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안문학>을 만드는 이유 ③

<고마운 사람들>

등록 2001.12.20 13:32수정 2001.12.2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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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내게는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고장에서 과거엔 흙빛문학을 했고, 현재는 태안문학을 하면서 내 가슴에 고마운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껴안고 사는 셈입니다.

책 만드는 일, 어느 면으로는 돈 만드는 일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습니다. 고작 2천부 이하를 발간하는 지방문학지에 단체나 업체의 광고를 한다는 것이 광고의 목적 면에서는 별로 실효가 없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그들은 기꺼이 우리에게 도움을 베풀었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고장의 정신문화 단체를 돕는 것을 뜻 있는 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내 쪽에서 고맙다는 말을 하자, "고장의 문학 단체를 작게나마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요."하고 답한 이도 있었지요.

실로 수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받으면서, 지금까지 손을 내밀었다가 거절을 당해 본 것은 딱 두 번뿐입니다. 흙빛문학 초창기 시절이었지요. 거절을 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의사였습니다. 서울 사람으로 태안에 와서 개업을 해 가지고 돈을 '긁었다'는 말까지 들은 부유(富裕)가 번들번들한 사람이었지요. 내가 그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니 그가 단박에 거절을 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원래부터 문학동인지라는 것은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들끼리 호주머니 털어서 만드는 것 아닙니까? 고장의 명예를 빛내는 스포츠 단체라면 도울 수 있어도, 문학 단체는 도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때는 무시무시한 5공 정권의 전성기 시절이었지요. 나는 그가 시대와 연관하여 지나치게 확대된 방어심리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고, 그때부터 그를 경멸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지요. 그에게 두번 다시 도움 부탁을 하지 않는 대신 동네방네 다니면서 나팔을 불어대었습니다. '무식한 의사놈'이라는 말을 내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어디서 그와 만나기라도 하면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은 그를 '원장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마구 불러대곤 했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나도 젊은 시절에는 오기와 불량기가 제법 있었던 듯싶습니다. 깡패 기질도 좀 있었던 듯싶고…. 그로부터 몇 년 후 병을 얻어 의사 노릇을 그만두고 태안을 떠나버린 그를 생각하면, 지금은 그에게 미안해지는 마음이 더욱 큽니다. 돈 5만원을 아끼려다가 나로부터 직·간접으로 봉변을 많이 당한 폭인 그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나의 그 과거사를 반성하곤 합니다.

쓸데없는 곁가지 얘기가 길었습니다만, 아무튼 내게는 섭섭함보다 고마움을 안겨 준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번의 <태안문학 제7집>에도 지역의 금융기관 한 곳과 열세 분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금액은 10만원과 30만원 사이인데, 이분들 중에는 지난 제6집에 이어 거듭 도와주신 분도 여러분이나 됩니다.

오늘까지 거의 700명이 되어가고 있는 태안문학 후원 회원님들 한 분 한 분이 내게는 더없이 고마운 분들입니다. 아버지(노인)께서 후원회원이 되시어 집으로 배달되어 온 책을 젊은 아들이 수취 거절로 반송을 해 버린 사례가 두 건이나 되는 등 이런저런 '사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후원회원 다수가 태안문학을 반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책이 나올 때마다 1만원의 후원회비를 부탁 드리고 있지만, 후원회원님들 중에는 일년에 두 번씩 책을 받을 때마다 꼭꼭 10만원씩을 보내 주시는 분들도 여러분이나 됩니다.

후원 회원님들의 거주지 분포는 태안 지역과 외지가 반반입니다. 외지에 계신 분들 중에서 절반 정도는 태안이 고향인 '출향인'들이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태안과 전혀 관계가 없는 분들입니다. 나는 태안과 전혀 관계가 없는 후원회원님들께는 참으로 더더욱 고맙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후원회원 확보와 확충에 기를 쓰고 매달리는 것은, 앞에서 얘기한 '기금' 조성과 '가독율' 확대가 일차 목적이지만, 또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방문학단체의 '사회화'입니다. 지방문학단체가 지역사회의 저변에 깊고 너르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1980년대 초, 흙빛문학 초창기 시절부터 하나의 신념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지방 문단이 지역사회와 유리되어 있는 형국이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지역사회 전반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지요.

일년 내내 책 한권 읽지 않는 사람들, 문학의 가치를 전혀 모르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오히려 포섭 대상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태안문학만이라도 읽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시나브로 책(또는 문학)의 가치를 알게 할 수만 있다면 지역에서의 문학의 사회화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고장의 문예지인 태안문학을 사랑하고, 태안문학을 고장의 긍지와 명예로 생각하게 되는 날을 꿈꾸어보자―그것이 나의 또 한가지 목표였던 것입니다. 사실은 그것이야말로 최종의 궁극적인 목적이겠지요.

아무튼 그 모든 노력들은 '현재진행형'입니다. 현재진행형의 그 계속성이 유지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역에서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목적의 성취란 쉽게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섣불리 구가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선은 목표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확인케 하는 것이며, 현재진행형의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추상적이면서도 엄연한 것, 늘 변함없이 저 멀리에서 가물거림으로써 더불어 생명운동을 가능케 하는 것―그 지향점의 존재로 말미암아 우리가 계속적으로 나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많은 보람들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합니다.

다음으로 내가 고마워하는 이들은 우리 태안문학회의 구성원들입니다. 나는 모든 회원들이 일단은 사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순수문학이 날로 위축되어 가고 있는 이 척박한 시대에 지역에서 바쁘게 살면서도 문학을 하겠다고 덤벼드는 그들이 우선은 대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개인마다 갖가지의 편차가 있고 성향도 다별하지만,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합니다. 감히 글을 쓰고자 함에 있어서는 신이 인간에게만 부여해 주신 감사지정과 측은지심과 수치심이 조화를 이룬 내면이 무엇보다 중요하고도 필요 불가결한 덕목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것과 연관하여 볼 때 아쉬움과 안타까움도 적지 않지만, 일단은 그들 모두를 뜨겁게 사랑하고자 합니다.

그들이 쓰는 모든 글들을 최대한 열심히 살펴 주고 있고, 위로와 격려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곤 합니다. 감히 등단 관문에 도전하여 작가니, 시인이니 하는 꼬리표를 달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적당히 갈피를 잡아주기도 합니다. 나처럼 십수 년의 낙방을 불사하고라도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는 신춘문예에 도전해 보도록 유도해 보고도 싶지만, 나이 드신 분들께도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이른바 '등단'이라는 것에 초연하신 분들의 모습은 그것대로 미덕일 수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등단 관문을 밟고 싶어하는 의지들을 다독거리기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숱한 문예지들 중에는 이른바 '등단장사'를 해서 잡지를 운영하는 부정적인 현상도 있음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런 풍토 속에서도 최선의 방법은 있는 법입니다. 그 최선의 첫째 조건은 '작품'―바로 그것이겠지요.

엄격하게 내 기준을 적용하여, 내가 모 잡지사의 심사위원 노릇까지 병행해서 지금까지 여섯 명의 회원을 등단시켰습니다. 시인 넷에 수필가 둘. 이들 중에서 2001년에 등단한 네 분과 다른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2명을 합해 여섯 분에게 12월 16일 태안문학 제7집 발간 자축 모임 자리에서 '등단기념패'를 주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해 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신춘문예나 거금의 현상공모 등에 당선하여 화려하게 등단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작품이 일정 수준에 도달해 있음은 확실하므로 그들이 택한 소박한 등단 방식을 함부로 폄하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선은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문학정신을 격려하며, 오늘을 계기로 더욱 분발 정진함으로써 더욱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유도해 주는 것이 선배로서 할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등단기념패를 주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등단이라는 것은 어떤 관문, 어떤 형태가 되었건 간에 문단이라는 이름의 거대 경기장의 출발점에 설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뿐입니다. 물론 등단 관문에 따라 출발선상의 좀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불리한 위치에 설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타트 라인에 섰다는 조건은 누구나 똑같습니다.

앞으로 여하히 저 드넓은 경기장을 잘 달리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저 광활한 마라톤 코스를 달려야 합니다. 그 마라톤 코스를 쓰러지지 않고 잘 달리느냐는 각자의 노력과 능력에 달렸습니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장대한 마라톤 코스를 계속적으로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각오로 문학을 해야 합니다. 등수를 욕심 내거나 의식하지는 마십시오. 등수와 관계없이 성실하게 달려가는 것이, 쉬엄쉬엄 가더라도 '완주'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참다운 문학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문학이라는 이름의 광활한 마라톤 코스의 출발선상에 서게 된 것입니다."

"한해에 신춘문예를 통해서만도 수십 명씩의 문인이 배출되고 있고, 수십 종의 문예지들을 통해 기백 명씩의 문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문단은 지금 가히 포화 상태입니다. 이런 실정이고 보니 문단의 일각에서는 '색맹들의 집단'이라는 측면도 노정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내가 <인물과사상>이라는 잡지 금년 12월호에 쓴 글에서도 언급한 사항입니다만, 일부 문인들이 노정하고 있는 '색맹들의 집단' 현상은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고장의 잃어버린 바다 천수만의 제방 길을 달리는 <현대건설>의 버스 안에서 '여름해변시인학교'에 참가했던 시인들이 광활한 들판을 보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주영 씨는 과연 영웅이야, 영웅.' '쓸모 없는 바다가 이리 옥토로 변할 줄을 누가 알았겠노.' 정주영 씨가 영웅이라는 것은 맞는 말일지 몰라도, '쓸모 없는 바다'라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이죠. 황금어장 천수만에서 조상 대대로 생업을 이어왔던 주변 44개 리 어민들과 안면도 해태양식장 어민들의 한(恨)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알고 있지 못한 탓이죠.

나는 일부 문인들의 그런 무지를 '색맹'으로 파악한 거지요. 우리가 적어도 문인이라면 그런 색맹을 탈피해야 합니다. 사물을 포괄적으로 보며 바르게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요즘 치열하게 논의되고 있는 언론개혁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언론 개혁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파악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통일논의에 대한 관심도 치열하게 가져야 합니다. 21세기 초엽을 사는 우리 한국 문인들에게 있어서는 사회 개혁 문제를 통찰한 기반 위에서의 통일문제와 환경문제가 가장 심각하고 치열한 최대의 명제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깨어 있는 명확하고도 치열한 작가정신을 기대하겠습니다.

여섯 명의 등단 회원들은 고작 5만원 짜리 등단기념패를 받으면서도 기쁨과 고마움이 만면에 가득하였습니다. 문인으로서의 새로운 다짐과 각오 같은 것도 그들의 얼굴에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개당 5만원 짜리 기념패라고 하더라도 여섯 개면 30만원이었습니다. 그 돈을 우리 태안문학회의 재무간사 통장에서 뺄 수는 없었습니다. 통장이 비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런 일에 후원회비를 축낼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내 돈으로 해결을 했지요. 엄밀히 말하자면 내 돈도 아니고, 마누라 월급을 축낸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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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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