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향 12년에 빈털털이된 한 장년의 분노

보름달이 초생달이 되듯 농토없어진 농정

등록 2001.12.29 09:59수정 2001.12.2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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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지킴이를 다짐하면서 섬마을을 찾았던 젊은이가 빈털털이 장년이 되어 다시 고향을 버려야 하는 허탈함에 몸부림치고 있다. 도시에서 전기공사 기술자로 일하다가 고향으로 되돌아와 농사일에 매달렸을 때만 하여도 그에게는 꿈이 있었고 희망이 보였다.

여수시 남면 우학리 680번지 남면 택시 사장 강기천(40) 씨는 오늘도 귀거래사를 읊었던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다.

강씨가 낙향을 결심한 것은 지난 89년.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지킴이를 다짐하면서 젊은이들이 해마다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나가는 바람에 늙은이들만 어렵게 살아가는 고향의 모습이 언짢아 “내라도 고향을 지켜야지”하는 생각으로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낙향한 것이다.

고향을 찾은 강씨는 5천여 평의 밭에 매달려 고구마, 보리 농사를 짓고 흑염소를 키우면서 열심히 일했다. 그는 92년 농민 후계자로 선정 될 만큼 농사에만 매달렸고 제법 중농(中農)의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농사는 지으면 지을수록 빚만 늘어났다.

90년대 흑염소 가격폭락 파동은 강씨의 부채를 더욱 늘렸고 이로 인해 흑염소는 방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염소의 방목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듯 염소의 야생화(野生化)로 남의 것이 되어버리는 실패의 쓴잔이었다.

고구마나 보리 농사는 적자 가계를 더욱 옥죄었다. 적정가격이 유지되지 않는 농산물 가격에 허탈과 실망을 느껴야 했고 농정부재는 그를 분노하게 했다. 열심히만 하면 그래도 도시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한 가닥의 기대는 산산이 무너지고 말았다.

5천여 평의 밭은 마치 보름달이 초생달로 변하듯 야금야금 팔려 나갔다. 강씨의 10년 농사의 마지막 결산은 이처럼 실망과 허탈, 분노뿐이었다.

그렇다고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을 수도 없었다. 어촌에 살면서도 도시생활, 농사일에만 전념하여 바다를 모르는 그에게는 어부 생활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이다.

강씨가 살고 있는 금오도는 여수에서 41㎞ 남쪽에 자리잡은 다도해국립공원 지역이다. 곳곳에 유명 낚시터가 즐비하고 다도해 전경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해발 382m의 대대산이 자리하고 있다.

금오도 일주도로가 점차 늘어나면서 월척의 꿈에 부푼 바다 낚시꾼들이 몰려오고 선택형 등산로가 있는 대대산을 찾는 등산객이 잦아지자 89년 강씨는 농사일을 포기하고 2대의 “지프형” 승용차를 들여와 택시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섬 마을에서는 생소한 운송업을 시작했지만 이나마도 실패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강씨는 손수 택시를 몰고 여객선을 타려는 승객이 집에서 전화로 호출하면 부리나케 달려가 손님을 싣고 우학리 여객선 부두로 향한다. 하루 4차례 여객선이 들어올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부두에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승객을 싣고 마을로 향했다.

우학리에서 가장 먼 거리는 함구미까지의 11.4km, 승객과 짐을 함께 실어 점차 승객들의 인기를 끌었으며 하루 7∼8만원 수입을 거뜬히 올릴 수 있었다. 운영비를 빼고 나면 큰 수입은 아니더라도 고향을 지키고 고향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이것도 한때. 2001년 10월 6인승 콜밴이 등장하면서 강씨의 사업은 사양길로 들어선다. 한 달 후에는 또 한 대의 콜밴이 들어와 모두 2대가 되었다. 좁은 섬에서의 경쟁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를 가져왔다.
▲ 섬 택시 / 짚형 택시이기는 하지만 섬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콜밴"에 밀려 부두에 서있다. ⓒ 이상률
콜밴은 6인승으로 승객과 짐을 한꺼번에 실을 수 있고 운임은 신고제여서 택시보다 헐값이라 택시 승객들이 모두 콜밴으로 옮겨가 버렸다.
강씨의 수입은 하루 2∼3만원으로 크게 줄었고 급기야 운영난에 봉착, 운행을 중단하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 차량 1백여대가 있는 이 섬에 얼마 후면 콜밴이 4대나 등장하게 됨으로써 강씨의 사업은 아예 절망적이다. 강씨는 며칠 전, 여수시청을 찾아가 남면 택시도 도농통합에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여수시는 98년 4월 여수시, 여천시, 여천군 등 3개시군 주민발의에 의하여 도농통합을 이루었다. 이에 따라 3개 지역의 택시회사도 99년 통합정신에 따라 구 여수시, 여천군, 여천시로 국한 되어 있던 영업구역을 여수 전지역으로 확대한 것이다.

그러나 강씨의 남면 택시는 섬 지역이라는 지역 특성 때문에 이에서 제외되었다. 강씨는 통합 전인 3월, 여천군으로부터 택시허가를 받았고 이후 4월 도농통합을 이루었음으로 통합정신에 의하여 당연히 영업지역을 확대, 당장의 파산은 막아주어야 할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영업구역 확대는 섬에서만 운행되는 택시의 영업을 여수 전역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이 꿈이 이루어진다면 여수 시내로 나가 일하면서도 고향 지킴이를 지탱하겠다는 강씨의 염원이 실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 당국은 강씨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있다.

도시 생활의 꿈을 접고 고향을 찾아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읊으면서 고향 지킴이를 다짐했던 20대 젊은이이었던 강씨는 고향에서 농부로 사업가로 활동하다 40대 장년이 되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강씨는 우학리 부두에 나와 개구쟁이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던 산과 들을 쳐다보면서 고향에서 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모르겠다는 독백을 쉼없이 내 뱉고 있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을 아련히 떠올리면서 자신의 고향 지킴이가 어리석은 일이라고 후회하고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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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닥다리 기자임. 80년 해직후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밥벌이 하는 평범한 사람. 쓸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것에 대하여 뛸뜻이 기뻐하는 그런 사람. 하지만 항상 새로워질려고 노력하는 편임. 21세기는 세대를 초월하여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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