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너무'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우리 국어를 위하여

등록 2002.01.02 12:47수정 2002.01.0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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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마지막 날 밤이었다. 성당에 가서 '송년미사'를 지내고 자정이 넘어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딸아이가 바쁘게 텔레비전을 켰다. 그리고 리모콘으로 여러 채널을 계속적으로 옮겨다녔다. 그 시간에 거의 모든 공중파 방송들이 자사의 일년 동안의 드라마들에 대한, 또는 대중 가요들에 대한 '시상식' 행사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호화찬란한 그림이었다.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화려한 그림의 압권이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잠시 텔레비전 수상기에 눈을 주었을 뿐 의식적으로 그 그림들을 외면했다. 그런 그림들에 시간을 주거나 빼앗긴다는 것은 이상한 박탈감 같은 것을 배가시킨다는 유치한 생각도 내 의식의 문턱에 걸려 있는 사항이었다. 그리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 확인을 했다.

그런데 채널을 자주 바꾸면서도 그림들에 열중하고 있던 딸아이가 한 순간 이상한 말을 했다.
"쟤가 엉터리 말을 하네."
그러더니 기분이 나쁜지 이내 다시 채널을 바꿔버렸다. 그러고는 곧 다시, "얼라, 쟤도 말을 너무 못하네. 왜 엉터리 말을 저렇게…"하면서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어른 연예인들에 대해서 '쟤'라고 지칭하는 것이 옳지 않은 언어 습관으로 느껴졌다. 바로잡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관심을 표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니? 너야말로 말을 잘못하는 거 아니니?"

그러자 딸아이가 하는 말, "탤런트와 가수라는 사람들이 너무 말을 못해요. 우리말을 함부로 엉터리로 사용하는 것이 너무 한심해서 그래요."

"누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기에 그렇게 한심하다는 거니?"
"상을 받고 수상 소감을 말하는데, 감사 표현에 문제가 있어요."
"감사 표현? 그거야 약방의 감초 격일 텐데, 뭐에 문제가 있다는 거야?"
"'너무너무 감사 드립니다'라는 말들을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아빠는 아세요?"
"너무너무 감사 드립니다? 글쎄다, 그 말이 무슨 뜻일까…."

듣고 보니 정말 이상한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너무 감사 드립니다'. 냉큼 정확한 뜻이 가늠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것이 딸의 표현대로 '감사 표현'인 것은 분명했다. 곧바로 감사 표현으로만 받아들인다면 별로 문제 삼을 필요가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내 딸아이가 문제 삼는 이유 또한 분명했다. 말 자체가 '너무도' 잘못된 말이기 때문이었다.

"언어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잘못 어울려진 그 말들을 놓고 굳이 의미를 캐보자면 어떤 뜻이 될까?"
나는 은근히 재미있기도 했고, 딸아이의 언어 감각을 좀더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은 고맙다는 뜻이 아니에요. '내가 지금 정도에 넘게, 지나치게 감사를 하고 있다'라는 뜻이 돼요. 그래서 엉터리 말이라는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딸아이의 국어 실력이 대견스럽게도 느껴져서 미소를 지었지만 곧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중학교 2학년 아이도 그 말이 엉터리 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데, 왜 어른 탤런트들과 가수들은 그걸 모르는 걸까?

그들이 모르는 것으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의 입을 통해 그런 잘못된 말들이 마구 남발되면서 방송을 타고 천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문제였다. 아니, 그렇게 천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데도 거개의 사람들이 별로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그런 무감각의 심화가 더 큰 문제일지도 몰랐다.

요즘 사람들이 '너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것은 어제오늘 지적되어 온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너무 라는 말을 겹으로 쓰고 있는 것도 일반화된 현상이다. 우리는 '너무너무'라는 말을 너무도 흔하게 쓰고 있는 것이다.

'너무'라는 말은 '한계가 정도에 지나게', 또는 '분에 넘게'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이다. 주로 부정적인 상황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말이 이제는 '강조'의 의미로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너무'라는 말이 강조의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 것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현상의 속내를 짚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우리네 삶이 진실이나 정직과 많이 유리되면서 '너무'라는 말이 강조법의 너울을 뒤집어쓰게 된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봄직하다.

옛날에는 좋고 긍정적인 것을 표현할 때는 '너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 '너무 좋다', '너무 예쁘다' 하지 않고, '참 좋다', '정말 예쁘다'라고 했으며, '워낙'. '대단히'라는 단어들도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무슨 일에나 '너무'라는 말을 무제한적으로 쓰게 된 것에는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을 법하다. 우리의 삶 안에서 '정말'과 '참'이 축소되거나 희박해져 가면서 사람들은 가식과 과장에 익숙해지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알게 모르게 '너무'라는 과장적인 강조 말을 손쉽게 활용하게 되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너무'라는 말의 무제한적인 사용 현상과 결부시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속내를 유추해 보는 것은 너무 비약적인 발상일 것도 같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거두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언어 습관이 연예인들에 의해 더욱 증폭 확산되는 것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언어 감각이나 국어에 대한 의식이 부족한 일부 연예인들은 본래 그렇다치더라도, 프로듀서 등 책임 있는 방송 매체 종사자들의 무감각과 무의식은 정말로 안타깝다. 젊은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서 다반사로 지껄이는 '너무너무 감사 드립니다' 따위의 엉터리 말들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꽤나 생명력이 길기에 하는 소리다.

위에 적은 내 말을 골똘히 듣고 있던 딸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방송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게시판에다가 질문을 해 봐야겠어요."
"무슨 질문?"
"'너무너무 감사 드립니다'라는 말의 정확한 뜻을, 그 말을 한 탤런트나 가수가 알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방송국 사람들은 알고 있는지도 궁금해요. 한번 물어볼 거예요."
"그래, 좋은 생각이다. 아빠도 인터넷 세상에다가 그 말의 뜻을 한번 물어봐야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외로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리고 나는 딸아이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벌써부터 그런 문제의식까지 껴안고 사는 어린 딸아이가 문득 가엾게 느껴진 탓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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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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