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학사의 교육철학과 아름다운 꿈

퇴임 후 시골에서 무보수 목회자로 일하겠습니다

등록 2001.12.27 22:18수정 2001.12.2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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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저녁에 두 학교 선생님 여섯 명과 장학사 한 명이 한 조가 되어서 청소년 유해업소 출입 단속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각자 장학사가 나누어준 전단지를 한 뭉치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그것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또한 거리에 있는 노래방, 게임방 등을 들어가 계몽 운동을 하였습니다.

예상외로 청소년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말을 잘 듣고 바로 집으로 갔습니다. 저녁 바람이 차가워서 선생님들을 이끄는 장학사의 뜻에 따라 가까운 곳에 있는 찻집에 들어가서 추위를 녹였습니다.

저녁때에 처음으로 만나 함께 식사할 때부터 그 장학사는 자신의 교육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올해 49세인데 교사로 계속 지내다가 4년 전에 장학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장학사가 되기 전의 교육 활동에 대하여 모인 교사들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흥미진진했습니다.

얼마나 재미가 있고 감동을 주었는지 일찍 가라고 그가 배려한 홍일점 선생님도 가지 않고 끝까지 다 들었을 정도입니다. 나도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잘 들었습니다.

그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 담당 과목인 사회 수업을 할 때에 늘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을 염두에 두고 했다고 합니다. 지명을 외울 때에도 그냥 기계적으로 외는 것이 아니고, 가치와 관계 있는 낱말을 연상하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할 때에도 꼭 그런 방법으로 했습니다.

그가 맡은 반은 다른 반보다도 성적이 높았고, 생활지도 면에서도 다른 반보다 훨씬 나았다고 합니다. 그가 또 치중한 것은 끊임없는 상담입니다. 성적 상담은 물론이고, 이성 교제라든지 집안환경이라든지 하는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꼼꼼히 챙겨서 상담에 활용했다고 합니다.

그는 대입 진학을 많이 맡았는데 다른 학교, 학급보다 진학률이 월등히 높았다고 합니다. 본고사가 있었을 당시에는 해당대학의 출제교수들을 파악하여 그들의 석사, 박사 논문 제목을 안 다음 아이들에게 그와 관련된 문제들 위주로 지도를 하여 좋은 효과를 봤다고 합니다.

3학년 아이 담임이 되면 1학년과 2학년 때에 본 모든 시험을 통계내서 3학년초에 그 아이가 지원 가능한 대학을 정해놓고 상담을 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학기초에 그렇게 정확한 자료를 보고 더욱 노력을 하여 더 나은 대학에 진학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당연히 다른 학교, 반보다 성적이 좋게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출발이 빨랐기 때문입니다.

차 한 잔을 마시고 난 뒤에 그는 분위기를 바꾸어서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일전에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 '테레사 수녀, 다미안 신부'를 거론하며 말하기에 천주교 신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개신교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천주교 신부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개신교 신자가 그런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장인이 교회의 장로를 맡고 있는데 사위인 그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신부가 되었어야 할 몸이라고요.

그 이유는 목사는 결혼을 하여 처자식을 두고 생활하느라고 전적으로 목회자의 활동을 못하는 반면에 신부는 독신으로 지내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교우들을 위해서 바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선생님들에게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다음에 시골로 내려가서 무보수로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직장에서 그만둘 때에 퇴직금을 받을 테니까 그것으로 여생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받지 않고 순수한 봉사 정신으로 목사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그의 꿈이 나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장로직을 수행하며 학교 교감으로 교직을 마감한 장인을 자신의 이상적인 교육자로 여기고 생활했다고 말했습니다. 암으로 이 세상을 떠난 장인은 교육을 맡으면서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이 시대의 참다운 교사였다고 했습니다.

여러 교육관련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장인은 햇볕에 검게 탄 시골아이들의 얼굴을 환하게 하기 위해 직접 민간요법으로 약을 만들어 효과를 봤다고 합니다. 또한 가난한 시골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자신의 돈으로 구입하거나 친구나 일가친척들에게 부탁하여 구하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모은 물건들을 아이들 손에 쥐어주며 어린아이같이 좋아했다고 합니다.

장인이 걸어간 교육자의 길이, 교회 장로로서 교우들에게 살아있는 성인으로 추앙 받았던 참 신앙인의 길이 그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가도록 이끌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금도 그 바쁜 업무 속에서도 저술 활동에 열중합니다. 모두 열 권으로 펴낼 예정이라는데 그 동안의 교육 활동을 집대성한 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요즈음 그가 맡고 있는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것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각 일선학교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전부 교육용 시디(CD)로 제작하고 있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주로 진학만 맡아왔는데 시내로 옮기면서 실업계 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실업계가 처음이지만 그 동안의 축적된 경험을 되살려 실업계에서 진학지도를 성공적으로 했다고 합니다. 많은 동료 선생님들을 모아다가 교육을 시키기도 했답니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여섯 명의 선생님들은 장학사의 경험담을 귀담아들었습니다. 그도 우리들에게 말했습니다. 교육을 조금 먼저 맡은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주는 이야기이니 꼭 교육현장에서 취사선택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들에게 한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일단 교육계로 나선 이상 성공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담당 교과 과목에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1인자가 되어야 하고, 수업 이외에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주특기를 한 가지 꼭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컴퓨터 활용 능력이 될 수도 있고, 외국어 능력, 음악 악기 다루는 것, 미술, 글쓰기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청소년 유해환경업소 단속 및 계몽을 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지만 그것보다도 잠시 시간을 내 차 한 잔 마시면서 장학사와 나눈 대화가 더 유익했습니다. 더 머리에 남았습니다. 아이들을 향한 끝없는 그의 열정과 사랑을 배워야겠다고 모두들 생각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여섯 명의 선생님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옆에 앉은 여선생님도 감동을 너무나 많이 받았다고, 그래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맡은 일에 열과 성을 다한 그의 교육 열정에 감탄했습니다. 특히 여생에 관한 꿈이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의 길을 조금이라도 본받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여섯 명의 선생님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옆에 앉은 여선생님도 감동을 너무나 많이 받았다고, 그래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맡은 일에 열과 성을 다한 그의 교육 열정에 감탄했습니다. 특히 여생에 관한 꿈이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의 길을 조금이라도 본받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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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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