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리투아니아의 엄청난 여름

<발트3국 이야기>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1

등록 2001.12.18 16:33수정 2001.12.19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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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뉴스의 그 이끼 향내 나는 구시가지에 가 있으면, 가끔씩은 정말 화가 나고 울분이 치밀 때가 있다.

지나치게 예쁜 여성을 보면, 어쩌면 쟤는 저렇게 이뻐, 그리고 저 여자의 남자친구는 또 얼마나 대단한 놈일까 생각하며 갖게 되는, 그런 쓸데없는 울분과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정말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좀 다른 데 있다.

나름대로 충분한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가진 이 도시가, 서유럽보다 구석에 처박혀 있고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하지 않아 덜 알려져 있다는 이유로 잊혀지고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 정말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특별히 빌뉴스를 너무 사랑하거나 지나친 애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적당한 지정학적 장점과 다수가 인정한 매력을 가진 것들만이 사랑을 받는 이 세상의 암묵적인 규칙은 그대로 내게도 적용이 될 것이고, 그러면 남들과 항상 다른 관심과 행동반경 속에서 사는 나는, 그 규칙에 의해 철저하게 가치평가되어 소외될 것이 겁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한때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관심 밖의 발트3국을 우리의 관심 안으로 끌어모으는 일이라고 이 작은 눈을 부릅뜨고 결심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 내 행동반경에 끌어모아서 그 이끼 향기를 같이 맡고 있으면 이 뭣같은 울분이 좀 가라앉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나를 둘러싼 군중의 분위기를 전부 바꿀 능력은 부족하다. 그래도 적어도 그 흐름의 물꼬를 틀어 작은 물줄기 하나는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1999년 여름은 나의 그런 작은 결심이 실현되는 뜻 깊은, 그러나 영원히 잊지 못할 엄청난 일이 일어난 시간이었다.

나의 그런 결심을 최소한이라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내 대학동기 한 명이 일을 하고 있는 작은 기획사였다. 대학시절 평소 영어번역 같은 것으로 좀 도와주곤 했던 곳인데, 규모도 작고 직원도 적었지만, 국제행사와 외국 박람회, 전시회 등을 국내에서 추진하는 그래도 행동반경이 좀 큰 기획사였다.

잠시 방학을 빌어 한국에 들어간 사이, 그 기획사를 통하여 동유럽의 여러 문화행사를 기획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매혹을 느끼고 한국문화의 불모지인 발트3국에 무언가 한국의 것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 기획사의 동유럽담당이라는 직함을 '자발적으로' 떠안고 폴란드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일은, 내가 단지 다수의 규칙 어쩌구 하는 일에 대해 결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온몸 바쳐 추진하고 있다고 확신을 갖도록 하기에 충분한 작업이었다. 바쁜 학기 중 틈나는 대로, 아니면 틈이 나지 않으면 틈을 내서라도 빌뉴스와 리가에 다니면서 문화관계자들을 만나고, 사귀고, 내 어설픈 발트어 실력을 연마하면서 현지를 누비고 다니는 것이, 난방도 안 되는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고생스러운 상황에 비하면,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그 기획사라는 곳의 자금상황이 정말 안 좋아서 여행경비 한 푼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딱딱한 버스의 좌석이 정말 괴물같이 느껴진 적도 많지만, 빌뉴스에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칙칙한 신작로와, 리가의 이정표인 TV타워가 새벽별빛 속으로 어렴풋이 보이면 마냥 기분이 좋았다.

발트3국에는 크고 작은 축제들이 자주 열린다. 그 중에 발트3국의 수도를 번갈아가면서 개최되는 '발티카(Baltica)'라는 행사가 있는데, 전세계 민속예술을 총망라하여 선보이는 축제로, 발트3국이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개최해 내려오고 있는 유명한 국제민속축제이다.

자료와 '껀수'를 찾아 빌뉴스와 리가를 헤매다가, 리투아니아 문화부에서 알게 된 한 사람의 소개로 발티카 조직위원회와 친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1999년에는 마침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행사가 열리게 되어 있었다. 그 발티카 조직위원회의 위원장의 행사소개서를 들고 나는 서울로 찾아가 기획사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는 친구와 함께 리투아니아에 갈 수 있는 여러 민속단체들을 쑤시고 다니기 시작했다.

탈춤으로 유명한 단체와, 전국에서 내로라 하는 풍물패 등 여러 단체를 섭외하고 다녔으나, 리투아니아라는 나라와 발티카 행사의 비교적 낮은 지명도 때문에 사람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기가 십상이었다. 비행기표를 손에 쥐어주고 오라고 그래도 갈까말까 하는 판에 비행기표를 직접 사가지고 가야 한다니... 솔직히 그리 마음을 쉽게 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여러 번의 시도와 거절 끝에 나는 끝내, 지명도도 전국적이며 실력도 상당한 경지에 이른 한 풍물패와 만나게 되었다. 단체섭외 때문에 한국에 와 고향에 머물러 있으면서 혹시나 하고 자료를 놔두고 온 평택농악단에서(내 고향이 평택이란 이야기이다), 내가 폴란드로 돌아간 후 리투아니아 발티카 행사에 참여해보겠다는 의사를 표명해온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드디어 한국문화와 발트문화가 만나는 기회가 생기겠구나 하면서 마냥 기뻐하기만 했다. 게다가 내 고향 평택의 농악단이 리투아니아를 방문한다니(모르는 사람들은 할 수 없지만, 평택 농악단의 수준은 전국적인 수준이다)...

그런 연락을 받은 후 나는 일이 어떻게 추진이 되고 있는지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말 그 사람들이 리투아니아에 방문을 하기는 하는지 아니면 오지 못하는지 궁금하여 리투아니아 발티카 조직위원회에 전화하기도 몇 번, 그리고 소속기획사에 전화하여 문의하기도 몇 번...

그러는 사이 리투아니아와 평택농악단이 연락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는 기쁜 이야기를 듣게 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정작 추위에 떨며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오가며 자료를 모아 만남을 성사시킨 나와, 우리 기획사는 저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는 아주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은 평택농악단이 속해 있는 경기문화재단의 독자적인 작업으로 추진 중이며, 서진석이라는 존재는 발티카 행사에 처음부터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행사는 '이름을 모르는' 한 사업가의 권유로 경기문화재단이 처음부터 시작한 이벤트가 되어 진행되고 있었다.

제기랄, 뭐 특별히 얻고자 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춤추어놓고 주인이 돈 받는 서커스 곰돌이가 될 마음은 아니었는데... 게다가 내가 서울 사람인가 부산 사람인가, 같은 고장에서 나고 자란 평택 사람이고 경기도 사람인데...

그러나 그런 일에 울분을 느끼고 기분 상해 있기에는 내가 뿌린 씨앗의 싹이 너무 많이 자라 있었다. 다행히 리투아니아 발티카 조직위원회는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었고, 나는 리투아니아 문화부의 초청으로 발티카 99 행사의 공식초대손님으로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99년에 열린 발티카 행사에는 발트3국을 제외하고, 덴마크, 영국, 이탈리아, 알바니아, 그리스 등 리투아니아에서 버스로 나다닐 수 있는 유럽 국가들이 중심이 되어 참가했다.

물론 아프리카의 콩고에서 참가한 사람이 있었는데, 참가자는 정작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는 아프리카 학생이었으므로, 참가준비규모나 비용면에서 한국의 평택농악을 따라갈 단체가 없었다, 그 규모와 비용에 걸맞게 평택농악의 인기는 엄청 났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발트3국에 대한 홈페이지에 들러보세요.http://my.netian.com/~perkunas

덧붙이는 글 필자의 발트3국에 대한 홈페이지에 들러보세요.http://my.netian.com/~perku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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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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