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박지원을 옆에 두고 싶다는데"
"물타기를 하려다 오히려 기름부은 꼴"

박지원 재기용, 청와대의 '정면돌파' 파장

등록 2002.01.29 18:00수정 2002.01.3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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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9 개각'에서 정책특보로 기용된 박지원 씨가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MBC TV 촬영

김대중 대통령이 29일 장관(급) 9명과 청와대 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 6명을 교체했다. 임기말 진용을 새로 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선택한 새 진용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박지원 씨를 장관급인 청와대 정책특보에 임명한 것과 사상 처음으로 박선숙 씨를 여성 대변인으로 '내부 승진'시킨 것이다.

박지원 재기용 "힘있는 청와대를 위한 정면돌파"

김 대통령의 박지원 재기용은 '힘있는 청와대를 위한 정면돌파'의 성격을 갖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박지원 재기용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 마디로 정면돌파"라면서 "청와대가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추진력이 있는 박지원 특보가 기용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국정에 전념하겠다고 공약했다"면서 "그 의미는 청와대가 국정의 중심이 되어서 경제를 회생시키고 월드컵을 성공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것을 성공시키려면 지금처럼 정부 부처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일을 안하고 있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되는데, 그러려면 청와대가 힘이 있어야 하며 그 힘은 추진력이 강한 정책 참모로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 박지원 정책특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박지원 특보는 그동안 '김대중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통했다. 박 특보는 지난 여름 <오마이뉴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정식으로 한 적이 거의 없다"면서 "대통령의 참모는 입이 없다, 오직 대통령을 위해 일할뿐"이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오랫동안 일을 해온 한 청와대 수석은 2001년 가을 민주당 쇄신파들이 박지원 수석 퇴진을 요구했을 때 사석에서 "누군가는 대통령을 위해 궂은 일까지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박지원 씨의 독특한 역할이 있음을 시사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29일 개각 발표 직후 '박지원 재기용은 정개개편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게 정치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김 대통령의 의중을 잘못 읽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김 대통령이 정개개편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박지원 씨는 각종 게이트가 발생할 때마다 배후인물로 지목이 돼 왔다. 언론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권력음모들'의 모든 길목에 그가 위치해 있는 것인양 보도해왔다. 따라서 만약 단 하나의 게이트에서라도 그의 연루설이 밝혀진다면 박지원 재기용으로 김 대통령이 입을 상처는 적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는 박지원 씨를 애초에 비서실장으로 기용하려 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개혁파 의원들을 대상으로 '양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반대가 예상대로 크자 비서실장에서 '특보'로 한발 물러난 기용을 한 것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위험 부담에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이 박지원 씨를 임명한 것은 오히려 그와 관련한 각종 의혹이 근거 없는 것이거나 부풀려진 것으로 판명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어쨌든 박지원 재기용으로 김 대통령은 추진력을 얻게 됐지만 또 하나의 위험요소를 안게 됐다. 참여연대는 29일 "과거 쇄신 대상으로 지목돼 물러났던 박지원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정책담당특별보좌관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논평했다.

민주당 개혁파 "그렇게까지 박지원을 옆에 두고 싶다는데…"

박지원 전 정책기획수석을 정책특보로 재기용한 1·29 청와대 비서진 개편과 관련해, 그동안 줄기차게 박 전 수석 등을 인적 쇄신 대상 1순위로 지목해왔던 민주당 쇄신파 의원들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대통령께서 그토록 옆에 두고 쓰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되도록 비판을 삼가는 분위기였다.

이재정 의원은 "(개각과 관련해) 동료 의원들과 논의한 바도 없고, 앞으로 모일 계획도 없다"며 "이번 개각과 청와대 비서진 개편이야말로 대통령께서 고심해서 한 것으로 보여 언급을 삼가키로 했다"고 말을 아꼈다.

쇄신연대 총간사인 장영달 의원도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박지원 씨를 거듭 기용한 것은 남북문제를 발전시키고자 한 고육지책이 아닌가 보여진다"고 평가했다. '박 전 수석의 재기용은 DJ가 이번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보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장 의원은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 미래 정치를 원하고 있는데 그게 쉽겠느냐"며 "박 전 수석이 남북문제에서 막후 역할을 해왔으므로 재기용이 불가피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신기남 의원은 "박지원 씨를 데리고 일을 하겠다는 것인데…. 처음에 비서실장 이야기가 있다가 우리가 강력히 반대하니까 특보로 내려갔다"며 "비서실장 하려다가 피했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밝혔다. 신 의원은 또한 "비서실장은 청와대 얼굴이라 안 되지만, 그래도 결국 특보로라도 쓰겠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며 더 이상은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신 의원은 '박 전 수석의 비서실장 복귀설에 반발한 의원이 누구냐'는 질문에 "나와 천정배·정동영 의원 등이 그런 메세지를 전했다"며 "우리만 그랬겠는가. (청와대에서) 우리에게만 떠보지 않았을 텐데"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성호 의원은 "이미 대통령을 잘못 보필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인적쇄신 대상으로 지목돼 물러난 사람이 3개월만에 특별한 이유 없이 사실상 원상 복귀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국민들은 이번 개각으로 새로 시작하는 인상을 기대했을 텐데 그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인사"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또한 "이제 민주당은 국민의 입장에서 청와대의 인사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해야 한다"며 "청와대와 대통령의 측근과 가신들이 국정을 농단하는 사태가 우려될 때 민주당은 국민의 입장에서 잘못을 단호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숙 공보수석 기용 충격파

박선숙 신임 공보수석은 29일 "중책을 맡아 부담스럽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박선숙 수석은 당 부대변인 시절부터 김대중 총재의 총애를 받아왔다. 그는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여성이면서도 일을 깔끔하게 추진해내 당 내외로부터 인정을 받았고 청와대에 부대변인으로 입성해서도 줄곧 지근거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보필했다.

▲ 박선숙 공보수석.
박선숙 씨는 지난해 9월 오홍근 씨가 공보수석에 임명되었을 때도 오 씨와 최종까지 경합을 했다. 그러나 청와대 내에서 일부 '걱정'을 하는 바람에 오 씨로 낙점되었다.

그 '걱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너무 젊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성이 '드센 남자 기자들'을 어떻게 무리없이 상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선숙 씨는 그로부터 5개월만에 화려하게 '내부승진'했다.

경기도 포천에서 1960년에 태어난 박선숙 씨는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80년대를 보냈다. 세종대 역사학과에 다닐 때부터 야학을 했으며 82년 졸업 후 84년 민청련에 가입해 김근태 당시 의장과 인연을 맺었다. 박 씨는 88년부터는 민청련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정세연구'에서 일해오다 김근태 씨의 추천으로 95년 지방선거때 민주당에 입당했다.

박 씨는 95년부터 계속 '부대변인' 이었다. 국민회의때(95-98.1)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때(98.1-2)도, 그리고 그후 청와대에서도 그랬다. 이제 그는 부(副)자를 떼고 청와대의 대변인(공보수석비서관)이 된 것이다.

42세의 여성 대변인의 탄생으로 청와대 공보실은 충격에 휩싸여 있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공보 담당 비서관들은 "거취를 고심중"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각종 게이트의 여진이 아직도 청와대를 위협하고 있는 시점에서 등장한 젊은 여성 대변인, 그가 어떻게 험한 파고와 맞설지가 주목된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남인순 사무총장은 "여성이 최초로 공보수석에 임명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면서 "연줄정치나 부패정치의 문제점이 계속 터져나오고 있는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여성은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남 총장은 이어 "그간 우리가 고위직에 30% 이상 여성할당제를 주장해왔는데 그것이 일부 받아들여진 것이어서 바람직한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이번 개각은 슬픈 코미디일 뿐이다"

한편, 1·29 개각 및 청와대 비서진 개편과 관련해 민주당과 한나라당, 자민련 등 각 당은 일제히 논평을 냈다. 민주당은 이번 개각에 대해 "국정의 안정적인 마무리를 위한 실무형 내각이 들어섰다"는 내용으로 짧게 논평을 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29일 오전 주요당직자회의에 참석한 이회창 총재를 비롯해 당 지도부가 일제히 "이번 개각은 이해할 수 없는 개악(改惡)"이라고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또한 대변인 논평을 통해 "대통령의 인사쇄신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의 뒤통수에 철퇴를 가한 꼴"이며 "참신성도 전문성도 중립성도 배제된 '끼리끼리 나눠먹기 인사'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다음은 이날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 때 나온 발언 요지다.

이회창 총재 이해할 수 없다. 이래서 국정쇄신이 되겠는가?
이재오 원내총무 국정쇄신과 거리가 먼 꼭두각시 내각이다.
이강두 정책위의장 대통령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종착역으로 가는 듯하다.
박원홍 홍보위원장 이번 개각은 슬픈 코미디일 뿐이다.
박승국 부총무 오늘 개각은 신당창당을 위한 준비내각에 불과하다.

남경필 대변인 이번 개각은 국민적 관심이 권력 심장부로 향하고 있는 특검 수사에 집중되고 있는 것을 돌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쓰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개각은 물타기를 하려다 오히려 기름을 부은 꼴이 될 것이다. 비리의혹에 덧붙여진 한심한 개각 때문에 국민들은 더욱 분노할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국민들이 지탄하고 야당이 극구 말리고 있는 인사를 또 다시 특보로 기용해서 대통령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도록 한 것이다. 이걸 보면서 임동원 특보, 박지원 특보에 이어 안정남 특보까지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민련은 논평을 통해 "이번 개각은 민심을 쓸어 담고 어루만지는 국정쇄신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 국민의 여망을 저버린 것으로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며 "특히 신의를 저버린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혀놓고 과연 엄정한 선거관리를 할 수 있다고 누가 믿겠는가"라고 밝혀 이한동 총리의 유임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민국당도 논평을 발표해 "이번 내각 및 청와대 개편 내용은 파격적이지도 않고 신선하지도 않다"며 "이런 식의 개편은 임기말에 국정을 안정시키기 보다는 침체시킬 공산이 크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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