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공동묘지 결혼식

최소의 비용으로 치른 최고의 이벤트

등록 2001.11.30 09:54수정 2001.12.0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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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이 유난히 예쁜 그녀를 만난 건 기차여행을 좋아했던 나와 함께 기차에 동승하게 된 인연에서 시작했다. 차창밖이 유난히 아름다운 경춘선은 우리를 자연스레 친근한 분위기로 이끌었고 끼가 다분한 나의 레이다에 걸려들었던 그녀는 아직 수줍음이 많고 풋풋한 20세 소녀였다.

세대 차이를 뛰어넘는 나의 화술에 그녀는 입을 벌린 채 다물 줄 몰랐고 나는 그 틈을 놓칠 수 없었다. 우린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고 잦은 만남으로 자연히 연인 사이가 되어 멀리 여행도 갈 수가 있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하였는데 콧대 높은 그녀를 넘기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밤을 지샜지만 도대체 역사기행문을 기록할 수가 없었다. 수십 차례 시도 끝에 드디어 나를 받아들인 그녀를 위해 평생을 보디가드로 무료봉사한다는 맹세를 했다.

아직 이른 나이 때문에 결혼은 입밖에도 못냈고 기약만 해야 하니 불안하고 초초했다. 혹시나 전화벨이 울리면 "그 동안 즐거웠어요"하고 이별을 선언하지나 않을까 하고 내심 불안 속에 살아가길 수개월. 멀리 있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나는 용기를 내고 따뜻한 아침밥을 함께 먹자는 구닥다리 수법을 동원했다. 드디어 그녀의 승낙을 받고 조그만 단칸방에서 우리의 꿈을 키워 갔다.

우리는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해 아주 많은 시간들을 기다려야 했다. 형편이 어려워 화려한 결혼식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으며 내가 벌어들인 돈으로 조금씩 저축하여 동거 3년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결혼식이란 두 가지의 생각이 하나로 합쳐 아름다운 사회 인성을 만들어 가는데 한몫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격 차이란 있을 수 없다, 서로에게 좋은 말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지만 쓴 소리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서로에게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그러했다. 서로 다른 성격으로 잦은 충돌이 있었지만 서로 감싸줄 수 있는 마음이 서로를 위로해주었기에 7년이란 세대차를 넘어갈 수 있었다. 비록 경제적인 능력은 안되었지만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게 여자들의 속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화려할 수 있는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했다. 내 경제적 능력으로 화려한 결혼식은 기대할 수 없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보라는 아내의 말에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하기로 했다. 틀에 박힌 것에서 탈피하려니 많은 것이 떠올랐지만 많은 경비가 지출되어야 했다.

아내의 격려에 나는 우쭐했다. 아내는 학창시절 내내 우등상을 탄 똑똑한 천재였다. 하지만 나는 공부와 담을 쌓은 채 장난만 일삼던 학생이었는데 그런 머리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리 만무했다. 하지만 아내는 나의 톡톡 튀는 끼를 인정해주고 나에게 모든 것을 위임했다. 나는 장소를 물색하고 다녔다. 특별하고 돈도 안 들어야 하니 장소가 마땅히 있을 리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드디어 그 장소를 찾았다. 너무나 황홀경에 빠졌으며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결혼식 장면을 상상으로 그려내곤 웃음을 지었다. 성공적인 기획이었다. 이 수많은 관객이 나의 결혼식에 축하를 보내준다... 너무나 감격했고 그곳에는 유명인사가 무수히 많이 오고 또한 상주하고 있는 곳이 아닌가. 이름만 들어도 명당이라 꼽히는 이곳에 나는 벅찬 감격에 떨리는 가슴을 추스릴 수 없어 하늘을 향해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정말 우연한 기회였다. 그날도 일이 제대로 풀리질 않아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사건을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밀려서 있는 차량행렬을 원망해야 했고 급기야는 위험을 무릅쓰고 갓길 행진에 중앙선을 넘어 맞은 편 공동묘지로 들어서면서였다.

잘 다듬어진 잔디 위에 아름다운 조각상. 나름대로 멋을 낸 작품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를 표현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그만 무대. 자연의 멋을 그대로 옮겨놓은 자그마한 연못 아주 나즈막한 담장 너머로 빙 둘러선 동그란 봉우리까지 너무나 환상적이었다. 상호만 들어도 명성이 자자한 유명한 곳. 하지만 누구도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생각을 아내에게 전달하고 비용을 계산했다. 아내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가능하기나 하냐는 식으로 고개를 갸우뚱해보였다. 형식은 있을 수 없다. 전혀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아내에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그리곤 둘이 손벽을 치고 탄성을 질렀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고의 결혼식을 치를 수 있는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결혼식장은 남양주 화도읍 모란공원 내 조각공원무대에 설치하여 꽃길등 무대 장치를 했고 비누방울로 특수효과를 주었다. 사진은 비디오 야외촬영 등을 따로 섭외할 필요가 없이 한곳에서 이루어졌기에 시간과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식사는 야외뷔페를 초청하여 칵테일파티를 하였고 결혼식 내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바이올린 3중주 연주에 하객들이 흐뭇해하였다. 이날 초청된 아내 친구들의 부러운 눈초리, 질투섞인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들린다.

3시간에 걸쳐 치러진 결혼식은 공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좋은 볼거리가 제공되어 처음 공개된 폐백이 그간 보여지지 않았던 모습에 외국인 관광객들의 카메라에 담기기도 하였다. 그보다 더 감격스러운 것은 소리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는 수많은 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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