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신도들의 '성탄 축하'를 접하며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1.12.26 11:43수정 2001.12.2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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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후에 잠시 안면도엘 다녀왔습니다. 건축업을 하는 대자(代子) 한 사람이 홍보용 캘린더를 만들었는데, 안면도 성당 신자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싶다고 해서(혼자 가서 사무장도 없는 성당의 신부님께 달력을 맡기기가 죄송스럽다고 내게 동행을 부탁해서) 짬을 내어 모처럼 만에 윤종관 신부님도 뵐 겸 가족과 함께 안면도 성당에 갔다 온 거지요. 덕분에 윤 신부님께 성탄 인사를 잘 드린 폭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윤 신부님은 사제관 주방에서 물기 묻은 손으로 나오셨습니다. 안면읍에 소재하는 불교 사찰들의 스님들이 성탄절 인사차 들렀다가 가셨다고 하시더군요. 스님들께 차를 대접하고, 스님들이 돌아가신 후에 막 찻잔 설거지를 하셨다면서….

윤 신부님의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절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안면도의 종교 단체들 중에서 가장 막둥이인(성직자가 주재하는 교회로서는…) 안면 성당에 스님들이 여러 분이나 찾아오셔서 예수 성탄절 축하 인사를 하고 가셨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맙게 느껴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 태안 성당의 풍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태안 성당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성당 정문에 불자들의 예수 성탄 축하 현수막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지난해는 태안읍 동문리에 소재하는 공덕사의 신도회에서 만든 '오늘 아기예수 탄생하셨네'라는 현수막이 정문에 걸렸었는데, 올해는 상옥리에 소재하는 흥주사 신도회에서 보내준 똑같은 축하글의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태안읍 관내 여러 사찰의 스님들과 신도회장님들이 성탄일 전날 직접 성당을 찾아오셔서 '성금'을 놓고 가셨습니다. 물론 그 성금은 태안 천주교회에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불우한 분들을 위해 주시는 돈이지요.

천주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24일 밤의 '예수성탄 전야미사' 때 '구유 예절'이라는 것을 하면서 마구간 앞에 놓여진 헌금함에 모든 신자들이 '예물'을 봉헌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불우한 이웃들을 돕기 위한 자선 헌금이지요. 그것을 아시는 스님들과 불자님들이 그 자선 헌금에 동참하는 뜻으로 성금을 놓고 가시는 거지요.

그런데 올해는 우리 태안 성당에 대한 불자님들의 예수 성탄 축하 인사에 좀더 특별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공덕사의 신도회장님께서 24일 밤의 '성야미사'에 처음부터 끝까지 신자석에 앉아서 참관을 하신 일입니다. 영성체 후 공지사항 발표 시간에 신부님이 그 사실을 말하고, 공덕사 신도회장님을 잠깐 일어나시게 한 다음 모든 신자들로 하여금 박수로 답례를 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신자들이 힘껏 손뼉을 쳤습니다. 나도 성가대석에서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보내면서 참으로 흐뭇한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천주교의 '장엄미사'를 참관하시는 공덕사의 신도회장님도 고맙고, 지난봄의 석탄일에 여러 사찰들에 축하 인사를 하신 우리 성당의 신부님과 사목협의회장님도 고맙고, 한 마음으로 박수를 치는 모든 신자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한량없었습니다.

불교 사찰들과 그리스도교회들이 이처럼 서로 석가탄신일과 예수성탄일을 축하하고 방문 인사를 교환하는 것은 사회공동선의 한가지 참다운 모습임을 나는 확신합니다. 나는 여기에서도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아 더욱 좋습니다.

나는 요즘도 자주 저녁 무렵이면 백화산을 오릅니다. 매번 태을암 앞을 지나곤 합니다. 태을암의 맛좋은 물을 마시려면 대웅전 앞을 지나야 하는데, 지나가고 지나올 때마다 꼭꼭 대웅전을 향해 모자를 벗고 정중히 허리굽혀 절을 올리곤 합니다. 때로는 묵주기도를 하는 중이어서 손에 묵주를 쥔 채로 부처님께 절을 합니다. 나는 내 그런 행동들을 하느님께서 예쁘게 보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것 역시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이라고 확신하는 거지요.

부처님 앞에서 예의를 지키는 나의 그런 행동은 벌써 20년 이상 되었지 싶습니다. 옛날에 한 번은 한 교우님께서 나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나를 비난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요. 나는 그 교우에게 말했습니다.

"천주교 신자인 내가 절에 갔을 때 부처님께 절을 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언짢게 보실 만큼 하느님은 우리 인간들처럼 옹졸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이면서도 내가 절에 갔을 때 부처님께 예의를 다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신 지혜와 착한 마음으로부터 말미암은 거지요. 다시 말해 그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사랑'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랍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려는 작은 노력의 하나이기도 하구요."

나로부터 설명을 들은 그 교우님은 비로소 이해를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 뒤로는 일체 나를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불교와 천주교의 일부에서 석탄일과 성탄절을 지내며 서로 축하를 나누는 이 의미로운 인사 교환들이 불교 전체와 그리스도교 전체로 점차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불교 사찰들과 개신교회들 사이에서도 석탄일과 성탄절의 그런 축하 인사 교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종교간의 갈등이 우리나라에서부터 잘 해소되고 멋지게 조화를 이루게 되기를 바랍니다. 타종교에 대한 인정, 선의에 바탕한 종교간의 대화, 그리고 다양한 종교의 조화는 인간의 값진 지혜로부터 발현하는 최선의 덕목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또한 종교간의 화목과 조화는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참으로 큰 요체임을 확신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종교간의 화평과 조화가 잘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발원하고 신장되는 국민적 역량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계층간의 갈등과 지역 갈등도 잘 극복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것은 내가 절실히 가슴에 품고 싶은 큰 희망의 실체입니다. 나는 이 희망의 실체를 더욱 뜨겁게 힘껏 가슴에 보듬으며 밝아오는 새해를 맞고 싶습니다. 나부터 계속 그렇게 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jiyoha@netian.com 
http://my.netian.com/~jiyo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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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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