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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신의 아들일 수 있는 이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예수의 마지막 유혹>

02.01.28 16:27최종업데이트02.01.2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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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기독교에 대해 알고 있는 단편적인 것들은 거의 성탄전야에 방영해주던 종교영화에서 얻은 것들이죠. <왕중왕>, <십계>, 조금 멀긴 하지만 <벤허>, 그 외 여러 영화들. 그 속의 예수는 메시아였고, 확신과 위엄을 가진 신의 아들었습니다. 그러다 만난 이 한 편의 영화는 예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목수죠. 그러나 그가 만드는 것은 여물통이나 침대같은 평화로운 것들이 아닙니다. 그가 만드는 것은 로마의 법을 어긴 사람들을 매다는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는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갑니다. 그러나 구세주의 출현을 예고했다는 이유로 매달리는 건 예수가 아닙니다. 그는 십자가를 만들고 운반하여 죄인을 매다는 일을 합니다. 언덕을 올라가는 내내 그는 동족을 처형하는 일을 돕는데 분노한 군중들이 던진 돌에 맞고 창녀 마리아는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가롯 유다는 당장 십자가 만드는 일을 그만 두라고 예수에게 손찌검까지 하지요.

예수의 산상설교는요? 신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사랑을 나누라는 예수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꿈 같은 이야기라고 비웃으며 흩어져 버립니다. 다른 종교영화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이런 묘사는 신의 아들인 예수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 만듭니다.

그가 메시아라는 이름을 얻으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로마 통치하의 식민지에서 목수로 산 그 30여 년간의 생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적 신에 대한 갈망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면서도, 그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으며 부정한 적은 없었을까. 그 자신이 정말 신의 아들이었더라도 그것을 깨닫고 받아들이기까지의 고통은 없었을까. 지난 30년을 인간으로 살아왔는데, 자꾸만 자신의 안에서 들리는 신의 목소리에 어떤 두려움을 느끼진 않았을까.

그런 질문들을 던지며 예수의 내면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힘입니다. 처음에는 믿음을 가지지 못해 괴로워하던 젊은이가 어떻게 신에게로 나아가게 되는가. 어떻게 확신과 영적인 자유를 얻는가. 어떻게 나약하던 인간이 하느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어루만지는 메시아가 되는가. 어떻게 자신의 전 생이 하느님의 도구가 됨을 받아들이는가.

가장 논란이 되는 장면은 아마 영화 마지막 30분 가량일 겁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앞에 천사가 나타나 당신은 구세주가 아니라 말하며 삶을 살라고 하지요. 예수는 마리아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보통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늙어 죽기 직전, 베드로와 유다가 찾아와 지금까지의 삶이 예수의 신념과 어긋나는 것이고, 예수가 그런 삶이 행복이라 주장하는 것은 신념대로 살아온 삶의 결과를 피하기 위한 핑계라고 이야기하지요. 예수는 이제껏 자신이 신의 의지에 반항하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예수가 삶에 대한 열망을 가졌다고 해서, 자신의 희생 앞에서 뒷걸음쳤다고 해서 그의 신성이 손상되지는 않습니다. 그는 그보다 더 큰 것을 해냈으니까요. 그는 자기 자신의 나약함과 싸워 이겼습니다. 그는 단순히 신의 아들이고 하느님이 그를 보내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 게 아니라 자신의 나약함과 삶에 대한 열망, 죽음의 공포 등과 싸워 이긴 후 스스로 십자가에 걸림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가 위대할 수 있는 이유는 신의 아들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에 있습니다. 자신을 이기고 자신 속에 있던 이기심을 떨쳐내고 신념에 따라 움직인 그것. 예정된 순서이니 그냥 따라가기만 했다면 예수는 그렇게 위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가 결여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인간적인 약함 안에서 용기를 짜내어 희생한 그 초인간적인 면이 예수를 신의 아들이게 만든 것입니다.

이 영화는 제가 아는 가장 훌륭한 종교영화입니다. 인간의 아들이 어떻게 신의 아들이 될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2002-01-28 16:2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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