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미사를 지내고

등록 2002.01.01 20:25수정 2002.01.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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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지난해'가 된 2001년 12월 31일 밤 11시에 지낸 우리 성당의 '송년미사'에 가족과 함께 참례한 데 이어 오늘 오전 10시 30분에 지낸 2002년 새해의 첫 미사에도 온 가족과 함께 참례를 했습니다. 송년미사와 신년미사에 가족과 함께 참례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가정의 오롯한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로 사시는 모든 분들께 위로를 드리고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정갈한 마음으로 신년미사를 지내고 (사제로부터 '장엄축복'을 받고) 집에 돌아와서 역시 정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천주교회에서는 매년 1월 1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과 '세계 평화의 날'로 기념하며 지냅니다. 예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대한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는 4세기경부터 시작하여,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공적으로 승인되었으며, 1970년 이래 1월 1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내게 되었지요. 또한 1967년 12월 8일 교황 바오로 6세는 1월 1일을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날'로 제정하였지요.

매년 1월 1일은 천주교회의 '의무축일'이기도 합니다. 의무축일이라는 것은 주일(主日)이 아니더라도 주일처럼 반드시 미사에 참례하고 거룩하게 지내야 할 의무가 모든 신자에게 부여된 날이라는 뜻이지요.

천주교에는 4대 축일이라는 것이 있는데, 일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인 이 4대축일(예수부활대축일·예수성탄대축일·성령강림대축일·성모몽소승천대축일)에다가 1월 1일 '세계 평화의 날'을 포함하여 5대축일로 부르기도 하지요.

오래 전부터 가톨릭교회에서 한 해의 첫날인 1월 1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기념해 온 것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지요. 사람들이 갖게 되는 새해에 대한 소망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뭐니뮈니해도 '평화'일 것입니다. 전쟁과 환난의 반대인 이 평화야말로 이 세상의 가장 소중한 공동선이며 가치일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지요.

그 평화를 비는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모 마리아 님의 전구(轉求)를 많이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님은 우선적으로 여성입니다. 평화는 아무래도 여성과 더 가까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님은 예수 그리스도 님의 어머니이시지요. 마리아님이 간직하고 있는 모성(母性)은 더더욱 평화와 가까운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으로서, 또 어머니로서 인류의 모범이 되신 마리아님을 기념하는 날로 1월 1일이 정해진 것은 한 해의 평화를 소망하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간절한 기원이 자연스럽게 작용한 결과라도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또 교회의 그런 전통이 줄기차게 계승 발전되어 마침내 1월 1일이 '세계 평화의 날'로 제정되기에 이르렀고….

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우리 성당의 신년미사에 전례 봉사를 하면서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쳤습니다. 독서대에서 제1독서(구약성서 봉독)를 하는 사람은 두 번째 기도도 하게 되어 있는데, 이 두 번째 기도가 바로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이지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랍니다. '전례분과위원회' 위원장이 미리 짜놓은 '1월 전례봉사표'에 그렇게 배치가 된 덕분이지요.

나는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준비하면서 하느님과 우리 교회 전례분과위원장님께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년 1월 1일(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미사에서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친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선 참으로 영광스런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세계 평화와는 거리가 먼 오늘의 상황을 생각하니 안타까움과 비애가 참으로 컸습니다. 세계 평화를 소망하는 기도라는 게 너무도 무의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스스로 무안하기도 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스스로 기도를 멈추거나 기피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현실 상황이 어렵고 힘들수록,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더욱 열심히 기도를 해 왔고, 그 끊임없는 기도의 힘으로 믿음살이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거지요.

나는 오늘 아침에 맑은 정신과 경건한 마음으로 오전의 신년미사 중에 하느님께 바칠 기도를 준비하면서 지난해 신년미사 때 바쳤던 기도를 잠시 상기해 보았습니다. 내가 잘 간직하고 있는 그 기도문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 올해에는 지구촌 어느 곳에서도 총성이 들려오지 않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서도, 세르비아의 코소보에서도, 동티모르에서도, 이슬람교도들이 기독교도들에 대한 전투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을 탄압하는 터키에서도 폭탄 소리가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사랑이신 주님, 올해에는 세계 모든 무기상들의 수입이 줄어들게 하소서. 성모님의 모성을 함께 지닌 여성들의 힘이 강화되어 남성들의 전투적인 성격을 감싸게 하소서. 그리하여 싸움과 파괴와 살육이 없고, 평화가 굽이치는 한해가 되게 해 주소서.


생각하면 절로 무색해지는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바친 기도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 2001년에는 장소를 바꾸어 더욱 엄청난 규모로 참혹 처절하게 전개되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나는 이런 상황일수록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고 다시 생각했습니다.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는 나 혼자만 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수백 명 신자들만 그 기도에 동참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전국의 모든 성당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모든 성당들에서 일제히 하느님께 올려지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개신교 형제들의 모든 교회당들에서도 수많은 성도들이 함께 바치는 기도였습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함께 마음을 모으는 기도인 것이지요.

나는 나부터 열심히 기도를 바쳐야 하고, 내 간절한 기도의 효험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내 기도가 하느님께 상달되기를 바라며 굳게 믿고 싶었습니다. 그 희망과 믿음이 나를 살게 하는 것임을 또한….

그런 마음으로 나는 좀더 간절히, 절절한 음성으로 하느님께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칠 수가 있었습니다. 내 간절한 기도를 되새기는 마음으로, 내가 오늘 우리 교회의 신년미사 중에 하느님께 바쳤던 기도를 여기에 적어보겠습니다.

주님, 지구촌의 평화를 크게 위협하고 있는 이슬람 문명권의 테러리즘, 이를 응징하려는 초강대국 미국의 보복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끝없는 분쟁,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 지역에서의 충돌 등 21세기의 초엽을 처참하게 뒤덮고 있는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한결같이 종교의 대립이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랑과 평화 추구가 무릇 종교의 본령이며, 내세에서의 영원한 복락을 꿈꾸게 함으로써 하늘에 선업을 쌓게 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임에도 왜 인간들은 종교에 대한 아집으로 전쟁도 불사하는지요. 여기에서도 인간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올해에는 특히 권력을 지닌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한계를 뼈저리게 통감하고 종교의 본질을 깊이 체득케 함으로써 하늘에 선업을 쌓는 마음으로 지구촌의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도록 사랑과 평화의 빛으로 그들을 비추어 주소서.


지난 일년 동안 내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삼가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2002년에는 기쁜 일들이 많으시기를 축원하고, 아울러 일상 생활 속에서 많은 성취와 보람들을 얻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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