀다면 철 지난 투정이라고나 할까?

이런 세상에 11년전에 죽은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노래가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모르겠다. 11월 1일은 가수 김현식이 숨진지 1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예전에는 어김없이 11월 1일에는 한번쯤 생각이 나던 나의 머리속에도 이제 김현식은 그만큼 잊혀져 가는 옛날 가수가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쌀쌀해지는 늦가을이 되면 그리워지는 그의 애달픈 목소리는 올해도 어김없이 나의 감성을 깨워놓고 있다. 김현식은 상당히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불러온 가수다. 데뷔 초기 봄여름가을겨울 시절에는 주로 록가수로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면 이후에는 차차 포크, 블루스, 발라드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넓혀 갔다.

이런 다양한 종류의 노래마다 김현식은 그 노래의 색을 가장 잘 드러내는 보컬의 색을 맛깔나게 불러낼 줄 아는 가수였다. 하지만 이런 김현식의 여러 노래를 관통하는 한가지 정서는 바로 '외로움'이었다. 달콤한 발라드에서마저 그의 인생을 절절히 통과하는 외로움의 정서는 단순히 기교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애절함을 동반하고 있었다.

김현식 만큼 노래는 바로 인간이 부르는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가수도 흔치 않다. 그는 노래할 때 감정조절에 그리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어떤 곡에서 그의 내지르는 듯한 갈라진 목소리는 분명 프로로서 유치한 주체못할 감정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유치함'은 내 속의 가장 약한 인간적인 면을 흔드는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노래는 모두 나름대로 지금의 수준에서 보자면 최소한 평균이상의 걸작들이다. 하지만 혹 김현식이란 사람과 노래에 생소한 분들과 그의 음악을 공유하기 위해 4곡을 추천하고 싶다. 물론 이것은 극히 주관적인 나의 견해이다. 하지만 가장 객관적일 수도 있다. 그의 노래는 마음으로 공감하며 느낄 때 참맛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소중한 4곡은 내 인생에 있어서 사소한 몇몇 사건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전문적인 음악적 소견은 생략하기로 하자. 음악을 듣고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특히 김현식의 노래에서 세세한 면에 너무 신경쓰다간 그의 참맛을 느끼기 더 힘들어진다.


No 1. 비처럼 음악처럼

내가 처음 들었던 김현식의 노래는 '비처럼 음악처럼'이었다. 그것도 정말 노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던 1994년의 한 가을날이었다. 그 비오던 가을날은 '비처럼 음악처럼'이라는 그의 노래만을 제외하고는 아무 날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날은 내가 일생에 맞았던 어느 비오던 날보다도 가장 특별한 날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혼자 있는 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이 곡을 듣게 되었다. 이 곡은 김현식의 곡중에 가장 대중적이면서 서정적인 멜로디를 가지고 있는 곡중의 하나이다. 비 오는 쌀쌀한 가을날에 예쁜 찻집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고 있다면 한번 꼭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No 2. 언제나 그대 내곁에

대학교 2학년때 정말이지 일방적으로 마음이 있었던 한 여학우가 있었다. 그녀는 열광적인 김현식의 팬이었는데 그 중에 이 곡을 가장 많이 듣곤 했다. 글쎄 그것 때문에 나도 김현식의 팬이 됐는지는 내 자신도 모르겠다. 하지만 군대 가기전에 고백도 못해보고 복학해서 그녀와 연락마저 끊겼지만 이 노래만은 언제나 제목 그대로 내곁에 있다.

김현식의 그리움에 대한 감정을 이 곡만큼 느껴본 적인 없다. '세상은 외롭고 쓸쓸해, 때로는 친구도 필요해'라고 절규하는 김현식은 마지막으로 '그대 언제나 내곁에'라고 끝없이 반복하고 있다. 그가 항상 곁에 두고 싶어하던 그대는 누구였을까.....

No 3. 넋두리

정상적으로 출시된 앨범중 사실상 마지막인 김현식의 5집 앨범은 공동작업한 신촌블루스의 앨범과 같이 발매가 되었다. 이 때부터 김현식의 노래는 블루스의 성향이 짙게 나타나는데 5집에 수록된 이곡 역시 그렇다. 무엇보다 노래의 가사는 이미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있던 김현식 자신이 무언가를 느끼고 있지 않았나하는 느낌을 준다. 이 앨범이 발매된지 1년여 후에 김현식은 사망한다. 죽음을 예감한 가수의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그리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노래도 김현식이기에 부를 수 있는 것이다.

No 4. 내 사랑 내 곁에

김현식의 유작앨범이 된 6집의 타이틀 곡인 이 곡을 들을 때면 아직도 눈물이 나오려 한다. 이미 그의 미성은 간곳 없고 프로듀싱 된 음반에서 마저 군대군대 갈라진 음성이 들려온다. 흡사 절규를 하는 듯한 그의 노래는 마지막으로 빛을 발하는 촛불과도 같았다. 김현식은 마지막 노래에서도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줘'라고 부탁한다. 무엇이 그의 마지막까지도 이런 애원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혹 그것은 꺼져가는 자신의 운명에게 부탁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김현식이 숨진지 11년의 세월이 지나가지만 그의 노래는 잊혀지기는 커녕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그 동안 숱하게 나온 헌정앨범과 추모앨범은 비록 돈벌이에 죽은 김현식을 이용해먹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음악이 얼마나 살아 숨쉬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증거이다.

무엇이 그의 노래를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의 천재성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유약하고 가장 인간적인 모습에서 드러난다. 수많은 대마복용 혐의에 이은 수감생활, 원활치 못한 대인 관계, 항상 외톨이였던 어린 시절, 끼고 살았던 술병 등...

하지만 이렇게 너무나도 약했던 인간 김현식의 노래에 대한 열정은 죽음조차도 방해하지 못했다. 따뜻함과 인간적인 것에 대한 그의 갈망은 노래라는 도구를 통해 분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곁의 동료 가수는 그가 투병생활중에서도 신들린 듯이 노래를 불렀다고 회상하곤 했다.

노래는 오직 그의 모든 것이며 '삶'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을 바친다'라는 것은 이 세태에서 얼마나 천시받고 있는가? 정작 천시받을 것은 그러한 세태 자체일 것을. 바보처럼 살다간 이 외로운 천재는 그런 값싼 세상을 좀더 가치있게 만들어 주는 영원한 보석과 같은 존재이다.

삶중에 그와 같은 외로움과 지침 속에 빠져 있을 때 그의 노래를 들어보라. 그는 오늘도 그처럼 고단하게 사는 우리들을 위해 계속 노래하고 있다. '인생을 몰랐던 나의 길고 긴 세월 갈테면 가라지 그렇게 힘이 들면 가다가 지치면 또 일어나겠지'(넑두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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