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의 유리판' 위에 공존하는 것들

팬터마임 형식의 만화영화 'Valance', 한국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등록 2001.12.28 10:10수정 2001.12.2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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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이후 처음으로 맞이한 성탄절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선물을 주고받는 연휴, 터키를 굽고 포도주 잔을 기울이며 그 동안 밀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설계하는 뜻깊은 명절입니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무덤도 없는 자식에게 꽃다발을 바치는 허리 굽은 노모, 테러범들의 위협에 펜타곤을 들이받고 많은 비난을 받았던 남편의 죽음 앞에서 "왜, 당신이 그렇게 비명에 가야 합니까? 미국이 왜 이렇게 끔찍한 테러를 당해야 합니까?"라고 다시금 눈물을 흘리는 가톨릭 신자의 모습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했었습니다. 테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슬픔을 생각하지 못했던 성탄절을 반성해봅니다.

미국 쉰 하나의 한 개 주만도 못한 아프가니스탄에 테러의 보복이라는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은 미국의 더러운 전쟁. 그 전쟁 내내 융단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슬픔 또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 성당 식구들의 기쁜 성탄을 위해 고백성사와 성탄절 준비만 했기에 더욱 더 죄스러운 마음일 뿐입니다.

9.11 테러에 대한 심포지엄 참석차 뉴욕에 다녀왔습니다. 9.11 테러의 역사적 배경과 원인, 이슬람과 근본주의의 이해, 9.11 테러와 반이민 정서,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 본 9.11 테러, 신학적 측면에서 본 9.11 테러와 신앙적 식별이란 다양한 주제로 심포지엄이 있었습니다.

심포지엄을 마치고 퀸즈 한인성당에서 테러 종식과 세계평화를 위한 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 이슬람교의 제종교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박창득 몬시뇰 신부님이 준비하신 'Valance'라는 20분짜리 팬터마임 형식의 만화 영화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정사각 유리판 위에 4명의 사람이 모서리에 서 있고 한 가운데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 상자가 무엇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한 사람이 그 상자에 다가가면 다른 세 사람은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에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 상자에 다가가기 위해 떠난 사람의 자리는 다른 사람이 꼭 채워야만 무게 중심이 잡혔습니다. 사각의 모서리에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그 상자를 닦기도 하고 두드려 보기도 하고 무언가를 돌리기도 하며 하나씩 그 상자의 비밀을 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소리를 내는 상자였습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그 상자에 다가가는 순간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상자가 떨어질 위기 상황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한 가운데 놓인 상자를 네 사람의 공동협력으로 비밀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사각에 서 있는 네 사람과 상자는 공동운명체였던 것이지요.

어느 세계나 그런 것일까요? 혼자 독차지하려는 탐욕, 한 사람이 상자를 부둥켜안자 갑자기 무게 중심이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늘에 떠 있는 사각의 유리판에서 한 사람이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떨어진 사람을 애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세 사람과 상자가 공존을 해야 하는데 네 사람이 공존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한 사람이 그 상자를 독차지하기 위해 따라다녔고 나머지 두 사람은 이리저리 더 분주하게 옮겨 다니며 무게 중심을 잡았습니다. 무게 중심만 잡고 있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그 상자에 다가서자 모두가 떨어질 극적인 위기 상황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가까스로 위기상황을 해결하자 상자를 독차지하려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결국 상자를 독차지하려는 것을 저지하려던 사람은 유리판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상자는 조그마한 떨림에도 쉽게 움직였고 유리판 위에는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한 사람은 공존하기 위해 이리저리 빠르게 옮겨 다니고, 한 사람은 오로지 그 상자를 독차지하려는, 극과 극의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그 상자를 독차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순간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해 나머지 한 사람도 떨어지고 말았는데 다행히도 사각의 유리판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은 "저 사람을 어떻게 사각의 유리판 위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문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기도 전에 상자를 독차지하려는 사람은 한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온 힘으로 매달린 두 손을 발로 걷어차서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추락하게 되자 갑자기 무게중심이 흔들려 상자와 마지막 사람 모두가 떨어질 위기에서 가까스로 무게 중심을 잡게 되었습니다. 탐욕이 가득한 사람은 그 상자 반대편 모서리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그 상자도 그 사람도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북미주 한인사회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을 보면서 나는 '사각의 모서리에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 상자는 또한 무엇일까? 그 상자는 자연과 생명, 정의와 공평, 사랑과 평화의 가치일까? 그 사각의 유리판은 신부, 목사, 스님, 교무와 세상 사람들이라는 운명공동체가 아닐까? 입법, 사법, 행정과 언론, 그리고 민중이라는 신비로운 상자는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

미국, 강대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과 세계평화라는 상자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미국정부와 군수산업체, 다국적기업과 제3세계, 착취라는 탐욕의 상자일 수도 있습니다. 핵무기, 생화학무기, 전투기, 폭탄과 생명이라는 상자, 혹은 개발과 경제성장, 황금만능주의와 패권주의, 지구라는 생명체의 운명공동체는 아닐까요?

부자, 가난한 사람, 사장, 노동자, 협력과 나눔이라는 신비로운 상자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사제회의(개신교연합회), 신부(목사), 사목회(장로회의), 언론과 신자라는 상자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교구청, 이 신부와 저 신부와 그 신부, 주변의 여러 신부, 언론, 그리고 신자라는 상자일지도 모릅니다. 더 근본적인 교만과 독선, 대화의 단절과 적대, 미움과 시기, 이기와 탐욕, 용서와 사랑이라는 신비로운 상자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변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솔직히 우리 교회의 모습, 한국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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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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