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궁으로부터의 답장

리투아니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끝)

등록 2001.12.31 16:27수정 2002.01.0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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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에는 한국의 공관이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여권을 잊어버리는 등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리투아니아뿐 아니라 발트3국에서는 어디 가서 호소할 구석이 없다.

덴마크 주재 한국대사관이 리투아니아를 관장하고 있기는 한데, 리투아니아에서 덴마크는 발트해를 가로 질러가야 하는 먼 나라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큰일이니, 자신이 알아서 챙기는 수밖엔 별 도리가 없다.

한국에도 리투아니아의 정식공관은 없고, 중국 북경 리투아니아 대사관이 한국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비자 체류기간이 15일이라고 아는 것만도 다행이고, 그것이 '일년간'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빌뉴스에서 10년 이상을 살고 있는 한국인 가족도 그 '일년간 15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처음에 내가 농담을 하거나, 잘못 알아들은 것으로 여겼을 정도이니까.

어찌 되었건 그 나라 실정법이 그러하므로, 나는 명백히 비자법을 어겨 추방을 당했고 그에 따르는 입국금지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바르샤바에서 석사과정을 거의 마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고, 카우나스에서 알게 된 교수님과 만나기 위해 수시로 카우나스에 드나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논문을 최대한 빨리 마쳐야 하는 상황에 10개월 동안 리투아니아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졸업을 나중으로 미루라는 말 이상이다.

바르샤바 대학교 교수들의 지원도, 카우나스 비타우타스 대학교에서 보내준 진정서도 도움이 안되었고, 바르샤바 한국대사관에 근무하시는 직원들도 당분간 리투아니아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포기하라는 충고만 해주었다. 그리고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거의 희생하다시피 하여 치러낸 발티카 행사 참여기간이 이렇게 문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정말 기가 막혔다.

어쨌든 나는 마지막 논문자료정리를 남겨놓고 봄이면 다시 리투아니아에 가야 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정말 결정적인 순간엔 정면돌파를 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리투아니아 발다스 아담쿠스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써내려간 편지의 내용을 대충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저는 언제 어디서 이런 이유로 추방과 더불어 입국금지를 당했습니다. 또 이런 저런 이유로 저에겐 이 조치가 너무 가혹합니다.
2. 한국에 리투아니아 정식공관이 없는 관계로 비자관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불가능합니다.
3. 저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발티카 행사에 한국팀이 참가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노력을 했고 또 어떠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리투아니아에 있는 문화부 관계자 누구누구를 만나서 확인해보시지요.
4. 그리고 한국에서 리투아니아를 알리기 위해 여러 가지 짓을 햇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최초로 리투아니아 정보서적을 편찬했는데 (물론 팔리는 책은 아니었지만) 출판사 이름과 ISBN번호가 이러이러합니다.

바르샤바 대학교 발트어과의 리투아니아 교수님에게 문법과 문장수정을 부탁한 다음 수정에 수정을 거쳐, 인터넷을 통해서 얻은 대통령 집무실의 이메일주소로 이메일 폭탄을 보냈고, (그 당시 대통령의 전용 이메일은 없었다), 그리고 공손하게 팩스를 하나 넣었다.

그리고는 내가 무슨 미친 짓을 한 거야, 이러다가 영원히 입국금지를 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서서히 들면서 그냥 포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그 이메일은 열어보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 포기를 해야 되는가보다.

그런 포기와 기대 사이를 왔다갔다 하기 두 주일만에, 우리 하숙집 아주머니로부터 정말 믿기지 않은 편지를 받게 되었다. 리투아니아 대통령 집무실이라는 휘장이 박힌 편지가 내 이름으로 배달이 되어온 것이 아닌가.

귀한 봉투이니만큼 상하지 않으려고 가만가만 열어 뜯어본 편지는, 물론 대통령 당신이 직접 보낸 것은 아니었지만, 집무실에서 보낸 것이었다. 내가 보낸 편지는 접수되었고, 곧 내무부 비자관계업무 담당자를 통해 답장이 갈 것이라는 짧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내 생각엔 그 편지를 받고 고작 이틀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리투아니아 내무부에서 편지가 한 통 날아왔다.

"귀하께서 보내신 편지를 접수한 후 조사를 해본 결과, 귀하에게 처리된 입국금지조치를 철회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가까운 리투아니아 영사관에 가서 비자를 신청하신 후 리투아니아에 들어오셔도 좋습니다."

그 외에 한국인의 리투아니아 입국시 필요한 비자 관계 정보와 함께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하다"는 사과로 편지를 끝마쳤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구구절절이 쓰지 않아도 상상이 가리라 믿는다.

다음 날 나는 바르샤바 리투아니아 영사관에 가서, 나한테 입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고 이야기한 바로 그 영사에게 다시 비자신청을 했다. 어디로 전화하는지 몇 군데로 한참 동안 전화통화를 한 후, 모든 서류는 접수되었고 3일 뒤에 비자를 받았다.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1999년 8월에 비자신청을 하고 8개월 만에 받는 비자였다.

그 후 4일 동안 카우나스에 있는 논문지도교수를 만나고, 빌뉴스에 있는 리투아니아 문학 및 민속문화연구소를 찾아가고 하면서 논문에 대한 자료준비를 마치고 다시 바르샤바로 돌아왔다. 여권에 추방도장이 찍힌 사람이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비자를 받아 입국을 하는 것이 이상한지 폴란드 국경의 리투아니아 국경경찰이 국경수비대로 데리고 들어가 취조 비슷한 것까지 했지만, 내무부 관계자의 친필사인까지 들어있는 편지 앞에서는 꼼짝을 하지 못했다. 역시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고이 나를 돌려보내주었다.

그 해 나는 한국에 와서 여름을 보냈다. 발트3국에 관한 정보홈페이지를 준비하면서 외무부를 비롯해 한국에서 나온 동유럽관계사이트에 들어가서 발트3국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면 과연 어디서 누구를 위해서 나온 정보인지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3개월, 9개월 등 가는 곳마다 바뀌어 있는 무비자 체류기간 정보, 그리고 '비교적' 정확하게 15일로 나와 있는 경우에도 '일년간' 15일을 넘지 못한다는 '정말 단순하고 기본적인' 사실은 어느 곳에도 나와 있는 곳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동유럽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신빙성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할 기관'의 자료에 의하면 무비자 기간이 3개월로 되어 있기까지 했다(얼마 전 확인을 해본 결과 일년간 15일로 수정이 되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후 나와 비슷한 경우로 문제를 겪은 한국인이 또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유럽에서 그런 비자관계로 얽히고 설킨 말썽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자가 필요 없는 국가 국경에서 비자를 요구하며 되돌려 보내는 경우도 있고, 엄연히 유효한 비자가 무효하다는 억지를 부리는 경우 등 동유럽을 다녀본 사람들은 거의 한두 가지씩 그런 무용담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와 비자협정이 맺어져 있는 동유럽의 한 국가를 여행하면서 비자문제로 낭패를 본 한 한국인 여행객은 한국에 돌아간 후 외무부에 전화하여 동유럽 담당직원에게 정확한 정보를 얻어 보려 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우리 외무부는 그런 하찮은 비자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민들의 외국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비자가 하찮은 일이라니, 타향에서 국민들이 사형을 당해 죽어가든지, 현지인들에게 맞아서 죽어가든지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런 일을 못 하더라는 사실이 납득이 전혀 안가는 일도 아니다.

경제문제로 어려운 가운데 있는 상황에 유럽과 아프리카에 있는 조그마한 나라에까지 공관을 세우라고 하는 일은 남대문시장에서 돌 맞아 죽을 일임은 확실하다. 어쨌든 지금도 지구상 어딘가에 한국의 공관 하나 없는 이름도 모르는 작은 나라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여러 악조건과 투쟁하며 생활을 이어나가는 한국인들과 이런 새해 소망을 나누어보고 싶다.

2002년은 크거나 작거나 인구가 많거나 적거나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세계의 부를 골고루 누리며, 그 어느 한 나라도 다른 나라의 주인이 되지 않는 그런 평화로운 시대가 시작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발트3국 이야기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덧붙이는 글 발트3국 이야기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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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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