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 없어 공립유치원 못짓다니"

고흥군 공립유치원 설립 논란 가열

등록 2001.12.28 19:22수정 2002.01.0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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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에서 국회의원 여동생의 압력 행사로 공립유치원 설립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크게 일고 있다.

참여자치 고흥군민연대 등 고흥지역 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고흥읍 공립유치원 설립추진위원회'는 1인 시위, 가두서명운동, 사이버 시위는 물론 무기한 단식농성까지 해가며 대대적인 공립유치원 설립운동을 펼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전남 군청 소재지 중 유일하게 고흥읍만 공립유치원이 설립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사립유아시설을 운영하는 유력 정치인의 여동생이 설립을 반대하고 압력을 가해 지역 교육기관이 설립신청을 보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의원 여동생 P씨는 "오빠를 음해하기 위해 꾸민 말이다. 다른 유치원(사설)도 반대하고 있는데 나만 문제 삼고 있다"며 정치적 피해를 주장하고 있다.

P의원은 28일 공립유치원 설립문제에 대해 찬성 입장을 밝힌 가운데 P의원이 이 문제에 직접 부당한 개입을 한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P의원은 "동생의 문제로 정치적 피해를 입어선 안 된다"며 "교육청에 확인한 결과 학교시설 부족이 공립유치원을 못 짓는 가장 큰 이유이지 동생의 반대 때문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공립은 월 1만원 사립은 월 6만5천원... "학부모 대다수 공립유치원 희망"

고흥군 16개 읍·면 23개 초등학교에는 22개의 병설유치원이 있다. 그러나 유아수가 가장 많은 읍 소재지인 고흥읍내만 유일하게 병설유치원이 없는 상태다.

고흥읍에서 병설유치원이 사라진 것은 지난 95년과 97년이다. 고흥 남교와 서교가 동초등학교로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초등학교는 흡수되고 병설유치원은 문을 닫았다.

김상문 전남도교육청 장학관(60)은 27일 "당시 고흥 읍내 3개 초등학교가 통폐합되면서 군교육청 지역운영위원회가 사설유치원의 피해를 주장하며 병설유치원 설립을 반대해 못지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강복현(38·초교 교사) 공립유치원 설립추진위 간사는 28일 "학부모들이 매년 3월 총회가 열릴 때마다 병설유치원 설립을 요구하면서도 유력 정치인 집안의 압력 때문에 설립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체념해 왔다"는 주장을 폈다.

강 씨는 또 "그 장본인이 동초교 근처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현직 국회의원의 여동생이라는 것을 이번 공립유치원 설립신청이 무산되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며 "그분이 주도적으로 설립을 반대한 것은 사실"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현재 유아시설을 이용할 고흥읍내 아이들(4∼6세)은 642명으로 사립 유아시설 정원 950명에 크게 미달된 상태다. 따라서 110명 규모의 공립 병설유치원이 설립될 경우 사립유아시설의 타격은 뻔히 예상된다.

국회의원 여동생이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H어린이집의 경우 210명 정원에 135명이 다니고 있어 정원에 크게 미달된 상태다. 특히 동초교 근처에 있어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이 주위의 시각이다.

지난해 고흥군 새교육 공동체의 여론조사 결과 대다수 학부모들이 공립유치원 설립을 적극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단체가 고흥읍의 취학 전 아동의 학부모 33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8.9%인 295명이 공립유치원 설립을 찬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다수 학부모가 공립유치원을 선호하는 것은 무엇보다 저렴한 교육비 때문이다. 공립유치원의 경우 교육비가 월 1만 원인 반면 사설유아시설은 월 6만5천 원으로 교육비 차이가 크다.

교육당국 "신청하면 해주겠다" "시설부지 없다" 오락가락

전남도교육청과 고흥군교육청은 고흥읍내에 공립유치원이 필요하다는 학부모들의 여론에 동감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설립신청을 해올 경우 설립을 돕겠다면서도 학교시설과 부지가 부족해 설립이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는 등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해원(60) 고흥군교육장은 27일 "학부모 여론에 따라 공립유치원 설립을 추진하겠지만 당장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며 "학생수가 많아(1363명) 내년에 2부 수업을 실시해야 될 정도로 학교 부지가 비좁아 병설유치원 설립이 어려운 실정이다"고 밝혔다.

김상문(60) 전남도교육청 장학관은 27일 "고흥뿐 아니라 진도, 영광에서도 (사설유치원의) 반대가 심해 공립유치원 설립이 어려운 실정이다"며 "고흥군수가 부지를 마련해주면 도의회에 예산 마련을 요구해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도 있다"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김성준(41) 전교조 지회장은 28일 "농촌 학부모의 열악한 교육환경은 외면한 채 공교육의 책임을 떠넘기기로 회피하고 있다"며 "시설부지는 의지만 있으면 해결될 문제인데 교육당국은 변명으로 학부모들의 소망을 무시하고 있다"며 교육행정을 문제 삼았다.

이와 함께 "통폐합 당시인 95년과 97년에도 시설부족을 이유로 설립요구를 반대했다"며 "체육관 시설 만한 다목적 교실 등을 증축하면서도 유독 유치원만 시설부족을 이유로 짓지 않는 것은 문제를 피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국회의원 여동생 손들어 준 학교운영위원회

고흥동초등학교(교장 박성식) 운영위원회는 지난 12일 공립유치원 설립신청 여부를 묻는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찬반 양쪽의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첫 번째 회의는 결렬됐다.

14일 다시 열린 운영위원회의 표결 결과 8:5로 공립유치원 설립신청이 부결됐다. 설립을 적극 반대한 H어린이집 운영자 P씨(53)는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표결에 참가했다.

군교육청 관계자와 시민단체들은 설립반대를 주도한 사설유아시설 운영자가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회의에 참석해 표결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해원 교육장은 "이해 당사자가 회의와 표결에 참가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동초교 박수돌(52) 교감은 "이해당사자의 표결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 그대로 표결에 부쳤다"고 해명했다.

추진위는 공립유치원 설립신청 부결에 대해 "절대다수의 학부모와 고흥읍민이 원하는 병설유치원 설립을 부결시킨 운영위원회는 학부모의 대표기구가 되기를 포기한 것이다"며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학부모와 지역민을 배신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며 반발하고 있다.

"압력행사 했다" "왜곡된 주장" 누구 말이 맞나?

14일째 단식농성중인 선대원(42·고흥 흥양신문 편집국장·고흥 동초교 운영위원) 씨는 국회의원 여동생인 P씨의 남편 E씨가 교육장에게 공립유치원 설립 반대 압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 씨는 28일 "지난 13일 E씨가(H어린이집 원장) 고흥교육장을 방문하여 공립유치원을 설립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고 주장하며 "교육장은 협박 여부에 대하여 밝힐 수 없다고 하였으나 P씨의 발언에 대해 대단히 곤혹스럽고 부담스럽다는 말을 했으며, 교육장이 부담을 느꼈다면 분명히 압력에 해당된다"며 압력 의혹을 제기했다.

E씨는 '한국보육시설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 계통의 실력자로 알려졌다. 28일 오후 현재 E씨와 수 차례 연락을 했으나 두절된 상태다.

김신규(35·고흥동초교 교사) 전교조 고흥지회 사무국장은 28일 "지난 14일 교장 선생님께서 '공립유치원을 막지 못하면 고흥에서 쫓아내겠다'는 폭언을 듣는 등 무능한 교장 취급을 받고 있다는 하소연을 직접 들었다"고 밝혔다.

김 사무국장은 또 "폭언한 인물을 묻는 질문에 답변은 회피했지만 이런 말을 할 사람은 고흥에서 뻔하다"고 말했다.

고흥동초교 박성식(54) 교장은 28일 "폭언을 들은 적이 없다"고 전면 부인하면서 "공립유치원 설립이 안 되는 것은 수용능력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여동생 P씨는 28일 "다른 사립 유치원도 있는데 그 사람들이(추진위) 나만 문제삼고 있다"며 억울해 했다.

특히 P씨는 "나만 매도하면 괜찮지만 오빠(국회의원)를 피해주는 것은 참을 수 없다"며 자신과 오빠는 정치적 피해자라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어린이집 때문에 먹고사는 게 아니라 부업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며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추진위 릴레이 단식 이어질 예정

공립유치원 설립 문제로 파문이 확산되자 P의원은 고흥교육청에 해결방안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직접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를 파악하는 등 집안단속에도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P의원측 관계자는 27일 "주민복지에 관련된 공립유치원 설립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직접 나서서 해결할 소관사항이 아니다"며 "효과적인 해결방법을 고민중이다"고 밝혔다.

한편 14일째 단식농성 중인 선대원 씨는 28일 "문제가 확산되자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단식중단을 요청하는 전화가 왔다"면서 "절차상 하자가 없다면 설립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해 왔지만 아직 믿을 수 없다"며 단식농성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선 씨는 특히 "오늘(28일) 단식을 끝내고 추진위원, 학부모 등이 참여한 1인 릴레이 단식으로 이어질 것이다"며 "당연히 설립되어야 할 문제를 놓고 자기 학대를 통해 싸울 수밖에 고흥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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