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선 기차 놀이방의 이해할 수 없는 주의문

등록 2001.12.27 15:15수정 2001.12.28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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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놀이방이 딸린 기차를 이용한다. 며칠 전 경부선 상행선을 이용하던 중의 일이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좌석은 비워둔 채 기차 놀이방에서 아이가 노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곳에 마련된 (밑에는 신발장 위는 의자인)미니 툇마루 같은 곳에 앉아서 가게된다.

그런데 좌석이 없는 사람들이 수시로 그곳을 눈독 들인다. 그들은 신발을 벗어야 하는 곳임에도 신을 신은 채로 와서 앉아 있다가 역무원에게 한소리를 들으면 일어나곤 한다. 역무원은 그런 일이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니 매번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지겨울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른(보호자)은 들어가지 말고 신은 벗고' 등 주의사항을 크게 써붙여 놓았는데, 자리가 '먼저' 눈에 띄는 사람들에게는 그 글씨가 잘 안보이나 보다. 한편 난 그 괄호 속의 '(보호자)'도 들어 갈 수 없다는 말 때문에 나는 놀이방 밖으로 나와야 했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3살) 엄마가 옆에서 봐줘야 된다며 양해를 구했지만 그 역무원(차장)은 괄호 속의 '(보호자)'라는 글씨를 가리키며 보호자도 안된다고 하였다. 그때 내 옆에는 왼팔을 깁스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할아버지의 팔을 보던 차장은 '할아버지도...'하다가 묵인해 주었다.

나는 머뭇거리다 일어나서 놀이방 밖 복도에 서 있었다. 그러자 아이는 잘 타던 미끄럼틀을 타지 않은 채 '엄마, 여기, 여기있어...'하며 손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아직 어린애이기 때문에 엄마가 밖에 있으니까 자기를 두고 어디라도 가버릴까봐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러던 차에 '뻔치' 좋은 아저씨 한 분이 또 신문을 들고 신을 신은 채 놀이방으로 들어가 신문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불편한 할아버지와 신문보는 아저씨가 미끄럼틀 계단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고 있으니 아이는 '엄마, 엄마'만 또 불러댔다. 엄마 여기 있으니까 걱정 말고 놀라고 해도 내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래서 결국 아이도 놀이방 밖으로 나왔다.

기차 놀이방은 공간이 너무 좁기 때문에 의자라고 하지만 너무 비좁아서 부모들이 앉을 경우, 아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수시로 다리를 이쪽 저쪽으로 오므려야 한다. 그리고 손으로는 머리가 미끄럼틀 난간에 부딪히지 않도록 보호대 역할을 해주면서 앉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닥과 벽면을 제외하고는 스펀지 처리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싸우기라도 할 때는 위험하므로, 중재를 하기 위해서라도 보호자는 반드시 안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4세 미만은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 불안을 느끼는 나이므로 역시 함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놀이방안에 서있든 앉아있든 같이 있기에 어린 아기들은 여정의 지루함을 잊고 마음놓고 놀 수가 있는 것이다.

철도청은 놀이 방 이용 주의문 괄호 속의 '(보호자)는' 입장 할 수 없다는 말의 타당성을 다시 한번 살펴주길 바란다. 주의문으로 안되면 경부선의 경우 놀이방 딸린 차라고 해봐야 하루에 세 대밖에 안되니 유치하지만 안내 방송을 할 때 아이와 관계없는 일반인의 입장 불가를 명확히 알려주길 바란다.

내가 가급적 놀이방이 딸린 기차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다른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기차에 놀이방이 생겼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것이 없을 때도 잘 견뎠으면서 두어 평도 안 되는 '아기들 공간'을 어른들이 왜 그리 눈독을 들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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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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