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충청> 제9호를 만들고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1.12.28 12:45수정 2001.12.2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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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충청>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소설전문 동인지가 있습니다. 충청남도 땅에 살고 있는 소설 작가들로 이루어진 '충남소설가협회'에서 일년에 한 번씩 만들어 내고 있는 책이지요.

충남소설가협회가 결성된 때는 1993년 3월. 그해 여름에 창간호를 발간한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작품집을 발간해서 올해 제9호를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번 제9호 작품집의 표제는 「조작 씨의 안경」. 원로 작가 김제영 선생님의 연작소설 제목을 표제로 삼은 거지요.

우선 <소설충청>의 제1호부터의 표제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1993년 제1호 거둘 수 없는 잔
1994년 제2호 홍수 속의 고인 물
1995년 제3호 흉상이 빛나는 도시
1996년 제4호 깨어 있는 사람
1997년 제5호 지렁풀 연가
1998년 제6호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고찰
1999년 제7호 무너지는 시간의 물결
2000년 제8호 꿈의 성장(成長)
2001년 제9호 조작 씨의 안경

창간호와 제2호는 300쪽이 훨씬 넘을 정도로, 꽤 의욕적으로 책을 만들었으나, 매번 고작 1천 부를 찍는데도 자비 출판 부담이 너무 커서 계속 250쪽 정도를 유지해 왔고, 이번 9호는 7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275쪽으로 만들었습니다. 3편의 연작소설과 2편의 중편, 2편의 단편을 실었고, '권말부록'으로 지요하의 에세이 '일제 시대를 비켜 태어난 것에 대한 이문열의 생각을 보고'를 실었지요.

매년 발간 비용 문제 때문에 내가 고심을 많이 합니다. 초창기 때는 독지가의 도움도 두어 번 받았고, 한때는 '태안화력본부'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외부 지원이 '충남도문예진흥기금'으로부터 일년에 150만 원의 지원금을 받는 것이 전부지요. 참여 작가들로부터 받는 연 12만 원의 회비 (20만 원을 보내시는 분들도 있지만) 가지고는 많이 모자를 수밖에 없는데, 대개는 부족 금액을 내 사비로 해결하곤 하지요.

충남소설가협회 창립 때부터 회장을 맡아 책 만드는 수고와 책의 배포 작업까지 도맡아 고생하는 처지에서 발간비의 부족 금액까지 해결을 해야 할 때는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알다가도 모를 심정이 되기도 합니다. 작품집에 참여하지 않은 회원 작가님들이 회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인 회비만이라도 내주신다면 별 문제가 없겠는데, 작품집에 참여하지 않은 분들께 회비 납부를 강요할 수도 없고….

해마다 한 번씩 해 온 일이지만, 어제는 책을 배포하는 일이 좀 힘들더군요. <소설충청> 9호600권을 내 승합차에 싣고 충청남도의 여러 고장을 돌았습니다. 아침에 태안을 출발해서 부여, 공주, 연기, 천안 등지를 돌며 작품집에 참여한 회원 작가님들에게 100권 씩의 책을 나누어 드리고 저녁에 돌아왔습니다.

전에는 뜻 있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별로 힘든 줄을 몰랐는데, 이제는 나이 탓인가, 홀로 먼길을 하루종일 돌아다닐 일이 외롭고 슬프게도 느껴져서 아내에게 동행을 부탁했지요. 아내는 내 삶의 방식을 많이 이해해 주기는 하지만, 온전히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회원 작가들을 적당한 장소에 모이게 하든지, 책을 포장해서 택배로 부치든지 하지 이게 뭔 고생이냐는 말도 해 쌓고….

나는 회원 작가들의 작품을 받아서 알뜰하게 책을 만든 다음 그들이 사는 고장을 돌며 책을 나누어주는 일을 내 나름으로는 의미롭게 생각합니다. 그들 모두에게 내 '정'을 나누어주는 일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작품 수준의 높낮이를 떠나서 소설을 쓰고 사랑하며 사는 그들을 경애하는 마음이 내겐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떻게든 위안과 격려를 드리고 자극을 안겨 주고 싶은 마음도….

"충남도내 각 지역에서 고장을 지키며 사는 소설 작가들의 창작 의욕과 연대 의식을 고취하고, 소설을 통한 향토애를 구현하며, 지방 산문 문학의 활성화를 이룩함으로써 충청 지역 소설 작가들의 문학적 업적과 자존심을 구현한다"는 충남소설가협회의 '창립 목적'이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나로서는 그것의 실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은 거지요.

내년이면 벌써 10년이 됩니다. 거기에서도 세월 빠름을 절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년에 <소설충청> 제10호를 내고 이제 그만 회장 짐을 벗어야 할 텐데, 누구에게 그 짐을 떠넘겨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존재 가치는 작고 미약하더라도 거의 10년 동안 명을 이어왔으니 '충남소설가협회'의 명줄은 계속 이어져야 할 텐데….

그 명줄에 대한 소망을 아로새기고,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하면서, <소설충청> 9호 「조작 씨의 안경」머릿글 일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화두를 위하여

(전략, 중략)

'시골살이의 프리미엄'이라는 말에는 아릿하면서도 음습한 기운이 묻어 있는 듯싶다. 그 말에 자족할 수는 없다. 자족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비애를 위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시골에서 사는 우리는(특히 농민들은) 거의 만성화된 두 가지의 위기의식을 걸머지고 산다. 한가지는 벼랑 끝에 몰린 농업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파괴와 상실의 길로 내몰려 가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우리는 시골살이의 프리미엄들을 계속적으로 잃어가고 있다. 수많은 강과 하천과 계곡과 산야를 잃었고, 천수만을 빼앗겼고, 급기야는 새만금까지 잃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청양 칠갑산 계곡에서, 경기도 한탄강에서, 전라남도 탐진강에서, 부산 다대포에서 자연 파괴와 환경 상실의 비명은 계속되고 있다. 그 비명들이 언제쯤 다시 충남 서북부 가로림만을 뒤덮게 될지 알 수 없다. <수자원개발공사>와 <농업진흥공사>를 해체해야 한다는 절규가 들릴 정도로, 두 국가기관의 사업들은 너무도 방만하고 폭압적이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들의 실적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부터 연유하는 '개발귀신'들의 발호도 무제한적이고 무분별하다.

우리는 정신을 더욱 바짝 차려야 한다. 오늘의 한국 문인들에게는 통일 논의와 함께 환경에 대한 의식이 무엇보다도 크고 중요한 절대적 명제다. 민족 통일과 환경에 대한 투철한 문제의식을 지니지 않고서는 작가로서 진정한 시대 정신을 열어갈 수 없다.

시골살이의 프리미엄―그것을 지켜 내고자 하는 노력도 우리 '충소협' 작가들의 분명한 좌표가 되어야 한다.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존재 증명은 더욱 증폭될 수 있을 것이다.

시골살이의 프리미엄들을 지켜 내고자 하는 노력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통일 논의에도 이바지하게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다양하게 아로새기려는 작업이 참으로 필요함도 우리는 잘 인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그것을 다시 한번 뜨겁게 확인한다.

이번 작품집에서 기쁘게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의 하나로, 가장 연로하신 김제영 선생님의 냉철한 현실 인식을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것 같다. 첨예한 현실 감각에 기반하여 오늘의 '언론개혁' 문제와 '민족통일'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을 그는 발표하고 있다. 작가로서 당대의 진정한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찾고 또 그 길을 힘차게 열어간다는 것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작가적 의무일 것이다.

김제영 선생님의 작품이 중편 분재이긴 하되, 우리 시대의 최대의 명제이자 화두가 되어야 할 '언론개혁', 더 나아가 '통일 논의'에 접근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여 이번 <소설충청> 9호의 표제를 김제영 선생님의 작품 제목인 「조작(趙作)씨의 안경」으로 하였음을 밝히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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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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