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산단은 과연 공해로 뒤덮인 죽음의 땅인가? 아니면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혹세무민의 현장일 뿐인가?
주민들은 원인도 알 수 없는 공해병으로 인해 몸과 가산을 탕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유령 같은 공해와 사투를 벌이는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국민 건강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왜 공해에 노출된 지역 주민들을 방치하고 있을까? 그리고 발암물질에 의한 주민의 희생과 피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 96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여천산단 환경조사보고서 내용이 한 언론에 의해 밝혀지면서 공해문제가 터졌다. 당시 보고서는 여천산단 주민들의 발암 위험이 우리나라 연평균 발암률보다 27.5% 높다고 밝혔다.
환경부가 96년부터 98년까지 3년 동안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등에 맡겨 실시한 연구결과 또한 언론에 의해 밝혀졌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여천산단은 발암물질 위해도가 가장 높은 도시로 판명났다.
정부가 99년 1월 납품 받고도 3년 동안 방치한 보고서에는 대기에 배출한 VOC(휘발성 유기화합물)에 의해 여수지역 인구 1만 명당 23명이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미국 환경보호청 기준의 2300배, 세계보건기구 기준의 230배 높은 충격적인 수치이다.
환경운동연합 양장일(37) 사무처장은 29일 "정부는 여천산단 노동자와 주민들이 고농도 VOC에 피폭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국민환경권을 외면하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며 정부의 부도덕성을 지적했다.
반면 환경부 관계자는 29일 "지난 97년과 99년에 대기환경학회지에 연구결과를 발표했다"며 은폐주장을 반박했다. 또 "통계청 자료를 보더라도 암 발생이 늘어나는 것은 식품 등이 주요한 원인이다"며 대기오염에 의한 발병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여수시민들은 정부가 막대한 조세를 거둬들이기 위해 주민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타 지역에 비해 백혈병 등의 암환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위해 물질 전면 공개와 역학조사 실시 등을 촉구하고 있다.
대표적 발암물질 '벤젠' 배출 전국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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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시민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스프사 입주를 관철시켰다. ⓒ 조호진 |
여천산단은 벤젠, 포스겐, 에칠렌 등 각종 유해물질 678종과 톨루엔, 카드뮴 등 유독물질 41종을 취급하고 있다. 정부가 VOC 관리 대상물질로 정한 37개 가운데 벤젠, 스티렌, 염화비닐 등 17가지 발암물질을 한 해에 206만kg을 대기로 유출시킨 것으로 환경부 조사결과 드러났다.
지난 99년 대표적 발암물질인 벤젠의 전국 배출총량 124만kg 가운데 34만kg을 여천산단 대기에 내보내 전국 공단 중 가장 많이 배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A급 발암물질인 벤젠으로 인한 발암노출 가능성은 10만 명당 5.3명으로 미국 연방환경청이 지정한 모든 발암물질을 합친 것보다 53배를 초과한 양이다.
국제암기구(IARC)는 지난 82년 벤젠이 급성골수성 백혈병 유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96년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의 여천공단 건강위해성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6개월 이상 벤젠에 노출될 경우 용량에 따라 백혈병, 임파암, 혈액암이 증가되는 것으로 관찰됐다고 밝혔다.
바다에서도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노일(한국해양대)교수 연구팀은 지난 95∼97년 3년 동안 광양항 해양생물과 퇴적물을 분석한 결과 암을 유발시키는 독성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를 98년에 국내 처음으로 검출했다. 전문가들은 배출 주범으로 여천산단과 광양제철소를 꼽고 있다.
이와 함께 대표적 환경호르몬 물질인 비스페놀A는 국내전체 제조 취급양의 반 이상을 여천산단이 다루고 있으나 이에 대한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광양만권 대기와 수질이 심각한 상황임에도 총량규제 도입을 늦추고 있다. 특히 기업별 배출량 공개를 하지 않아 기업의 감소노력을 더디게 하고 있다. VOC의 경우 배출허용 기준조차 정하지 않는 등 유기화합 물질 관리에 구멍이 뚫린 상태다.
죽어서야 공해병을 호소할 수 있는 노동자들
여천산단 주변마을 주민과 여천산단 노동자들은 상시적으로 발암물질에 노출된 상태다. 노동자의 경우 매년 건강검진을 받지만 이상 증세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인과 관계 규명이 어려운 공해병의 특성과 폐쇄적인 기업문화가 노동자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산단 조성 30여 년 동안 화학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정밀조사는 한 번도 없었다. 다만 96년 '죽음의 땅' 소동이 벌어지면서 근로자 의료이용 실태조사가 단 한 번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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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바다까지 매립하며 확장부지를 조성해 외국기업 등을 유치할 계획이다. ⓒ 조호진 |
여천산단 1만여 명의 정규·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매년 실시되는 정기 보수기간과 일상적인 밸브 점검 등의 과정에서 VOC 등 고농도의 유해물질에 노출된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 작업환경측정에는 옥내작업장만 점검하도록 되어있어 대개 옥외작업장에서 근무하는 여천산단 노동자들의 안전한 작업환경은 무시되고 있다.
노동자 스스로의 건강 문제 제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특히 IMF 이후 구조조정 여파가 심한 상태에서 건강 문제를 제기하게 될 경우 신분상 불이익이 뻔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7일 L회사 벤젠 생산 공장에서 23년 동안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조남현(50) 씨에 대한 산재신청이 여천산단 조성 이후 처음 있었다. 이 같은 문제 제기는 8개월 남짓 투병하다 숨진 조 씨 대신 유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지난 97년 '여천공단 근로자 의료이용 실태조사'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했던 김양옥(67·조선대의대 겸직교수) 교수는 26일 "VOC 등 위해 물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노후화된 시설을 대대적으로 교체하거나 폐쇄시키는 길이 근본적인 해결방법이다"며 "근로자들에 대한 지속적이고 면밀한 관찰을 통해 피해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의 환경권 박탈한 정부의 관심은 조세확대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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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천산단 확장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환경,안전문제를 도외시한 확장은 환경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 조호진 |
주민과 환경단체들은 여천산단을 죽음의 땅이라고 부르지만 정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고 있다. 주민들은 환경재앙을 우려하며 여천산단 확장을 반대하고 있지만 정부는 조세확대와 외자유치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정부는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에도 기존의 700여만 평 부지에 더해 220만 평 확장공사를 밀어붙이고 있다. 외자유치한 독일의 바스프사 증설이 여수시민단체의 저항에 부딪혔지만 공사는 무난히 강행됐다.
여천산단 확장단지에는 LG화학, 호남석유화학, 금호석유화학, 대림석유화학, LG정유 등을 비롯해 한국바스프와 금호미쓰이 TDI공장, 노디아플리아마이드 TDI공장 등 외국기업이 들어설 계획이다. 여천산단은 머지 않아 세계최대의 포스겐을 생산하는 TDI공단이 되게 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환경용량을 초과한 여천산단에 공장을 더 증설할 경우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공해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화학공장을 증설하는 것은 재앙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광양만권 환경영향보고서에 의하면 확장 계획이 완료될 경우 96년과 비교해 2011년에는 아황산가스 97%, 질소산화물 173%, 분진 110%, 일산화탄소 183%, 탄화수소 92%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수환경운동연합 조환익(33) 사무국장은 29일 정부의 여천산단 확장에 대해 이렇게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 동안 여천산단 환경·안전사고는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무분별한 확장공사는 1만 명의 사망자와 60만 명의 부상자가 희생된 보팔 사고와 같은 대재앙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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